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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자만사' 0430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 ②/사진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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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5-02 ㅣ No.98954

 

       '굿자만사' 0430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 ②



3. 천사들의 합창

'사회복지법인 오로지종합복지원'을 운영하시는 김방 상복(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처음 뵙는 순간 나는 야릇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찍이 더러 사진에서는 뵈었지만 내 육안으로 실제 모습을 뵈니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 같은 감동이 밀려들더군요.

한마디로 신선의 모습이었습니다. 보살 같다는 느낌이며 산신령 같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내 가슴에 가득 차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 천주교 신자로서 느끼는 자부심 하나가 거의 모든 신부님들의 얼굴에서 느끼는 '평화'였습니다. 신부님들의 얼굴에서 느끼는 한없는 온화함과 선량함(천주교 성직자들의 그 공통성)은 내게도 많은 자극을 주는 것이지요. 신부님들의 그 표정을 닮으려는 열망이 가끔은 내게 이상한 좌절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데 방 신부님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자부심과 나 자신에 대한 이상한 좌절감이 내 가슴 안에서 뒤엉켜버리는 듯한 묘한 감정을 경험하는 기분이더군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가슴 가득 평화와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꾸 신부님 곁에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신부님은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내 글을 읽으신 듯 나를 이미 알고 계신 눈치였습니다. 또 내 어머니와 아내도, 그리고 규빈이도 잘 알고 계신 기색이었습니다. 규빈이를 안아 주시는 모습이며, 내 어머니를 늘 곁에 앉게 하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예수님을 느끼는 기분이었지요. 아, 2천년 전 유대 지방의 어느 마을 어느 집에서 예수님도 저런 모습을 하셨을 거야!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고….

우리는 곧 11시 20분에 시작되는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나는 미사 시작부터 마지막 '파견기도'까지 벅찬 감동을 안고 미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누리는 색다른 미사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무상통 마을 성당의 미사에 관한 얘기는 이미 권태하 작가님이 상세한 소개를 해주셨고, 나도 다른 글에서 소개할 예정이므로 여기에서는 기술을 피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유무상통 마을'이라고 통칭하는 '사회복지법인 오로지종합복지원'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다른 글로 미루겠습니다.)

미사 후 우리는 유무상통 마을(미리내 실버타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미리내 성지를 돌아보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올해 83세이신 내 어머니는 걷는 것을 선택하셨고 무난히 노인의 건강을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셨지요. 반면에 굿자만사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권태하 작가님은 '천식'을 이유로 김명순 루시아 자매님의 승용차에 신세를 지기도 했고….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어머니 고 우술라, 김대건 신부님께 신품성사를 주신 고 페레올 주교님,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이곳으로 옮긴 이민식 님의 유해가 있는 경당 앞 뜰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일렬로 벤치에 앉아 있는 앞에서 신성구 도마 형제가 강의를 했지요.

신 도마 형제가 강의를 참 잘 하더군요. 한 사람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열중해서 들었는데, 나는 신 형제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의 글보다 말이 더 재미있고 감칠맛이 난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정말 값진 강의였고, 모두들 뜨거운 박수로 보답을 했지요.

곧 실버타운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무려 100명도 넘을 듯한 대규모 베트남 순례단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같이 기도에 열중하는 참으로 인상 깊은 장면이었지요.

실버타운으로 돌아온 우리는 방 신부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2층 휴게실의 연회장에서 연회를 벌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시부터 6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된 연회장을 방 신부님은 한시도 떠나지 않고 우리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합창도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신부님과 83세 고령이신 내 어머니와 휴게실에서 일하시는 두 분 할머니도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를 때는 우리들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하더군요.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내 어머니와 휴게소에서 일하시는 두 분 할머니와 남혁도 중학생까지) 차례로 노래를 부르거나 장기 자랑을 했습니다. 권태하 작가님은 준비해 오신 하모니카로 세 곡이나 연주를 하여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나는 두 개의 애송시(이형기의 '낙화'와 조지훈의 '낙화')를 낭송했고, 가곡 하나와 복음성가 하나를 불렀지요. 조지훈의 '낙화'를 낭송할 때는 첫 구절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는데 김형식 비첼리노 형제가 알려줘서 참 고마웠고….

