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5년 <대전가톨릭문우회> 문집 제2호 『당신 안에 하나』에 실린 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쓴 때가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엊그제 올린 <아내가 주인인 새 집의 '등기권리증'을 받고>라는 글을 쓰던 중 문득 10년 전에 쓴 <선친께서 벌어주시는 돈>이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 글을 찾아서 읽어보니 감개무량함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여러 형제 자매님들께 소개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홈페이지 (http://jiyoha.netian.com) '가족' 난의 '선친 지동환님' 방에 올려져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만, 11년 전의 글을 오늘 '굿 뉴스' 자게에 올립니다.
저의 최근 글 <아내가 주인인 새 집의 '등기권리증'을 받고>를 읽으신 분들께는, 그 외에도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신앙 생활에 조금은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이 좀 길어서 세 번으로 나누어 소개하며, 제 구차한 '신앙 고백'을 너그럽게 관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친께서 벌어주시는 돈 ②
<3>
내 일방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도서출판·00>는 내 선친의 유고 동화집이 우수한 책으로 평가받고 잘 팔리는 책이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쪽에서 졸라서 마지못해 인심 쓰듯 책을 만드는 듯한 양상이었으므로 그런 생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순박하게 생각하고 싶다.
아무튼『팥죽할머니와 늑대』는 나나 출판사나 모두 대단히 자랑스러운 책이 되었다. 그 책이 발간되자마자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관심을 끌면서 '권장도서'로 추천되고 겨울방학 동안 어린이들이 읽을만한 책의 1위로 선정된 사실 등은 내가 이미 여러 자리에서 강조한 바 있어서 또다시 거론하는 것이 면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팥죽할머니와 늑대』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도서출판·00>에서 우대를 받는 도서 중의 하나가 된『팥죽할머니와 늑대』는 95년 3월 현재 5쇄를 찍은 것으로 듣고 있다. 지난해 가을 출판사로부터 다시 150권의 책을 선물 받았는데, 판권란을 보니 4쇄를 찍은 것이었다. 1쇄에 몇 부씩을 찍는지, 현재 5쇄면 얼마나 팔린 것인지 나로서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출판사가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책이 팔리는 것만도 돈을 버는 일인데 인세가 전혀 나가지 않으니 마치 꿩 먹고 알 먹는 격일 터이다.
지난해 언젠가 한번은 출판사 사장에게 정중히 편지를 보냈었다. 물론 인세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고, 내 어머님께 용돈을 좀 드렸으면 하는 마음을 표시한 글이었다. 어머님은 사별한 당신 남편의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기쁜 빛이면서도, 책밖에는 당신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허전하고 섭섭하신 양이었다. 나도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그런 심정과 사정을 <00> 출판사 사장에게 일삼아 편지로 얘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등기로 보냈는데도 출판사로부터는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
이런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문단 친구들은, 특히 자주 만나 어울리는 서산의 변호사 친구들은 정식으로 인세를 요구하는 일을 하자는 말도 했다. 애초 출판사에 대해 인세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한 것은 초판에나 해당되는 것이고, 재판까지도 적용을 해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양식과 상도의에 어긋날뿐더러 법적인 하자가 명백하다는 얘기였다. 무한정 인세 지불 의무를 지지 않고 출판사가 장사를 계속 한다는 것은 결코 성립될 수 없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는 논지였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 착한 마음과 좋은 뜻을 가지고 한 일인데, 그 일과 연관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 그 일의 가치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 아버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세속의 일을 너무 결부시킨다는 것은 하늘 나라의 아버님부터 바라시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아버님의 책이 이 세상에 오래 남아 수많은 어린이들의 동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지니자고 스스로 재삼 다짐했다.
그렇게 <도서출판·00>로부터는 350권의 책만 받았을 뿐이지만, 지난해부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버님의 동화집『팥죽할머니와 늑대』가 뜻밖에도 돈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아버님의 책을 각별히 취급해 주는 덕분이었다.
우리 나라의 어린이도서 및 독서의 연구와 지도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쌓아가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도서출판·오늘>과 함께 '주제별 동화집' 10권을 발간키로 했는데, 거기에 들어갈 아버님의 동화 3편을 선정했다면서 사용 승낙을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요청서의 내용을 보니 사용료로 장당 4천원씩을 주겠다는 말이 들어 있었다. 일단 발표된 작품의 재수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장당 4천원은 파격적인 금액이었고, 얼른 해당 작품 3편의 원고 매수를 따져 보니 5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고 동화 작품집이 돈을 불러들인다니,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도서연구회>는 그후에도 두 차례나 '사용 요청서'를 보내왔다. '독서 감상문 쓰기 지도서'를 펴내는데 아버님의 동화들을 사용하겠으니 승낙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용료도 편당 5만원씩 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 <어린이도서연구회>는 "고 지동환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위해 훌륭한 동화들을 지으신 것에 대해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그런데 아버님의 동화들을 사용하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는 요청은 다른 곳에서도 왔다.
