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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굿자만사' 0430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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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5-02 ㅣ No.98950

 

       '굿자만사' 0430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 ①




※이 글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난의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연재기사 코너에 올린 글입니다. 어제 우리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지규빈 히야친따와 굿자 엄마들>과 다소 겹치는 부분이 있고, 사진도 일부 중복 사용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굿자만사' 0430 유무상통 마을 모임 후기 ②>는 우리 굿 뉴스 자게에만 올립니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1. 올해 처음으로 가진 '가족 나들이'

'빈자리'가 너무도 확연한 슬픔 가운데서도 우리 가족은 올해도 기회가 닿는 대로 '가족 나들이'를 즐기며 살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비정규직 기술 근로자인 동생은 요즘은 13만원 정도인 일당 손실을 감수하기도 어려울 뿐아니라 어디에 가서 다른 이들과 만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품이라 가족 나들이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두 조카녀석은 어디든지 동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서울과 논산에서 사는 딸아이와 아들녀석도 가급적 동행하는 쪽으로 가족 나들이를 계획하고 진행할 생각입니다만, 그게 어려운 경우라도, 조카녀석들은 함께 사는 처지이니 가족 나들이 동행이 좀더 수월할 듯싶습니다.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는 천주교 '미리내 성지' 안의 대성당 모습
ⓒ 지요하


지난 4월 30일을 참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올해 최초의 가족 나들이를 우리 가족은 4월 중순쯤에 결정하고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굿자만사(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의 4월 모임이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유무상통 마을'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입수했을 때 나는 대뜸 '가족 나들이'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지요. 굿자만사 4월 모임 얘기를 해드리고, 유무상통 마을에 관한 얘기도 해드렸지요. 또 유무상통 마을과 붙어 있는 '미리내 성지'는 물론이고, 최근 굿자만사 자매님 한 분이 원장으로 부임하여 일하게 된 무료 양로원인 '성 베드로의 집'도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충북 진천군 백곡면의 '배티 성지'도 가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들도 데리고 가고, '가족 나들이'를 겸하자고 하시더군요. 나는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슬픔 속에서 사시는 어머니는 바람을 쏘이시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을 보시고 싶은 마음(좋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그리움)도 가지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유무상통 마을에 대한 호기심과 미리내 성지와 배티 성지를 돌며 '하느님의 품안'에서 뭔가 당신 스스로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인 것을 우리 부부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올해의 첫 번째 '가족 나들이'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울의 대학생 딸아이는 교내 가톨릭 동아리 행사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논산의 고등학생 아들녀석은 기숙사에서 외박을 내보내는 주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에 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중학생 조카녀석은 5월 1일부터 실시되는 중간고사 때문에 학원에서 일요일에도 오라고 한다는 이유로 가족 나들이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예년에 비해 너무 늦은 올해의 첫 가족 나들이는 어머니와 우리 부부와 작은 조카녀석 규빈이만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재삼 확인하며 나는 묘한 '무상'을 느끼는 기분이었지요. 언젠가는 우리 부부 두 사람만 나들이를 하게 되는 세월이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서도, 어린 조카녀석들과 함께 살므로 '아직은'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들고….


▲ 미리내 성지 대성당의 내부 모습
ⓒ 지요하

지난해 말 세상을 뜬 제수씨 생각도 다시 하게 되더군요. 제수씨가 살아 있다면 우리 가족은 올해 이미 두어 번은 가족 나들이를 했을 테고, 이번의 나들이가 좀더 풍성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더구나 지난해 5월 1일 천안의 광덕사를 구경하고 광덕산을 오른 이야기가 지난해 이맘때의 내 '가족 메일' 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다시금 그리움을 반추하게 되면서 '빈자리'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우리 가족은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든 내 차에는 늘 '빈자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허전함 속에서도 우리 가족의 나들이 가운데는 늘 하느님이 계신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나들이를 하자고 서로 다짐하며 4월 30일의 나들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 규빈이에게 엄마가 생기고

그런데 새벽 5시쯤 출발하여 먼저 덕산온천에 들러 목욕을 하고, 다시 해미로 나갔다가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휴게소에서 (지난 3년 동안 딸아이와 종종 함께 했던 그 아침 시간들을 반추하며) 아침을 먹고, 10시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단 유무상통 마을에 도착했다가 미리내 성지로 가서 차를 놓으니 차에서 내린 규빈이가 울상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덕산온천에서 목욕만 하고 집에 돌아가는 줄 알았다며(오늘 일정을 설명할 때는 어디로 듣고…), 친구들도 없고 컴퓨터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어떻게 하루종일을 따분하게 지내느냐고 징징거리듯 불평을 하는 것이었지요.