두 분의 시낭송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이 이해인 수녀님의 '해바라기'를 낭송했고, 김명순 루시아 자매님은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했지요. 우리는 김 루시아 자매의 윤동주 '서시' 낭송을 들으면서 독신으로 살면서 한방병원 수간호사 일을 접고 최근 무료 양로원인 '성 베드로의 집' 원장으로 옮겨 봉사하게 된 그의 남다른 '의지'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이 이해인 수녀님 시 낭송을 마치고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옛날 노래를 부를 때였습니다. 갑자기 두 명의 부상병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6·25 전쟁시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나승철 하사와 박정욱 병장이 피가 흐르는 머리와 팔다리를 피묻은 붕대로 어설프게 매고 서로 붙잡고 의지한 채로 절룩이며 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그 비참하고도 불행한 모습과는 상관없이 허리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석해서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발휘하고 준비를 했는지, 그 놀라운 순발력과 재간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술치료사’인 박경희 자매로부터 노인 요양과 관련하는 ‘미술치료법’ 얘기를 간단하게나마 들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행운일 듯싶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사랑 받는 이복희예요."라는 히메 자매의 자기 소개에는 또 한번 폭소로 화답했지요.

우리는 참으로 많이 웃고, 많이도 박수를 주고받으며, 얼굴의 주름살을 줄이는 건지 늘이는 건지 모를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 지금까지의 모든 굿자만사 모임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 즐거우신 나머지 방 신부님께서 "또 오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4. 성금도 가장 많이 희사하고

우리는 저녁식사도 실버타운의 휴게실에서 했습니다. 방 신부님으로부터 저녁식사까지 대접을 받은 거지요. 참으로 과분한 대접이었습니다.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를 일반 음식점에서 하지 않고 유무상통 마을 식당에서 대접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부부 5만원, 형제 자매 3만원씩 모은 회비가 풍족하여 버스 대절비와 이동 경비를 쓰고도 돈이 많이 남아서 두 곳에 '성금'을 희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주일'을 맞아 유무상통 마을 성당 미사에 참례하던 중 신부님의 소개를 받고 앞에 나가 인사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 두 명의 베트남인, 한 명의 필리핀인 미혼모들을 포함하여 현재 다섯 명의 미혼모들이 생활하고 있다는 용인 '생명의 집' 수녀님께 10만원을 드렸지요. 그리고 30명의 노인들이 생활하고 계시는 무료 양로원 '성 베드로의 집' 김명순 루시아 자매께 40만원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쓰고 남은 돈을 챙겨서 이웃을 돕지 않습니다. 미리 일정 금액을 떼어서 불우한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시는 분께 드리고 나서 모임 비용을 지출합니다. 2차를 갈 때는 다시 주머니 돈을 모으지요.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6시 20분쯤 안성 시내 쪽에 있는 '성 베드로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원래 예정대로 봉사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 '성 베드로의 집' 안팎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그 집에서 생활하시는 생활보호대상 노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얀 배꽃이 눈부시게 덮여 있는 근처 과수원을 배경으로 정자 안에 앉아 또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다가 우리는 사과 대접을 받고 아쉬운 떠남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어둠이 내릴 무렵 버스에 오르는 형제 자매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더러는 포옹도 나눈 다음 우리 가족은 내 12인승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청주에서 사시는 박난서 글라라 자매가 동승을 했지요.

안성에서는 청주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하더군요. 성환이나 천안으로 가서 갈아 타야 한다기에 그대로 천안으로 뺐습니다. 천안 버스터미널 바로 앞에서 난서 자매를 내려주었는데, 청주까지 가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하더군요. 천안까지 돌아서 30분쯤을 더 쓰고 태안에는 10시 정각에 도착을 했지요.

태안에 도착하면서 남희경 레오에게 전화를 하니, 이강길 파비아노가 받는데 거기도 서울에 잘 도착을 했다고 하더군요.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로 연휴가 하루 더 있어서 길이 별로 막히지 않은 덕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우리 규빈이는 10시가 넘은 시각에도 잠잘 생각을 하지 않고 '일기'를 쓰더군요. 숙제를 꼭 해야 잠을 자는 아이니까요. 녀석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뭔가를 되새기면서 일기를 쓰는데, 아이에게 풍성하게 일기 자료를 준 것이 참 다행이다 싶더군요.

이윽고 일기를 다 쓴 녀석이 "큰 아빠, 우리 굿자 엄마와 굿자 아줌마들을 언제 또 만나요?"라고 묻더군요. "응, 올 가을에 태안에서 모임을 갖기로 해서 그때 많이들 오실 거야. 또 큰 아빠가 널 서울 모임 때 데리고 갈 수도 있어."하니, 녀석은 함빡 웃음을 짓는데, 기대와 행복감이 가득한 얼굴이더군요.

