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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자유게시판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有無相通 마을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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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6-05-05 ㅣ No.99074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산 속에 8층짜리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이  우뚝 나타나 보이는 것처럼.......

내가 만난 김방 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첫 인상이 그랬다.

미신을 믿는 이들이 기(氣)를 받는다며 수첩에 넣어 다니는 금박의 달마 상 그림에 나오는 달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셨다.

반짝거리는 대머리에 길게 늘어진 턱수염, 거기다 개량 한복을 입으신 신부님 모습을 뵙는 순간 나는 타임켑슐을 타고 50년 전 내 어린 때로 돌아가 빛바랜 기억 속에 인자로운 모습으로 간직돼 있는 내 증조부님을 뵙는 마음이었다.


신부님을 뵙기 전에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유무상통(有無相通) 마을’이라는 글씨가 써진 건물 앞에 섰을 때 제일 먼저 내 눈에 뜨인 것은 짧은 윗저고리에 비하여 젖무덤이 너무 커서 젖무덤이 반쯤 드러나 보이는 聖母님 像이었다.

‘아! 사람들이 저 조각상을 보고 이단이라고 시끌벅적 하였구나? 저 성모상을 철거하라고 했다는 것이겠지?’하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한발 한발 젖무덤을 내놓은 성모상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래. 맞아 . 다분히 그럴 수도 있겠어. 외설이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불경스럽다고 말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겠구나.

우리가 거룩한 동정녀로 모시는 성모님을 더구나 주님께서 중재자로 세우신 거룩한 성모님을 감히 어떻게 저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고 말할 수가 있겠구나.


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 조각상이 친근감과 그리움이 울컥 솟는 내 어머니 모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 종일 들에 나가 힘든 밭일을 하시고 퉁퉁 불은 젖무덤을 손바닥으로 비비시며 나보다 8살이나 손아래인 젖먹이 동생 입에 젖꼭지를 물리시던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머리에 이신 동그란 것은 화관이 아니라 들에 나가실 때 항상 머리에 이고 나가셨던 점심밥과 호미를 담은 아주 가느다란 새끼줄로 엮은 종다래끼이고 어머니 곁에 손을 붙잡고 서있는 저 아이는 어쩌면 코흘리개였던 내 어릴 때 모습을 쏙 빼어 닮은 것 같아서 갑자기 돌아가신 내 어머니 생각에 가슴 한쪽이 아리하게 저려왔다.

참말로 별난 신부님이시구나!


신부님의 환영을 받으며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가부좌를 틀고 앉아계신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상을 접했을 때도 나는 십자성호를 긋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 눈에 익은 예수님처럼 보이지 않고 낯이 설었기 때문이다.

응접실 벽에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이 걸개로 걸려있었는데 밑에 이름을 보니 다석 유영모 선생이라 쓰여 있었다.

함석헌 선생께서 일찍이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시라는데 그 어르신의 차림이며 모습이 제자인 함석헌 선생님을 연상케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방상복 신부님 모습도 이미 그분 들을 많이 닮아 있었다.

사람이란 누구를 막론하고 진실로 존경하는 분이 있거나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모습이며 행동, 마음까지도 그 사람을 은연중에 닮는다고 하더니 역시 그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늘의 내 미사지향을 함석헌 선생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봉헌하기로 결심했다.

응접실에 놓여있는 능산리 고분군의 백제시대 왕릉에서 출토된 금동향로의 모습을 딴 향로도 이채로웠다. 우리의 그리스도 王에게 향을 바치는 날은 아마도 저 향로를 쓰실 테지.......

    

신부님께서는 미사 준비를 위해 성전으로 가시고 나는 담배가 고파서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서 로비에 있는 조각물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像' 앞에서 내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

고통스런 표정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계셔야 할 예수님이 평온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내려와 계신 것이었다! 참말로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부활 후 승천을 하시어 안 계신 빈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계신 형상이었다.  

예수님이 어째서 내려 오셨을까? 십자가에 계시지 않고 왜 걸어 내려오셨을까?

아니지, 왜 방 신부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내려놓으신 것일까?....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손에는 자신의 손과 발에 박혔던 굵은 못이 쥐여져 있었고 손등과 발목에는 못 자국이 흉터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건물 바깥의 긴 의자에 홀로 앉아 연거푸 담배를 두 대나 태워가면서 나는  신부님께서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놓으실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어쩌면 20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손바닥과 발목에 대못을 박고 계신 예수님이 너무나 아파 보이고 힘들어 보이시기에 그러신 것은 아닐까?

“주님. 너무 오랫동안 힘 드셨죠? 이젠 좀 쉬십시오. 이제부터 이 유무상통마을에서는 제가 책임을 지고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살필 테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제 집에서라도 좀 평안히 쉬고 계십시오.”

