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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제주기행5> 아무리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소용 없다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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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방문에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 갔을 때였다. 삼별초! 역사시간에 삼별초가 용감한 군대였느니, 또는 (삼별초의 난)이니 하는 걸 배운 기억은 있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인지 사실 삼별초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알지 못한 채 그곳에 갔었다.
전투장면의 그림과 한두 가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삼별초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글을 읽게 되었다.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게 되었을 때, 삼별초라는 군대가 맹활약을 하여 수십년간의 전쟁에서도 몽고군은 고려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판단에 화친을 청하게 되었다. 고려도 너무 오래 계속되는 전쟁에서 피폐해지는 나라를 생각하여 화친에 응하게 되고 개경으로 수도를 환도하게 되었는데 삼별초군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삼별초가 항거하게 되자 이에 고려왕실은 관군으로는 삼별초를 토벌할 수 없어 몽고군을 끌어들인다. 여몽 연합군은 그래서 삼별초를 토벌하게 되는데 삼별초는 밀리고 밀려 제주도까지 밀려가게 되었다.
몽고군은 제주도까지 쫓아가 삼별초를 토벌하는데 결국 삼별초는 전멸하고 마지막 남은 대장은 한라산 백록담에 가서 자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몽고군은 삼별초를 토벌하고도 제주땅에서 물러나지 않고 도호부를 설치하고 제주도 백성을 백년동안이나 괴롭힌다. 노예처럼 착취하고 조공을 바치게 한다. 말이 백년이지 평균수명도 짧았을 그 시대에 백년이라면 대체 몇 대가 그 치하에서 고통을 당했을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7대 아니면 8대........ 아무튼 백년 후 공민왕때, 최영장군에 의해 몽고군은 격퇴되어 제주는 몽고군으로부터 해방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假定)을 생각해 보았다. 만일 그 당시 삼별초가 관군에 흡수되어 왕의 뜻을 그대로 따라 화친 쪽으로 갔다면 왕실은 몽고군을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삼별초가 어떤 군대인가. 수십년간을 몽고군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버텨낸 강력한 군대였다. 관군은 그런 삼별초를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몽고군을 끌어들인 게 아닌가.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 승냥이를 끌어들인 결과가 된 셈이다. 만일 그때 삼별초가 왕실의 뜻을 따르면서 관군에 편입하였다면, 고려는 몽고가 다시는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나라로 자랄 수도 있었을텐데, 제주도 백성은 그토록 혹독한 고통을 백년씩이나 겪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역사 앞에서 이렇게 이런 저런 가정을 해보면서 얻어지는 교훈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적지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카타리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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