(유무상통 마을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를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게 된 것 같은데, 이상으로 '굿자만사'의 4월 30일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를 마치며, 앞의 절반(소제목 1과 2) 부분을 따로 떼어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라는 제목으로 올렸음을 알려 드립니다.


(060502 / 충남 태안읍 밤골마을에서 深梧 적음)

 

 

'미리내 실버타운' 건물 정문에 걸린 굿자만사 환영 글자 앞에서도 규빈이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요. 큰엄마가 아무리 애를 써도...

 

 

 

'유무상통 마을' 방상복 신부님의 집무실 안에서 차 대접을 받을 때도 여전히 시무룩한 규빈이  

 

 

한참 만에 만난 김교훈 히지노 형과 뻑적지근하게 반가움 속의 정담을 나누고...

 

 

 

앞에서도 뒤에서도 환담과 정담을 나누는 자매들.

 

 

유무상통 마을 성당의 내부 모습. 미사가 시작되기 전.

 

 

박난서 글라라 자매와 처음 만나 반가움을 나누는 두 남자. 서로 자리를 양보하고...

 

 

방상복 신부님, 한상진 서울대 교수와 사진을 찍으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리들 파안대소를 했을까?

 

 

 

방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 가족만 찰칵. 근데 누가 찍어 주었지?

 

 

 

저 두 사람, 남도 아니고 보통 사이도 아닌 것 같애...

 

 

24명의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 앞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 상황과 의미에 대해 열강을 하고 있는 신성구 도마 강사

 

 

아니, 수업 중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저 아낙은 누구일꼬? 김형식 비첼리노는 왜 등돌아 앉아 있지. 그리고 남희경 레오는 왜 화난 얼굴이지? 남 레오의 아들 중학생 비오도 꽤 심각한 얼굴이네...

 

 

대규모 베트남 순례단의 '십자가의 길' 기도 모습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있는 규빈이. 배 교수는 열렬하게 무슨 말씀인가를 하시는데, 무슨 말씀이었더라...

 

 

보고 싶었던 굿자만사 가족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시는 83세 고령의 최오채 안나 할머니

 

 

시낭송을 하는 얼굴 표정, 목소리, 폼 다 좋은데 어째서 조끼 속 분홍색 와이셔츠의 한쪽 자락이 빠져나와 있을까. 내참, 그것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시기 전 고시조를 읊으시는 윤 안나 할머니. 휴게실에서 커피 장사를 하시는데, 이 날은 손해가 많이 났답니다.

 

 

 

자신의 연주에 스스로 취하며 하모니카 연주를 하시는 권태하 작가님. 모두들 놀란 표정...

 

 

 

모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게 합창도 하고...근데 뭔 노래를 불렀더라...

 

 

 

고도남 자매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를 때 홀연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온 두 명의 부상병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나승철 하사와 박정욱 병장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후에 나승철 하사는 원대 복귀, 장교가 되어 대대장까지 하고 별이 보이는 언덕길에서 그만 전역을 하고 말았다는 야그...

 

 

 

춤을 추듯 몸을 흔들며 '한오백년' 열창을 하시는 방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아, 감동...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여 자신의 올곧은 '의지'를 새롭게 되새기는 김명순 루시아 자매. 파비아노, 사진 고만 찍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박난서 글라라 자매의 열창을 듣는 기분 삼삼...

 

 

빈 소주병을 마이크로 이용하여 노래 실력을 기가 막히게 100% 끌어올린 배봉균 교수님

 

 

준비성 좋게 집에서 가져왔는지, 어디서 슬쩍 했는지 악보를 들고서야 기어코 노래 부르기를 완성하신 김교훈 히지노 형. 화이팅!

 

 

정은옥 자매님도 악보를 들긴 했지만 남편님보다는 덜 사용하며 멋지게 열창, 남편님보다 훨씬 나은 노래 실력을 과시...

 

 

 

아니, '성금'을 받는 쪽이야 좋아서 웃는다지만, 성금 봉투를 주는 배 교수님은 왜 저렇게 웃는디야. 내 알다가도 모르겄네. 저기 김교훈 형은 왜 저리 웃고...

 

 

김명순 루시아 자매가 평생 동안 거처하게 될 경기도 안성의 무료 양로원 '성 베드로의 집' 전경.

 

 

 

싸나이들도 하얀 배꽃밭 앞에 서니 그대로 보름달들이네. ㅋㅋ.

 

 

 

저녁 무렵 홀로 배꽃밭을 거니는 저 묘령의 처자는 누구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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