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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인인 새 집의 '등기권리증'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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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5-15 ㅣ No.99501

 

        아내가 주인인 새 집의 '등기권리증'을 받고 
                세금 고액 체납자 신세로 살고 있는 사연
 




<1>

최근 법무사 사무소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곳에 가서 '등기권리증'이라는 것을 받아왔다. 법무사의 이름과 직인이 찍힌 등기권리증 안에는 태안군수 검인 직인이 찍힌 태안 진흥더블파크 아파트 공급계약서, 그리고 등기부 등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뒷면에 인지가 많이 붙어 있는 아파트 공급계약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문서'일 터였다. 그리고 등기부 등본은 새 집의 등기부 등본답게 '이하 여백' 난이 그야말로 작은 오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집에 와서 그 문서를 살펴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참으로 '만감(萬感)'이라는 말의 실체와 무게를 절절하게 실감하는 기분이었다.

우선은 지금 살고 있는 32평 새 아파트가 이제 확실하게 내 집이 되었다는 인식이 선명했다. 그것은 큰 기쁨이요 흡족함이었다. 이제부터는 우리 가족이 비교적 넓은 집에서 별 불편 없이 안심하고 살게 되었다는 그 사실 인식은 내게 큰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등기권리증 안에 이름이 찍혀 있는 '권리자'는 내가 아닌 아내였다. 가장인 내 이름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아내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집의 소유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아닌 아내인 셈이었다. 다시 말해 이 집은 문서상으로는 아내의 개인 재산인 것이었다.

등기권리증이 보여주는 명백하고도 확실한 그 사실은 내게 조금은 아픈 비감을 갖게 했다. 만감 교차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새 집을 구입하면서 구입자(권리자)의 이름을 아내로 할 수밖에 없었던 내 인생 사연이 다시금 중층의 아픔을 갖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 집의 등기권리증이 담긴 서류 봉투 안에는 전에 살던 23평 연립주택 관련 문서도 함께 들어 있는데, 그 문서에도 내 이름이 아닌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전에 살던 집을 팔지 않고 전세를 놓았는데, 전세계약서에도 아내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이다. 그 집 역시 권리자가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서류상으로는 재산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완전한 날탕이요 백수건달 신세다. 뿐인가, 나는 서류상으로 재산을 가질 수가 없는 사람이다. 재산을 소유해서는 곤란한 일이 발생될 수밖에 없는 '악조건'을 지니고 사는 참으로 가련한 사람이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비감에 젖게 한다. 그리고 그 비감은 단지 재산을 지닐 수 없는 조건에 대한 슬픔이나 자괴감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을 피하기 위해 굳이 아내의 이름으로 재산을 취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 편법을 취하는 셈인 나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곤혹스러운 인식마저 갖게 한다.

<2>

전에 살던 집의 권리자가 아내 이름으로 된 사연을 소개해본다. 어떤 사람의 사업에 담보 제공을 했다가 그만 법원 경매로 넘어간 집을 간신히 다시 찾은 눈물겨운 사연이 그 집에는 정말 눈물처럼 어려 있다. 그러니까 그 집은 내가 두 번을 산 셈이다. 물론 1986년 처음 취득할 때는 내 이름으로 문서 작성을 했다. 그때 나는 생전 처음 작은 부동산이나마 내 재산을 가져보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 세월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96년 우리 집은 법원 경매로 넘어갔고, 나는 경매 날마다 서산 지법의 경매 법정을 쫓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제발 우리 집을 잡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리고 몇 번의 유찰을 지켜본 끝에 초등학교 교사인 마누라를 하루 결근시키고 법원으로 데리고 가서 아내 이름으로 낙찰을 받아 결국 집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날 경매 법정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하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면서도 아내는 연방 손수건으로 손바닥의 땀을 닦았다. 평생 그런 긴장은 처음일 터였다.

아내를 그렇게 고생시키며 경매 법정에서 아내 이름으로 간신히 되찾은 그 집에서 우리는 10년을 더 살고 올해 1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그 집을 팔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집에 대한 이상한 애착 때문에 팔기가 싫었다. 언젠가는 재건축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실은 그것보다도 눈물겨운 사연이 어려 있는 그 집을 도저히 팔 수 없다는 그 집착을 정말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아내는 연립주택과 아파트, 두 개의 집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서상으로 아내는 두 개의 집을 소유했으니 부자(?)다. 새 집을 장만하기 위해 국가유공자인 내가 이리저리 융통을 하는 등 꽤 큰 기여를 했지만, 서류상으로는 나는 아무런 지분도 갖지 못하는 주제인 것이다.

