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
(녹)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자유게시판

어버이날 아침, 가슴에 꽃을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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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5-08 ㅣ No.99190

 

             어버이날 아침, 가슴에 꽃을 달고
                  조카에게 카네이션을 받았습니다



<1>

나도 어버이의 '반열'에 들어 한 세상을 살고 있기에, 또 한해 '어버이날'을 맞은 오늘 내 가슴에도 한 송이 꽃이 달려 있다. 비록 조화이긴 하지만 빨갛고 예쁜 카네이션이다. 푸른 나뭇잎과 작은 안개꽃도 두어 개 곁들여진 꽃송이에는 두 가닥의 리본도 달려 있다. 리본 한 가닥에는 '어버이 은혜'라는 말이, 또 한 가닥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런데 오늘 내 가슴에 달려 있는 카네이션 꽃송이는 내 아이들이 달아준 것이 아니다. 딸아이는 서울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 아들 녀석은 논산의 한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으니, 녀석들이 오늘 아침에 부모 가슴에 꽃을 달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주 금요일 밤에 집에 왔다가 어제 오후에 돌아가면서 두 녀석은 오늘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는 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 우리 집에 카네이션이 등장한 것은 순전히 함께 사는 조카녀석 규빈이 덕이었다. 규빈이가 미리 준비해놓았던 카네이션을 어디에선가 꺼내오더니 할머니와 큰 엄마와 큰 아빠의 가슴에 차례로 제 손으로 달아준 것이었다.

(녀석은 남은 꽃 한 송이는 아빠께 달아 드릴 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저녁 때 퇴근을 해서 저녁 잡수러 오시면 달아 드릴 거라고 했다.)

할머니와 큰 엄마 다음에 내게로 와서 가슴에 꽃을 달아주는 녀석의 작은 손을 보면서 나는 긴장을 했다. 녀석이 자칫 손을 잘못 놀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리고 녀석이 무사히 일을 마쳤을 때 나는 녀석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올해부터는 어버이날에 제 엄마에게는 꽃을 달아 드릴 수 없게 된 녀석의 처지가 새삼스럽게 더욱 가엾어져서 녀석을 힘주어 꼬옥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규빈이는 이미 며칠 전에 카네이션을 준비했었다. 학원에서 돌아올 때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었다. 예사 물건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엇이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순간적으로 집히는 것이 있어서 모른 척했다. 녀석은 그렇게 며칠 전부터 어버이날을 준비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 내 가슴에 꽃을 달아주는 녀석의 작은 손을 보는 순간 불현듯 지난해의 일이 떠올랐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도 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규빈이의 꽃 선물을 받았다. 녀석은 아침 일찍 꽃송이들을 들고 와서 할머니와 큰 엄마와 큰 아빠 가슴에 차례로 꽃을 달아주고 돌아갔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제수씨에게 감사했다. 제수씨가 아이를 잘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규빈이가 어버이날 아침에 큰집에 와서 어른들께 꽃을 달아 드리는 것은 유치원생 때부터 해온 일이었다).

가슴에 꽃 한 송이씩을 달고 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기쁜 웃음을 지으며 큰 조카녀석인 규왕이 얘기도 했다. 확실히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는 다르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중학생이 된 규왕이는 아침 내내 툴툴거리며 심통을 부렸다. 학교 행사로 오늘부터 2박 3일 동안 야영을 한다는데, 그 얘기를 어젯밤에서야 했다. 준비물 목록이 적힌 인쇄물도 오늘 아침에서야 내놓았다. 그 바람에 뒤늦게 준비물을 챙기느라고 할머니와 큰 엄마 큰 아빠 모두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온 가족을 바쁘게 하고는 녀석은 어버이날과 관련해서는 어른들께 인사 한마디하지 않고 학교로 내빼버렸다. 그런 오빠에 비해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규빈이는 어린 소견으로도 미리미리 카네이션 꽃 네 송이를 준비해놓고 어버이날 아침에 온 가족에게 기쁨을 안겨준 것이었다.

<2>

경기도 안양에서 사시는 누님이 어제 또 한번 친정을 다녀가셨다. 누님은 해마다 어버이날 즈음에(대개는 직전에) 친정 방문을 하시곤 하는데, 환갑을 자신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올해는 안산에서 사는 누이도 동행을 했다.

누님은 친정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고(친정붙이 모두에게 고루 신경을 써주시고), 굳이 음식점으로 가서 친정붙이들에게 별식으로 점심 대접을 해주셨다. 친정에 오셨으니 당연히 친정 동생이 점심 대접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누님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어머니를 대접해 드리려 왔으니 비용은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누님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님은 성묘를 원했다. 당연한 순서였다. 누님은 꽃집에 들러 꽃다발 두 개를 사도록 했고, 성당 묘소로 가서는 두 곳을 들렀다. 먼저 아버님 묘에 절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올케의 묘에 가서는 눈물을 지었다.