▲ 유무상통 마을(미리내 실버타운) 건물 안에서 방상복 신부님, 한상진 서울대 교수와 함께 포즈를 취한 '굿자만사' 회원들
ⓒ 지요하

그 아이의 불평을 대하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만일 저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왔어도 저럴까 하는 의문 때문에 갖게 되는 생각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1일 광덕산 나들이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 왔다면 아무 불평도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약 저렇게 우는소리로 불평을 한다면 엄마한테서 당장 타박을 당하리라는 생각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제수씨가 야단치던 어느 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규빈이에게 조금은 소리를 높여 꾸중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 마누라는 아이에게 왜 그러느냐고 내게 항의를 하고, 이래저래 더 속이 쓰리더군요. 괜히 또 눈물이 날 것만 같고….

어머니는 규빈이를 데리고 차안에 있기로 하고 우리 부부만 미리내 성지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대성당만 본 다음 다시 유무상통 마을로 돌아가서 서울에서 오는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을 맞기로 했습니다.

미리내 성지는 우리 부부가 15년만에 다시 찾은 곳이었습니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아이가 4살이던 해 아이들 데리고 왔던 기억이 생생하였습니다. 거의 모두 다르게 변한 가운데서도 대성당의 모습은 탄성을 하게 만들더군요. 15년 전에는 한창 건축 공사를 한다고 했는데….

성당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기도를 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리더군요. 굿자만사 일행이 유무상통 마을에 도착했다는 연락이었지요. 우리는 서둘러 유무상통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 유무상통 마을(미리내 실버타운) 식당에서 규빈이는 '엄마'와 식사도 함께 하고
ⓒ 지요하

서울에서 대절 버스를 타고 온 일행은 모두 19명이었습니다. 여기에 청주에서 오신 박난서 글라라 자매님과 우리 가족 4명을 합하니 24명, 공교롭게도 남녀 각각 12명씩이더군요.

(남) 권태하 배봉균 김교훈 지요하 최장균 박정욱 나승철 신성구 남희경 김형식 이강길 남혁도 (12명)
(여) 최오채 정은옥 구갑회 김명희 고도남 박경희 박혜서 김명순 박난서 임수정 이복희 지규빈 (12명) / 계 24명

이들 중에서 처음 뵙는 분은 나와 동갑이신 최장균 사도 요한 형제님, 미국에서 일시 모국을 찾으신 김명희 젬마 자매님, 청주의 난서 자매님이었습니다. 남희경 레오와 임수정 비비안나 자매의 둘째 왕자님 남혁도 비오(중2) 학생도 처음 보는데, 참 늠름하고 의젓하게 잘생겼더군요. 말도 잘하는데, 나중에 우리 규빈이가 혁도 오빠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잘생겼다고….

버스를 대절한 것과 대비해 보면 인원이 적은 것 같지만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라고, 총무 노릇을 하는 남희경 레오는 거의 회색이 만면이더군요. 서울에서 저녁 한때 모이는 것도 아니고 먼길을 가고 오며 하루종일, 또 밤에까지 이어지는 행사에 이 정도 모였으면 대단한 성과라며 마치 기염을 토하듯 하더군요.

나중에 나는 그 말을 상기하며 하느님께 더욱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고, 그 중에는 자매님들도 여러분이어서, 우리 규빈이는 실로 많은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굿자만사 자매님들은 모두 우리 규빈이의 엄마들이었습니다.

자매님들은 대부분 오늘 모임에 규빈이도 온다는 사실을 알고 오신 것 같았습니다. 규빈이를 보고 싶어서 (무리를 해서) 오셨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규빈이에게 관심을 표하고 애정의 눈으로 대해주곤 했지요. 미국에서 오신 김명희 젬마 자매님은 미국에서부터 내 조카아이들을 생각하신 나머지 선물까지 마련해 오시고….

