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
(녹)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자유게시판

날개인생 이종욱

스크랩 인쇄

김태우 [atom54] 쪽지 캡슐

2006-05-25 ㅣ No.99829

 

                       날개인생 이종욱


 비행기를 타고 가노라면 발아래 풍광을 볼 수 없도록 가로막는 날개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게 아니다. 날개가 몸체에 공연히 붙어가는 것이 아니라 몸체가 날개가 발생시키는 양력 위에 얹혀간다. 몸체에는 식사와 영화를 즐길 편안한 공간이 있지만 날개는 양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혹한의 찬 공기와 부딪쳐야 한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몸체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날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국가의 부름으로 전장에 나가 산화한 장병들, 과로에 숨져간 수출역군들, 국위선양을 위해 세계 오지를 떠돌아다니는 외교관들, 국가경쟁력을 키우는데 공헌하는 과학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을 베푸는 수호천사들.... 이들이 날개인생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몸체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오랫동안 날개의 역할을 수행한 후 편안한 여생을 즐기는 ‘정당한 몸체인생’도 많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생 호위호식하는 사람, 투기로 졸부가 된 사람 등 ‘문제있는 몸체인생’도 많다. 문제있는 몸체일수록 날개의 고마움을 모른다.


 이들에게 있어 태국에서 곰발바닥 벗겨 먹기, 홍콩 백화점에서 싹쓸이 쇼핑하기, 라스베가스에서 수백만 달러를 도박에서 탕진하기 등은 모두가 ‘내돈 내 맘대로 하기’일 뿐이다. 언제부터 한국돈이 달러로 바꾸어지기 시작했고 왜 한국돈이 동남아에서 통하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남아도는 돈을 쓰기만 하면 된다.


 이종욱님은 참으로 고귀한 날개인생을 달다 간 분이다. 그는 목에 힘주고 부자로 살 수 있는 한국생활을 포기하고 오지를 돌면서 ‘한국인 슈바이쩌’가 되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주요 유엔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무총장이 되어 인류건강에 이바지 했다. 그가 22일 급서하는 순간 한국은 참으로 소중한 날개 하나를 잃어버렸다. 날개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아는 몸체들이 그의 소중함을 알 리가 없다.


 한국의 부자들과 미국의 부자들은 다르다. 한국이나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로 “일한만큼 번다”는 원칙이 통한다. 그러나 미국 부자에게 “내돈 내맘대로 쓴다” 또는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무방하다”라는 원칙은 통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이다. 돈은 날개들을 위해 쓰여 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부자들이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날개들이 발생시키는 양력 위해 국가가 번영한다. 철강왕 카네기가 환원한 재산으로 카네기공대와 카네기평화재단이 만들어졌고, 스텐포드 대학도 독지가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헤리티지재단도 맥주회사가 세웠다. 한국에 카네기 같은 부자가 몇이나 있는가.


 한국의 부자들은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달라지면 크게 당황하여 ‘4류 정치’라고 욕한다. 그러다가도 권력의 칼날이 자신을 겨냥하면 화들짝 놀라 수천억 원의 ‘몸값’을 바친다. 평소에 그 돈의 수십 분의 일만이라도 날개들을 위해 쓴다면 좋으련만 어제도 오늘도 한국의 많은 부자들은 세금 안내고 자식에게 재산물려줄 궁리에만 몰두하고 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길을 택하기 위해 속세의 부와 명예를 버린 이종욱님의 서거가 한국의 철부지 부자들에게 날개의 고마움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잘 쓰고 잘 먹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철부지 몸체들에게 누가 발생시키는 양력 위에 대한민국이 번영해왔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다. 몸체가 날개의 고마움을 외면하면 날개는 양력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대한민국호는 추락한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날개도 몸체도 모두 부서진다. 빈자도 죽고 부자도 죽는다.


 주여, 이종욱님의 영혼을 받아주시고 그가 천상의 잔치에 들도록 허락하소서.

 

                                                                   김태우 미카엘(삼성동 성당)



287 4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99831 부부 세례명에 대하여|2| 2006-05-25 김경옥
99830 오늘 저녁 영화보러 오세요... 2006-05-25 박현정
99829 날개인생 이종욱|4| 2006-05-25 김태우
99827 아름다운 얼굴.|10| 2006-05-25 허선
99826 아내들의 남편 사랑: 성모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상통?|9| 2006-05-25 박여향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