어버이날 하루 전에 친정을 방문하여 팔순의 친정 어머니께 위안을 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성당 묘소에도 가서 20년 전에 유명을 달리하신 친정 아버님을 찾아뵌 누님은 내게 두 개의 봉투를 내밀었다.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위한 생미사와 아버님의 영혼을 위한 연미사를 봉헌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부부는 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갔다. 다행히 평일 미사를 아침에 지내는 월요일이었다. 나는 누님이 주신 두 개의 봉투 중에서 연미사 예물봉투에는 올해로 영면 20년이 되신 아버님과 엊그제(5일) 3주기를 보내신 장모님, 그리고 지난해 12월 세상을 하직한 제수씨의 이름을 적었다. 생미사 예물봉투에는 어머님과 미국에서 살면서 폐질환 투병 중인 첫째 매제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어버이날 아침에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지낼 수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위한 연미사와 살아 계신 어머니를 위한 생미사를 어버이날 아침에 동시에 봉헌한다는 것은 참으로 남다른 기쁨이요, 행복일 터였다. 또한 몸소 우리에게 그런 일을 만들어주신 누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미사를 지내며 누님께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한 분 형제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 밝히기를 사양하는 어떤 형제님 한 분이 올해의 어버이날을 위해 며칠 전에 신부님께 100만원을 드렸다고 했다. 성당의 노인들께서 어버이날 하루를 즐겁게 지내시도록 비용을 드린 것이었다.

신부님은 그 돈으로(모자라게 되면 당신 돈을 보태서) 70여 명의 신청 노인들을 안흥으로 모시고 가서 유람선을 태워 드리고 생선회를 대접해 드릴 계획이라고 했다. 그 말씀을 하시고 신부님은 100만원을 기탁하신 형제님에게 감사하면서, "어버이날인 오늘 하늘 우리 성당의 노인 잔치가 아무 사고 없이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잘 이루어지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특별히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신부님은 미사 끝 무렵에 "미사를 마치기 전에 우리 다같이 '어머님의 은혜'를 1절만 부르자"고 하시고는 힘차게 노래를 선창했다. 어버이날 아침 미사 시간에 성당에서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는 것은 정말 색다른 감흥을 안겨주었다.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닦는 자매들도 있었다.

미사 후 성당 문 앞에서 신부님이 큰 수녀님께(작은 수녀님은 피정에 가셔서 안 계시고) 봉투 하나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녀님,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신다고 했지요? 오늘 친정에 다녀오세요. 오늘 가셔서 부모님 곁에서 하루 쉬시고 내일 오세요"하시는 말씀도….

신부님은 몇 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현재 멕시코에서 사신다고 했다. 돌아가신 아버님과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사시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도 크실 터였다. 미사 중에 강론을 하시면서 "나이를 먹어 갈수록 돌아가신 아버님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내 뇌리에서 명료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3>

이 글을 쓰는 지금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는다. 지금쯤은 유람선을 타고 국립해안공원인 태안반도 연안을 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된다. 그 유람선의 갑판 위에서 70여 명의 노인들이 어린애처럼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갖가지 사는 일의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꿋꿋이 생활하시는 고령의 어머니도 고맙고, 성당 노인들을 위해 100만원을 기탁하신 형제님도 고맙고, 노인들을 위해 몸소 수고하시는 신부님도 고맙고, 해마다 어버이날 직전에 친정을 찾아주시는 누님도 고맙고, 엄마 잃은 처지에서도 어버이날 아침에 밝은 웃음을 짓고 할머니와 큰 엄마 큰 아빠의 가슴에 꽃을 달아준 규빈이도 고맙다. 내가 수많은 고마운 사람들 속에서 매일같이 감사하며 사는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고 확인한다.

그리고 나는 기도한다. 어버이날 아침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줄 가족이 없는 무의탁 노인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내가 내 가족의 기쁨과 행복만을 생각하거나,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로지 그런 마음으로만 살아서는 그것 자체로서도 능히 죄악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하여 잠시 마음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어버이날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은 그런 생각을 해야 기도를 할 수 있고, 또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마음 아파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작게나마 그들을 도우며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또 한해 다시 맞은 어버이날, 우선은 내 어버이부터 기쁘게 해 드리면서 내 어버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을 생각하고, 특히 가족이 없는(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무의탁 노인들을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문득 오늘 아침 미사 때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신부님은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어린이날'은 없어져도 됩니다. 차라리 어린이날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매일이 어린이날입니다. 부모들은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해서 사는 듯이, 아이들을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떠받들고 삽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것의 절반, 아니 십분의 일이라도 자기 부모에게 돌려드린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이날에 어린이들보다 자신의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습성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어린이날은 무의미합니다."


2006-05-08 16:40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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