베스트 더보기
2026년 11월 5일 (목)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자유게시판

한식날이 공휴일이었으면…

스크랩 인쇄

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4-08 ㅣ No.97828

          한식날이 공휴일이었으면…
              한식날 제례에 모인 8촌 이내 당내간 친척들의 바람



올해도 한식날을 맞아 중요한 집안 행사를 가졌다. 근흥면 두야리에 있는 내 8대조이신 지시정(池時淨)님과 소주가씨(蘇州賈氏) 할머님을 기리는 '효열정문(孝烈旌門) 앞에서 제례를 지내는 일이었다.

일년에 한 번 8대 조부모님 자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이 구절에서 '다'라는 부사가 빠지니 문장이 다소 아쉬움을 주는 꼴이다. '일년에 한 번 8대조부모님 자손들이 한 자리에 다 모이는 날'이라고 하면 한결 힘진 문장일 터이다. 하지만 '다 모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8대조부모님 자손들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나라로부터 '효자'로 현창되신 8대조님도 독자이셨는데, 그 분 이후로 간신히 독자로만 이어져 내려오다가 내 증조부대에 이르러서야 두 가닥이 생기게 되었다. 다시 말해 5대 독자이신 내 고조부님께서 비로소 두 아드님을 두시게 되었다. 그러므로 8대조부모님 자손들은 현재 가장 상위인 우리 대까지는 모두 8촌 이내 당내간들 뿐인 셈이다.

우리 8촌 이내 당내간 친척들은 해마다 다수가 모인다. 13명 당내간 중에서 해마다 거의 고정적으로 9명은 꼭 참석을 하니 풍경은 별로 쓸쓸하지 않고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 당내간들의 아래 가솔들은 수효도 많고 산지 사방으로 흩어져 사는 연유로 집안의 한식 행사에 모두 참여하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모두 모인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닐 터이다.


▲ 올해의 한식 제례 행사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어 적이 쓸쓸한 모습이었다.
ⓒ 지요하

그래서 우리는 당내간의 가솔들이 한식날 행사에 '모두' 참여하는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 아래 후손들도 사정이 허락되는 사람은 한식 행사에 참여하여 조상에 대한 예를 배우기를 바란다. 한식날 조상님들께 제례를 올리는 고유의 미풍양속이 우리 아래 후손들에게도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숨길 수 없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소망'일 뿐 확신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뭔가를 예감하고 있는 기분이다. 한식날 조상님들께 제례를 올리는 이 풍습이 우리 대에서 끝나리라는 생각도 하곤 한다. 그 생각들을 푸념처럼 발설하기도 한다.

올해의 한식 행사 풍경은 적이 쓸쓸했다. 우리 항렬들은 올해도 9명이 참석을 하고 몇 명 내자들이 따라와 협력을 했지만 우리 아래 후손은 50대인 단 한 명만이 얼굴을 보였다. 올해부터는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이었다. 올해는 식목일과 한식날이 겹치지 않았지만, 식목일이 여전히 공휴일이라면 한식 행사를 옮겨 지낼 수도 있을 터였다. 뒤로 미루는 것도 아니고 하루 정도 앞당기는 것이니, 그런 융통성은 필요한 일일 터였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으니 직장 생활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후손들이 집안의 한식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간혹 한식날이 일요일과 겹치는 때도 있겠지만, 그건 흔하지도 않으려니와 일요일의 한식 행사는 또 이런저런 어려움이 없지 않을 터였다.

올해는 지난해처럼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서 좋았지만, 그래서 좀더 적막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다. 젊은 사람은 없고, 더욱이 어린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것은 정말 쓸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제례를 마치고 음복을 할 때, 70대 후반 세월을 사시는 가장 연장이신 팔촌 형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무래도 이 한식 행사도 우리 대에서 끝날 것 같어. 외지로 나가 사는 후손들이 한식날 고향에 올 수 있는 조건도 좋지 않게 되었구, 고향에서 사는 후손들도 이런 행사에 별로 관심이 읎어. 애들이 앞으로 나이를 먹어 가면서 관심을 갖게 될는지는 물르지먼, 그것두 어려운 일일 것 같어."


