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규빈 히야친따와 굿자 엄마들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의 글을 고마운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한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특별한 감흥을 맛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외출을 했더랬습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충남지부 창립 8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홍성읍 홍주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그 행사에 참석하고 오후 3시경 집에 돌아왔지요. 몸도 피곤하고 해서 현재로서는 가장 급한 글인 <굿자만사 0430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 작업도 내일로 미루었지요. 작업과 글 올리는 일이야 내일로 미루었지만 굿 뉴스 자게 상황이 궁금하여 잠시 들어와 보았더니 <"규빈 히야친따에게..">라는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의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먼 훗날에도 규빈이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제 문서 방에다 옮겨 잘 보관을 해놓고, 답글을 생각하면서 사진 정리하는 일을 했지요. 어제 유무상통 마을과 미리내 성지, 그리고 <성 베드로의 집>에서 찍은 210장의 디카 사진들 중에서 우리 규빈이와 세라피나 자매님의 모습이 함께 있는 사진들만을 골라 포토샵으로 크기를 조절하는 일을 했답니다.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규빈이가 집에 들어오더군요. 학교 공부를 마치고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을 거쳐서 집에 온 규빈이에게 세라피나 자매님의 글을 보여주었지요. 그 글을 보여주면서 제가 규빈이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어제 유무상통 마을에서 네가 엄마라고 부르기로 한 그 '굿자 엄마'가 인터넷에 올리신 너에 대한 글이야. 그 엄마가 네게 쓴 편지를 인터넷에 올리신 거야."
그러자 규빈이가 묻더군요.
"근데 '굿자 엄마'가 무슨 뜻이예요?"
녀석은 제가 엄마라고 부르기로 한 그 엄마의 이름이 '굿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녀석에게 '굿자'라는 말의 뜻을 설명해주었고, 내친 김에 '굿자만사'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녀석이 놀랍게도 이런 말을 하더군요.
"큰아빠, 그럼 저도 '굿자만사'네요. 굿자만사 아줌마를 만나서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으니까요. 또 엄마가 나에 대해서 쓰신 글을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렸으니까요."
저는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아이의 말이 참 재미있기도 했고, 아이의 영특함이 놀랍기도 하면서 여간 즐거워지는 기분이 아니더군요. (그런데 녀석은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큰아빠 곁을 떠나지 않고 글을 지켜보면서 참견을 하지 뭡니까. ㅋㅋ.)
어제는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유무상통 마을과 미리내 성지와 성 베드로의 집을 돌면서 정말 크고도 질박한 행복을 체감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 모두 행복했지만 특히 우리 규빈이가 제일 행복했지 싶습니다.
규빈이는 엄마라고 부르기로 한 분을 만나서 좋았고, 모든 굿자 엄마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 좋았고, 미남 소년 남혁도 비오 학생을 만나서 좋았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녀석은 비오 오빠가 잘 참 잘생겼다는 말을 하고, 또 참으로 놀랍게도 "엄마는 예쁜데 아빠는………"라는 '정확한' 말을 하더군요.
녀석은 10시가 넘은 시각에 집에 도착했는데도 그 늦은 시간에 '일기' 숙제를 하느라고 즐거웠던 하루 생활의 이모저모를 떠올리며 머리에 되새기는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묻고 확인도 하더군요. 그리고 김명희 젬마 자매님이 주신 선물을 확인하기도 하고….
녀석은 김명희 젬마 자매님이 주신 벨기에 초코렛을 오늘, 조금 전에 밖에 가지고 나가 이미 친구들과 다 나누어 먹었고 지금은 오빠 초코렛에 신경을 쓰는데, 지금 조각 비누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가슴에 안고 와서 "큰아빠, 이 선물을 주신 미국에서 오신 아줌마께도 고맙다는 얘기를 꼭 써주세요"하고 부탁을 하는군요.
녀석은 조금 전에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선물 상자를 열고 세 가지 (구두, 모자, 부채) 모양의 조각 비누를 자랑하더니 오빠 방에 있는 오빠에게 전해 준 '십자고상' 선물도 가지고 나와서 자랑을 하더군요.