나는 1990년대 초 어떤 사람의 사업을 도와줄 때 무려 네 가지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 실수는 그 친구의 사업에 내 이름을 빌려준 일이었다. 내 이름으로 영업자 등록을 한 바람에 그 친구가 사업을 확장할 때도 대표자는 나였다. 그 친구에게 여러 번 대표자 이름을 바꾸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모두 허사가 되었고, 자신은 물론이고 마누라 이름으로도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는 그 친구의 처지를 돕기 위해 이름을 빌려 주었던 나는 결국 엄청난 올가미에 걸려든 형국이 되었다.

두 번째 실수는 내 작은 보금자리를 근저당 설정을 하여 담보 제공을 해준 일이었다. 세 번째 실수는 그 친구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사채를 얻을 때도 연대 보증을 서 준 일이었다. 네 번째 실수는 대부분 아내의 월급으로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 일이었다.

그 친구의 사업이 철저하게 거덜 나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런저런 일로 형사 문제까지 발생했을 때 그 친구 사업의 대표자로 이름이 올라 있는 나는 무려 일곱 번이나 수사기관의 호출을 받아야 했다. 서산경찰서 두 번, 서산지검 한 번, 대전중부경찰서 두 번, 대전지검 한 번, 아산경찰서 한 번, 이렇게 도합 일곱 번이나 수사기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은 일은 명색 문인인 내게 엄청난 정서 교란을 안겨 주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일곱 번 모두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점이다. 수사기관들은 모두 내가 실영업주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확실하게 인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왜 남의 사업에 이름을 빌려주었느냐, 이런 일을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 따위를 묻기 위해 사람을 불러 먼 길을 오게 하고,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하루 종일, 또는 밤늦게까지 붙잡아놓았다가 심야에 풀어주기도 하는 수사 방식은 이만저만 곤혹스러움과 피곤을 안겨주는 게 아니었다.

대전지검의 젊은 검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지방신문에 연재소설을 쓰던 내 작가 명색을 헤아린 탓인지 "아무리 글만 쓰고 사시는 분이더라도(세상 물정을 모르는 분이더라도) 자기 방어는 하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00가 남이라면 남일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이름을 빌려주고, 집을 담보로 주고, 연대보증을 서 주고, 돈을 주고, 그렇게 네 가지씩이나 해줄 수가 있습니까. 그거, 너무 (미련)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면박 비슷한 말로 무안을 주었으면서도 그 젊은 검사는 내가 조사를 마치고 대전지검 청사를 나올 때는 현관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배웅을 해주었다. 나는 그 젊은 검사의 그 날의 그 호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내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3>

법원 경매로 넘어갔던 내 작은 보금자리를 간신히 되찾고, 금융기관과 사채에 연대보증을 서 준 죄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장장 11년 동안 1억 5천만 원의 보증 빚을 갚았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아내의 월급을 뭉텅 잘라내고 내 알량한 고료 수입을 몽땅 붙여서 매월 200만 원 이상씩 빚잔치를 하며, 몹시 쪼들리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눈물겨운 세월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아이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일은 중단하지 않았다. 아이들로 하여금 평생 동안 음악을 벗하며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느님께 약속한 교무금 납부에 최선을 다했다. 어느 핸가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벌어주시는 돈으로 교무금을 해결하기도 했다. 아버님의 유고 동화집에 실린 동화 작품들을 다른 출판사에서 사용하면서 사용료를 보내오곤 했는데, 내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벌어주시는 돈은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선 교무금부터 해결한 적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집을 담보로 내준 일과 보증을 서 준 일은 세월과 함께 모두 해결이 되었는데 한 가지 아직도 내 목에 올가미로 걸려 있는 일이 있다. 그 친구의 사업에 내 이름을 빌려준 실수로 남게 된 일이다. 담보 제공과 빚 보증 등 다른 것은 다 해주더라도 절대로 남의 사업에 이름을 빌려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드는 일이다.