▲ 지난해 한식 제례 행사는 아이들이 여러 명이어서 보기 좋은 풍경이었는데...
ⓒ 지요하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에서 오신 준하(俊夏) 형님이었다. 형님은 집에 있는 20대 청년인 손자를 데리고 오려고 했다가 실패한 사정도 실토했다. 손자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하신 모양이었다. 그러자 태안읍에서 사시는 역시 팔촌이시고 70대 중반이신 봉하(奉夏) 형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런 행사가 우리 대에서 끝나게 될지라도, 끝나는 날까지 우리만이라도 열심히 이 일을 헤야지 뭐."

그리고 봉하 형님은 나를 지목하며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런 한식 행사를 우리 대에서 끝내지 않고 후손들헌테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읎지는 않을겨. 연구를 헤보면 어떤 방안이 생길 수도 있을겨. 그 일을 요하 아우가 헤야 혀. 그 일을 헐 수 있는 사람은 요하 아우밲이 읎어."

봉하 형님의 그 말씀을 들으니 나는 더럭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60대 중반 이상의 세월을 살고 계시는 네 분의 사촌 형님들과 세 분의 팔촌 형님들을 둘러보자니 다시금 세월의 덧없음이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나저나 올해부터는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어서 특히 외지에서 직장 생활을 허거나 학교에 다니는 후손들은 한식 행사에 참석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어요. 나야 공휴일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먼….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어서, 한식날이 식목일과 겹치더라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이 막히지 않게 된 게 나헌테는 잘된 일이지먼…."

지난해와는 달리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이 수월했다는 사촌 인하(人夏) 동생의 말이었다. 가장 멀리에서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도 자녀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쉬운 눈치였다.

"올해부터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대신 한식날을 공휴일로 맹글었으면 좋겄어. 한식날이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의 하나인 디다가 오로지 조상님들을 모시는 날이니께, 미풍양속을 장려허는 뜻으로다가 한식날을 공휴일로 맹그는 것두 괜찮을 겨. 그러니께 글쓰는 사람이 한번 운동 좀 헤봐."

태안읍에서 사시는 60대 후반이신 팔촌 구하(九夏) 형님의 말이었다. 그 형님 역시 나를 지목하고 하신 말씀이었다.


▲ 조상님들의 효(孝)와 열(烈)을 현창하는 정려문(旌閭門) 앞에서 축문을 읽으며 조상님들께 후손들의 효를 다시 한번 맹세했지만...
ⓒ 지요하

"뜻은 좋지먼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일 겁니다. 우선은 힘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예요. 옛날 노태우 정권 시절의 일이지먼,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허면서 내세운 이유 하나가 뭐였는지 아세요? 이 지구상에서 자국의 문자를 기념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거였어요. 그런 사람들은 한식날을 공휴일로 허자고 허면 이런 말을 헐 거요. 이 지구상에서 조상을 위하는 날을 공휴일로 정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그래도 지금은 많이 달르잖남. 주5일 근무를 허구 사는 나라가 됐으니께,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대신 한식날을 공휴일로 허자구 허면 어느 정도는 말이 통헐 겨."

"지금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허자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 주장이 운동 차원으로까지 발전을 허구 있는디요, 한글날이 공휴일로 환원되면 한식날을 공휴일로 만들자는 주장이 탄력을 얻게 될지도 몰라요."
"한글날과 한식날이 무슨 상관이라나? 내 생각에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디…."
"그래요. 직접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어느 면으로는 상관이 있기도 해요. 상관이 있기도 허구 없기두 허구…. 좀 묘한 일이에요."

형님들은 조금씩 묘한 표정들이었다. 나 역시 내 말의 뜻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니, 모두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일 터였다.

잠시 후 우리는 음복을 마치고 모두 일어섰다. 사촌 형수님들은 상 치우는 일을 했고, 음식을 여러 집에 고루 나누는 일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점심 식사를 할 태안 읍내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또 한 해의 한식 행사를 마무리하는 순서였다. 일년 만에 다시 만난 얼굴들이 다수였다. 모두 내년 한식날 다시 만날 터이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우리의 한식 행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


관련 기사 - 올해도 한식 제례 행사를 가졌지만


2006-04-08 14:48
ⓒ 2006 OhmyNews



313 4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