어쩌면 신부님께서 그런 마음에서 그러신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 같은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요. 그만 생각하고 미사에 참례 해야지 하면서 나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유무상통 마을에 계신 노인 분들과 면회를 온 가족들과 더불어서 감동적인 신앙인의 MANIFESTO 강론과 이민 주일을 맞아 미사에 함께 자리한 고통 받는 외국인 며느리의 아픈 얘기를 들으면서 내 속이 찔리는, 뜻 깊은 미사를 마쳤다.

미사 후에 주일을 맞아 양로원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러 각처에서 찾아온 가족들과 더불어 맛있는 점심식사를 한 후에 미리내 성지를 순례하는 길에서도 나는 오로지 “오로지 종합노인복지법인 유무상통마을”에 내려와 계신 예수님 생각만 골똘했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님 책 속에서 “꼬마 말셀리노 성인”얘기가 불현듯이 생각났다.


어린 고아 말셀리노는 부모를 잃은 후부터 수도원에서 수사님들 손에 자랐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수사님들이 식사 후에 빵을 남겨 놓으면 자꾸만 그 빵이 없어지기에 누가 그런 짓을 하나 하고 유심히 살폈더니 말셀리노가 수사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운 뒤에 나타나서 그 빵을 몰래 품속에 감추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빵을 부족하게 주는 것도 아니고 제가 먹으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저 아이가 무슨 까닭으로 저런 짓을 할까? 의심을 품고 하루는 수사님 한 분이 그 말셀리노 뒤를 밟아 조심조심 따라 갔더니 긴 복도를 지나 귀퉁이에 있는 창고 쪽으로 향하던 꼬마 말셀리노가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라는 것이었다.

그 창고에는 오래 돼서 낡은 십자가며 수도원에서 쓰던 집기 같은 것을 넣어 두는 곳일 뿐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 아니었는데도 창고 안에서 말셀리노 가 누구에겐가 얘기를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었다.

“아저씨. 배고프지? 오늘은 수사님들이 빵을 한 개 밖에 안 남겨놨어. 온 종일 매달려 있으려면 아저씨 배가 많이 고플 텐데 어떡하지? 하나만 남겨놓을 줄 알았으면 내가 하나쯤 덜 먹고 미리 주머니에 넣어 두었으면 두 개 드릴 수 있었는데....그런데 아저씨. 우리 엄마는 언제 볼 수 있어? 나 말셀리노는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단 말이야. 아저씨가 나를 엄마한테 데려다 준다고 약속했었잖아?”

하도 이상해서 수사님이 열쇠구멍으로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아! 아?!

거기에 왠 덥수룩한 수염에 벌거벗은 남자...! 아니! 예수님이 낡은 십자가위에서 한쪽 손을 내밀어 말셀리노가 준 빵을 받아 맛있게 잡수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사님은 기겁을 하고 엎드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눈을 열쇠구멍에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예수님께서는 빵을 잡수신 후에 말셀리노 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말셀리노야. 그렇게도 엄마가 보고 싶으냐? 꼭 엄마한테 가야 하겠니?”하며 다정하게 말씀까지 하시더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즉시 수도원장에게 보고되었다. 현장을 본 수사님 이외에는 모두들 환상이다 그럴 리가 없다 왈가왈부하다가 다음날은 빵을 여러 개 두고 수도원장님과 몇몇 수사가 함께 몰래 말셀리노 뒤를 밟았는데 전날과 똑 같이 창고에 들른 말셀리노가 만족한 목소리로

“아저씨. 어서 내려오세요. 오늘은 웬 일인지 모르겠어요. 수사님들이 빵을 많이 남겨놔서 3개나 가지고 왔어요. 오래 매달려 있으려면 너무 배가 고플 텐데 어서 이 빵을 먹어요. 그리고 오늘은 아저씨가 꼭 나를 우리 엄마한테 데려다 주세요. 약속을 지키셔야지요.”하는 것이었다.

수도원장을 비롯해서 모두들 열쇠구명으로 번갈아 보며 그 장면을 보는 중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오셔서 빵을 잡수시고 말셀리노를 품에 안고 재워주셨는데 모두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오! 주님. 저희들을 용서하소서. 저희가 너무나도 주님을 몰랐나이다.”하고 통회하는 순간 어느새 주님은 다시 십자가에 본모습으로 올라가시고 꼬마 말셀리노는 엄마 품에 안긴 듯이 평온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갔다는 얘기였다. (그 후 꼬마 말셀리노는 성인품에 올랐다고 하는데 꾸며낸 소설이 아니라 이 기적 같은 일은 교황청에서 인정한 사실이라 했다.) 