세무서에서 내게 무려 4천만 원이 넘는 세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보내 왔다. 나는 '이의 신청'을 했다. 수없이 세무서를 들락거리며 소명을 해야 했다. 세무서 직원들은 내가 실영업주가 아님을 인정했다. 그것은 하늘이 알고 내 주변의 모든 이가 알고 그 친구와 영업 거래를 한 수많은 거래처 사람들이 다 인정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가 필요했다. 그 문서는 실영업주인 그 친구가 만들어야 하고, 그 친구의 도장이 찍혀야 하는 것이었다. 또 그 친구가 직접 세무서에 가서 제출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오랫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다. 도저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시간은 가고 세무서 직원들은 계속 나를 쪼아대었다. 어떻게든 글을 써서 몇 푼 벌이라도 해야 마누라 월급 다 빼앗기고 사는 세월을 견딜 수 있는 나로서는 세무서로부터 받는 압박을, 그 정서교란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 상황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나는 이의신청을 철회하는 쪽을 선택했다. 내 쪽에서 일단 세금 부과를 받아들인 다음, 세무서에서 '결손' 처리를 하는 쪽으로 타협을 했다. 나는 세금 부과를 받아들이고 납부를 하지 않아도 세무서에서 가져갈 재산이 내게 없다는 것만 생각했다. 법원 경매로 넘어갔던 작은 보금자리도 마누라 이름으로 되찾았으니, 정말 내게는 세무서에서 차압을 할 만한 재산이 하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세무서에 제출했던 이의 신청을 철회한 다음 날, 국세청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사정을 물어서 사실 얘기를 했더니,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그 친구는 내게 책망을 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면서 원인 무효를 하는 쪽으로 가야지 왜 세무서의 결손 처리 쪽으로 갔느냐는 얘기였다. 결손 처리는 원인 무효가 아니기 때문에 서류는 언제까지나 세무서의 캐비닛 속에 잠을 자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네의 재산 형성이 기록으로 나타나게 되면 즉각 세무서는 칼을 빼게 된다고. 만약 자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인세 수입이 제법 돈이 되면 그 세금을 납부해야 돼. 그것은 세월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래서 세금이 무섭다는 거야."

그때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만약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돈다운 돈이 생기면 우선 그 세금부터 갚지 뭐." 나는 그런 대꾸를 하면서도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4>

그때로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있지만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지 못했고, 세무서에서 일단 결손 처리를 했던 그 세금은 그대로 내게 남아 있다. 다시 말해 나는 국세청의 '고액 체납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금 고액 체납자 신세로 살고 있으니 여러 가지로 유형, 무형의 제약과 불리가 많다. 만기가 다가오는 여권의 기간 연장 신청을 했더니 '연장 불가'라는 빨간색 도장이 찍혀 나오는 일도 최근에 겪었다. 그리고 새 집을 장만하면서도 내 이름으로 계약을 하지 못하고 마누라 이름으로 해야 했다.

내가 최근에 법무사 사무소에 가서 찾아온 지금 사는 집의 '등기권리증' 한중간에 큼지막하게 찍혀 있는 '권리자'의 이름이 아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에는 이런 눈물겨운 사연이 어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묘한 양심의 갈등을 겪는다. 빚을 얻기야 했지만 새 집을 장만하는 처지에서도 4천만 원의 세금을 계속 외면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내가 실업주는 아니더라도, 남의 사업에 이름을 빌려준 죄로 얻어맞은 세금일지라도, 거기에는 함부로 이름을 빌려준 내 과실도 있으니, 우선은 그 세금부터 청산을 하는 것이 떳떳한 일 아닌가. 일단 결손 처리된 그 세금을 계속 놓아둔 채로, 그 세금을 갚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아내 이름으로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닌가.

정말 나는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 이름으로 집을 장만했다는 사실이 그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안겨주는 것 같다. 새 집을 장만한 사실로 말미암아 내가 고액 체납자라는 사실이 내 뇌리에서 더욱 명료해지는 현상은 정말이지 내게 야릇한 괴로움을 안겨 준다.

새 집을 장만하여 엄마 잃은 두 조카녀석까지 거느리고 편안하게 살면서도 내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고 온전히 편안하지가 않다. 내 탓이든 남의 탓이든 내가 세금 고액 체납자 신세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내 양심을 불편하게 만들고, 때로는 가슴 시린 비애를 안겨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참으로 부끄럽고도 창피한 이야기지만, 여러 사람에게 참고 사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오래 망설인 끝에 고백을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2006-05-15 14:44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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