일행과 만나 어울리는 그 순간부터 규빈이의 표정은 밝아졌습니다. 여러 엄마들과 신체 접촉을 하더니, 한 엄마와 손을 잡고 줄곧 함께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표정에서는 행복감이 넘쳐나는 것 같았고….


 

'굿자 엄마'와 함께 포즈를 취한 규빈이 

 ⓒ 지요하


규빈이는 맨 처음 눈이 마주쳤던, 그리고 맨 먼저 인사를 나누었던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을 엄마로 삼았습니다. 그 자매님에게 어느 순간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라는 말을 해서 그 엄마의 품에 안겼고, 그리고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전 지금 엄마가 안 계셔요."라는 말을 해서 그 엄마의 가슴을 또 한번 울컥하게 만들었지요.

아마도 규빈이는 '굿자 엄마'들 중에서 맨 처음 만난 이가 세라피나 자매님인 데다가 자신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세라피나 자매님의 눈길에서 정다운 느낌을 얻었고, 세라피나 자매님의 용모와 인상에서 엄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세라피나 자매님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가만히 내 가슴에 십자 성호를 그었지요. 누구보다도 우리 규빈이에게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지요.

고도남 세라피나 자매님이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린 <규빈 히야친따에게>라는 글의 한 대목을 소개해 봅니다.


▲ 미국에서 온 '굿자 아줌마'의 무릎에 앉은 규빈이
ⓒ 지요하

식사 후, 미리내 성지 가는 길을 난 잊을 수 없을 것 같구나.
갖가지 꽃에 관심을 보이는 너의 예쁘고 맑은 심성을 훔쳐보고 있는데...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넌 수줍게 말을 꺼내더구나.
"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그 말을 하면서 넌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어. 손에 들고 있는 꽃잎을 보고 있는 건지, 땅을 보고 있는 건지 너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난 놀라서, 떼어 놓고 있던 발걸음을 순간 멈추었던가...
아니, 가슴에 뭔가 울컥해서 잠시 숨을 골라야 했던가... 암튼 그랬어.
너를 내 가슴 쪽으로 돌려 세우고 나서, 난 너를 힘껏 안아 주었지.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난 괜찮아, 좋아!"
그때 마침 아침부터 뿌옇던 하늘이 봄 햇살의 끈질긴 구애에 한숨을 토해내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 이미 노란 민들레들의 영토가 되어버린 잔디 운동장으로 네가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우린 두 팔을 벌리고 소리 지르며 한참을 뛰었지.
"민들레꽃을 피해! 거기야, 그쪽이야, 밟지 말고 조심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잔디 운동장에 덩달아 들어와서 70년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으며 깔깔거렸지.
그렇게 내게 마음을 열어버린 넌 서슴없이 네 속마음을 내게 보여주더구나.
비오 오빠가 참 잘생겼다고. 같이 사진 찍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경망스럽게도 들은 즉시 다 발설해버려도
"말하면 안 되는데..."
어른스럽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날 책망하지 않아서 고마웠단다.
미리내 성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너의 고백을 또 하나 들었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전 지금 엄마가 안 계셔요."
너는 내가 너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고 하는 소리였지.
너의 엄마 영정 앞에서 이모의 품에 안겨 있던 애처로운 너에 모습이 내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였지..."규빈이 일일엄마 하시느라고 고생 많었시유. 고마웠구만유."
헤어질 때 규빈이 할머니랑 큰아빠 큰엄마가 인사를 하시더구나.
"아닙니다. 제가 규빈이에게 엄마 대접 받아서 너무 기뻤답니다."
혹시 네가 나와 거리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넌 나를 찾아 가던 길을 되돌아오곤 했었지.
그렇게 넌 날 챙겨 주었어.
규빈 히야친따야!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사랑을 주어서 고마웠단다.
히야친따, 우리 예쁜 꼬마 아가씨!
사랑해요!
언제 우리 다시 만나자...


▲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무료 양로원 '성 베드로의 집' 뒤뜰에서 규빈이와 '굿자 엄마들'이 함께...
ⓒ 지요하


2006-05-02 15:42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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