    


미리내 성지를 둘러 와서 전망이 좋은 휴게실에서 함께 간 굿자만사 일행들과 신부님, 그리고 그곳 휴게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어르신들과 더불어 즐거운 오락회를 하면서도 신부님과 눈만 마주치면 자꾸만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에 대한 생각만이 떠올랐다.

그 때였다. 어쩌면 내 그런 심정을 눈으로 꿰뚫어 보신 것일까 신부님께서 일행과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나는 마치 나쁜 짓을 몰래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멋쩍기가 짝이 없어서 신부님 곁으로 다가서며 얼른 말을 둘러댔다.

“신부님, 오늘 미사강론에 깊은 감명 받았습니다. 저희 본당을 새로 신축하는데 제 형편에 한 2백만 원만 낼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신부님 강론말씀 을 듣고 3백만 원으로 올려서 금주 중에 낼 생각을 했습니다.”

묻지도 않은 엉뚱한 얘기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도 어쩌면 내가 너무 당황해서였을 것이다.

“어느 본당이시죠?”귀가 안 좋으신지 신부님은 보청기를 끼고 계셨다.

“서울 장한평 본당입니다”

“권 형제는 전에 인도네시아에 가 있었다고 했죠? 나는 젊었을 때 파푸아 뉴기니에서 사목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그쪽 사람들은 종교가 즉 생활이잖습니까?”

신부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았다. 내가 만난 보르네오 사람들은 회교신자는 물론이고 천주교신자들까지도 우리처럼 마치 악세서리 지니듯이 종교를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회교신자는 하루에 6번. 천주교신자는 아침기도 삼종기도 저녁기도를 빼놓지 않고 하면서 언제나 말씀과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그러기에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이며 마음이 그들의 생활이며 몸에 배어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십자가를 보니까 파푸아 원주민들은 왜 입술에 뭔가를 달아서 이렇게 두껍고 피부도 까맣잖아요? 그런 형상의 예수님 상을 조각해서 만들어 걸었더라고요. 저한텐 큰 충격이었어요. 저렇게 해서 저들의 믿음이 토착화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나고요....”

(나도 80년대초에 자카르타의 어느 성당에서 비썩 마르고 체구가 작은 자바인 형상의 십자가를 본 일이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약 20년 전에 한복을 입은 예수님과 성모님 상을 만들어 봉헌하기도 했고 또 부처님 오신 날에 봉축 현수막도 성당 정문 입구에 걸었더니 중앙일간지에서 보도를 하고 여기저기서 조금 난리를 폈지만 요즘에 와서는 서로 경축일에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 보통 일처럼 됐잖아요?”예전에는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과 사람에 따라 의식과 문화의 차이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15-6세기에 이미 천주교를 접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나 폴튜걸領 파푸아 뉴기니에선 자국인(自國人) 형상의 예수 상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또한 회교사원인 모스크나 천주교성당, 개신교 교회의 난간이나 복도에 담배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고 예배시간 이외에는 그곳에서 아무나 담배를 피워도 된다. 우리 의식이나 문화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비정상이 그들에게는 정상이라는 점이다.

“먼저 안나의 집(실버요양원)을 지을 때는 예수님 상을 웃는 상으로 해 봤어요. 십자가의 고통에 찡그리신 예수님을 이제는 좀 웃게 해 드리자는 마음이었지요. 다 이루셨다고 하신 예수님이 한도 미련도 없으실 예수님이신데 그런 예수님이 언제까지 극심한 고통에 찡그린 그 표정으로 가시관의 고통만 맛보아야 하느냐 그 생각이었지요 뭐." 신부님의 달변은 계속 되었다.

"더구나 무료 요양원에 모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미 세상을 거의 다 사신 분들이시고 대부분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데다 일반인들이 탐탁히 여기지 않는 무료 요양원에 오시니 그 심정이 오죽하시겠어? 그런 어르신들에게 찡그린 예수님만 보여드릴 게 아니라 기쁨으로 하늘나라로 부활승천하시는 환희의 형상으로 예수님의 표정을 보여드려서 기쁨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시게끔 하고 싶었어요.”
신부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방 신부님이 사제님이시기 전에 창조적인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여기 말고도 한복을 입은 성모상도 많이 있고 그것을 보통으로 여기지 않는가요?”그 말씀도 맞는 말씀이셨다.

“이 유무상통 마을에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게 했어요. 좀 쉬셨으면 해서....2000년을 매달려 계셨는데 이젠 좀 쉬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이를 가지고 소견 좁은 분들이 초기에 왈가왈부들을 하셨는데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지 뭐... 아무튼 부활하신 예수님만은 내 마음을 아시는지 가끔 ‘내 아들 안드레아야. 너밖에 없구나. 2천년 만에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 편히 쉬게 해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마음의 귀로 들을 때마다 나는 행복해서 속으로 빙긋 웃곤 해요.”