녀석이 내게 그 부탁을 하고 잠시 큰아빠 곁을 물러났기에(아빠가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와서…) 제가 얼른 한마디 적습니다. 조금 전에 남혁도 비오 학생 얘기를 하면서 "아빠는 못생겼는데…"라고 한 녀석의 말을 적었더니 "왜 그런 말까지 적어요"라며 울상을 짓고 그 말을 빼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삭제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규빈이의 부탁대로 그 얘기는 적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ㅋㅋ.
그건 그렇고, 규빈이가 '굿자 엄마'와 '굿자 아줌마'들을 언제 또 만나게 되느냐고 묻는군요. 금년 가을쯤 많은 분들이 태안에 다시 오셔서 태안에서 모임을 갖게 되니 그때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잘하면 큰아빠가 널 서울 모임 날에 데리고 가줄 수도 있다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녀석이 환한 표정으로 기대와 '행복감'을 나타내는군요.
어제 우리가 일찍 미리내 성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좀 언짢은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미리내 성지에 내린 규빈이가 울상을 짓고 툴툴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는 덕산온천에서 목욕만 하고 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여기엘 와서 밤에나 집에 간다고 하니 하루종일 친구도 못 만나고 컴퓨터도 못하고 따분하게 생겼다고 신경질을 부리지 뭡니까. 그래서 내가 야단을 치기도 했지요.
그랬는데, 그렇게 인상이 좋지 않았던 규빈이가 무슨 조화인지 굿자 엄마들을 만난 다음부터는 금세 환한 표정이 되고,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싶더군요.
아마도 규빈이는 굿자 엄마들 중에서 맨 처음 만난 이가 세라피나 자매님인 데다가 자신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세라피나 자매님의 눈길에서 정다운 느낌을 얻었고, 세라피나 자매님의 용모와 인상에서 엄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유무상통 마을 휴게실에서 방 신부님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던 중 세라피나 자매님으로부터 규빈이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라는 말을 자매님께 했다는 말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그 순간 저도 가슴이 울컥하며 멍멍해지는 것을 느꼈지요.
규빈이가 '엄마'라고 부르도록 선뜻 허락해주고 따뜻이 보듬어 안아주시고 줄곧 엄마 노릇을 해주신 세라피나 자매님, 미국에서부터 내 조카아이들을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주실 선물을 마련해오신 김명희 젬마 자매님, 아이에게 한결같이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모든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아이는 물론이고 제 어머니까지 잘 챙겨주신 권태하 작가님, 감사합니다. 규빈이는 굿자 엄마들만 기억하고 얘기하면서 저를 챙겨주신 '굿자 할아버지'는 기억을 못하는지 별 얘기가 없네요. ㅋㅋ. 그것을 느끼고 할머니가 녀석의 기억을 챙겨주는 말씀을 해주셨답니다.
내일은 어제의 즐거웠던 시간을 돌아보면서 세 개의 글을 쓸 생각입니다.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와 '굿자만사' 이야기, '유무상통 마을' 이야기를 차례로 쓸 계획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이 글까지 포함하여 도합 네 개의 글을 쓰는 셈이 되겠군요. 그만큼 어제의 그 즐거웠던 시간은 제게 더욱 풍성한 의미를 안겨주게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규빈이의 엄마가 되신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 미국에서부터 제 조카아이들을 마음에 두고 오신 김명희 젬마 자매님, 어제 처음 만난 박난서 글라라 자매님, 제 노모님을 각별히 챙겨주신 김명순 루시아 자매님, 그리고 정은옥 박경희 박혜서 임수정 이복희 자매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권태하 작가님과 배봉균 교수님, 한참만에 뵙게 된 김교훈 형, 처음 뵙게 된 최장균 사도 요한 형제님, 그리고 나승철 박정욱 신성구 김형식 남희경 이강길 형제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한 나날 이루시기 빌며, 다음에 또 만나서 더욱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게 되기를 감히 청합니다.
형제 자매님들이 계셔서 저와 우리 가족 모두는 더욱 행복합니다.
(060501 / 충남 태안읍 밤골에서 深梧 적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