나는 지난해 <도서출판·오늘>로부터 아버님의 동화 작품들이 수록된 예쁜 책들을 받은데 이어 올해에는 <우리교육>과 <웅진출판>으로부터 아름다운 모양의 책들을 받았다. <우리교육>은 아버님의 동화를 두 편 수록했는데, 아버님의 동화「바람도깨비」가 4권 중 1권의 표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웅진출판>은 '독서감상문 쓰기 지도서'인데, 책의 절반 가량을 아버님의 긴 동화「종달새 노래」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웅진출판>의 편집자는 아버님의 작품에 대해 "우리 나라의 산과 들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글"이라고 말하고, 아버님에 대해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 겨레의 정서가 담긴 동화를 쓴 분"이라고 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의 동화들이 실린 아름다운 책들을 보면서 마음이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아버님께서 이런 책들을 받으시다면, 이런 예쁜 책들 속에 들어 있는 당신의 작품들을 읽으신다면 얼마나 기쁘실까?' 하는 생각이 맨 먼저 가슴에 뛰어들었고, 그런 아쉽고도 안타까운 생각은 길래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4>
부끄러운 고백이요, 채신머리없는 얘기지만, 나는 호되게 언걸 먹은 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교사인 마누라 월급을 다 뺏기며 현재 매월 1백 70여 만원씩 빚을 갚으며 살고 있다. '언걸 먹다' 라는 말이 '남을 도와주다가 피해를 보다' 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인데, 완전히 남이 아니라,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람인즉, 그 말이 내게는 온전히 성립될 것 같지 않다. 하여간 나는 대신 빚 갚아주는 일로 몹시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93년 봄부터 시작된 이 노릇은, 처음엔 70만원 정도이던 것이 몇 차례 솟구치기를 해 가지고 지난해 가을부터는 1백 70만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금액이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는 것이기만 한 게 아니다. 20만원 정도는 원금을 시퍼렇게 놓아두고 이자만 갚는 금액이니, 첩첩 산중의 길은 아직도 멀어 끝이 보이지도 않는 형편이다.
입으로 발음하기가 간단해서 1백 70만원이지, 귀퉁이가 크게 떨어져 나간 마누라의 남은 월급을 몽땅 털고 거기에다가 내가 이 악물고 글써서 번 돈을 보태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며 손 터는 짓을 하다 보면, 그게 한두 번째 하는 것도 아니요, 벌써 수십 번 매월 공식적으로 거듭하는 일이건만, 도대체 무슨 짓인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일찍이 베스트 셀러 인기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지기도 한다.
그래도, 인기 작가는 못되어도 그럭저럭 고료 수입이 있는 편이어서 굶지는 않고 산다. 하지만 빚 해결을 하며 동시에 목구멍 문제를 해결하자니, 당장의 고료 수입에 혈안이 되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졸때기 글들을 쓰며, 지역의 주간신문·월간잡지·계간문예지에 3개의 연재소설을 쓰면서, 고향에 머무는 죄로 지역신문의 주필까지 맡아서 매월 수백 매씩의 갖가지 글을 쓰며 살자니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다.
언걸 먹은 일은 대신 빚 갚아주는 일만이 아니어서, 이름을 빌려 준 죄로 법원과 검찰과 경찰, 그리고 세무서가 관련되는 이런저런 일에 수시로 곤욕을 치르며 늘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신경 분산과 정서 교란을 겪으며 살았고 살고 있기로, 때로는 나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글을 쓰는지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지고, 무슨 일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너무도 난감하여 한참 동안 정신이 멍한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갖가지 신경을 분산시키는 일들이 하많아서, 마치도 무거운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멍에 져 끌고 자갈밭 에움 길을 어렵사리 지나는 형국으로 사는 것만 같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지난해는 여덟 편의 중·단편과 십여 편의 콩트와 그 외 돈 몇 푼씩 생기는 잡글들과 시(詩)도 여러 편 썼고, <충남소설가협회>의 작품집과 아버님의 유고 시집『바람 뫼 뿐이어라』를 발간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지역잡지 <갯마을>과 <새너울신문>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가끔 경탄의 표정을 짓기도 하는데, 나는 매월 자기가 버는 돈으로 옷 한가지 사 입지 못하면서도 불평이나 원망 한마디 하지 않는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기 한량없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첩첩 산중이 아직 멀고, 또 한 명 언걸 먹은 누이동생네의 생활이 말이 아니어서 큰 걱정이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큰 글에 몰두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 실로 뼈아프다. 하지만 나에게도 반드시 좋은 세월이 오리라는 것을 믿으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의 진리를 가슴에 굳게 새길 뿐이다.
내가 왜 지금 이런 극히 사사롭고 창피스런 얘기까지 시시콜콜 다 하고 있는지 의아스럽고 민망한 마음도 크지만, 워낙에 사리 분별이 미약한 데다가 넋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냥 널리 관용해 주시기 바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