방 신부님의 그 말씀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속으로 그랬다. ‘신부님. 저 같은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헤아리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을 여기서 편히 쉬시라고 내려놓으셨을 것이라 여겼던 것음 맞잖아요?’


내가 확실히 알 수가 있었던 것은 방 신부님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방 신부님은 말씀이나 입으로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행동으로 예수님을 따르며 사랑하신다는 점이었다.

당신께서 지으신 '유무상통(有無相通)마을'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실재와 비실재의 유무상통만이 아닌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다시 말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공생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방신부님께서는 약16년 전, 한 시골 성당 사제관에서 무의탁 어르신들을 모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도 차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되어 앞으로는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임을 미리 절감하셨다고 한다. 

전국 90여개 성당에 매주 나가셔서 모금동냥을 하는 한편, 벽돌을 손수 나르며 직영 처리로 2,400여 평 규모의 작은 안나의 집과 여기애인의 집을 지으시면서 한편으로는 복지행정대학원에서 복지이론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현재 1급 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손수 시설장도 겸임하고 계시다.

대학원 공부를 하시면서는 가진 사람들도 또한 교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귀하신 하느님의 자녀들임을 깨닫고 연건평 6,500평의 유료양로원인 유무상통마을을 미리내에서 시작하여 오늘 이 자랑스러운 어르신 공동체를 이루셨다는 신부님의 혜안에 나는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무료노인요양원인 [작은 안나의 집]을 비롯해 [성베드로의 집]과 무료노인전문요양원인 [여기애인의 집], 또한 미혼모와 그 아가들의 안식처인 [우리성모님댁]을 운영하고 계시니 유료 양로시설인 유무상통마을을 통하여 얻는 수익으로  방 신부님께서 앞으로 더욱 많은 무료 양로원을 설립하시어 돈이 없어 갈 곳조차 없는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많이 만들어 주시기만을 축원해 드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를 수가 있다. 오웅진 신부님의 꽃동네 사랑도. 박성구 신부님의 작은 예수회 사랑도 또 다른 사제님들께서 꾸려 가시는 모든 사랑의 기구와 자선 단체들....

그러나 어떤 방법이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어떤 방법이 예수님을 덜 사랑하는 것은 오직 그 사랑을 받으시는 예수님만이 아실 것이다.

영국의 작가 체스터톤은,"내 의견에 맞으면 정통이고, 내 의견에 맞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하여 정통과 이단 놀음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실에 참으로 예리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체스터톤의 이 말을 내 식대로 바꾸어 말하면 내입에 맞으면 정통이요 내입에 맞지 않으면 이단인 것이리라.

 

우리는 남을 공격할 때 흔히 이단이라고 상대를 몰아세운다. 그리고 자기는 정통이라고 자처한다. 특히 종교인들 간에 정통과 이단의 논쟁이 많다.

수학은 정답이 언제나 하나이다.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종교나 철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간의 세계관과 가치관 신념 의견 등은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어느 정도의 타당성과 진리성을 갖는다. 진리성이 많은가 적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도 과오의 가능성이 있는 동시에 남도 정답의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관용과 양보와 타협과 이해가 가능한 게 아닐까?

내 의견은 언제나 옳고 정통이요, 남의 의견은 언제나 틀리고 이단이다.

애처롭게도 우리는 이러한 생각의 노예가 되기 쉽다. 체스터톤의 이 말은 깊이 음미해 볼 만한 보석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며 사랑하는 방법이 특이하다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몬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 중의 하나인 판단의 자의성에 기인한 것이리라 여겨진다.

 

설립 후 5년 동안, 전국에서 260여 어르신들께서 모여와 매일미사를 올리며 기도하고 한 솥의 밥을 나누시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나는 보고 왔다.

방 신부님과 더불어 유무상통 마을에 일생을 맡기시고 행복하게 사시는 그분들을 누가 감히 이단의 신부와 더불어 이단의 소굴에서 사신다고 막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260여 어르신들에 대한 무도한 모독행위요 명백한 명예훼손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르신들과 각처에서 일하는 그분들의 자녀들이 만일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막말을 하는 그 사람이 거꾸로 욕바가지를 면키 어려울 것이 다.

그 유료양로원에 계시는 260여분 중에 주교님의 어머님을 비롯하여 유명인사의 부모님들이 계시고 그 중에는 매월 일정한 금액을 무료양로원에 계신 분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시는 훌륭한 어르신들도 많이 계신다.


나는 큰 별을 보고 왔다.

내 작은 그릇으로는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의 그릇 앞에서 샘솟는 맑고 벅찬 감동으로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순화시키고 왔다.

언제나 그 큰 별이 우리들 가슴에 살아 빛나기를 바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속으로 외쳤다.

“주님. 저도 이제부터는 주님을 좀 더 구체적으로, 더욱 더 열심히 사랑하겠나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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