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손으로 전라도 진산에서 태어났으며,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정조 때 좌상인 채제공의 신망을 받아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였으며, 권상연은 안동이 고향으로 문학과 윤리를 공부하다가 고종사촌인 윤지충에게서 교리를 배워 충실히 실천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전라도 진산에 살고 있던 윤지충은, 1791(신해)년 5월에 모친상을 당하자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한 후,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였다. 이는 숭유정책으로 유교가 국교이다시피 하고, 조상에 대한 제사가 양반가를 유지하는 골격을 이루는 사회에서 분주폐제라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역사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왔다.
이 분주폐제(焚主廢祭 -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움)로 말미암아 윤지충과 권상연은 진산에서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다. 전라감사가 윤지충에게 유교 제사를 폐지한 이유를 묻자 "제사의 음식은 육신의 양식으로 영혼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은 허례허식이다. 그리고 신주는 목수가 만든 목편(木片-나무조각)에 불과하니 죽은 영혼이 물질적인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없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한국 교회사상 맨 처음 있었던 공식적인 호교론(護敎論)이었다.
그런 윤지충과 권상연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다가 1791년 12월 8일 현재 전동성당 자리에서 휘광이의 칼날 아래 참수되어 9일 동안 전주 풍남문에 내걸렸다. 정조 임금은 그들이 순교한 지 9일만에야 시체를 거두어 가도록 허락하였는데 12월 혹한에도 응고되지 않은 선혈로 이 때 흘린 그분들의 숭고한 피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등 많은 기적과 일화를 남겼다. 이렇게 해서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이는 당시의 신자들에게는 천주교 박해 때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떨어지는 꽃망울처럼 그분들의 뒤를 따라 순교의 길을 걸어가게 한 신앙의 결단을, 사회적으로는 천주교라는 사교(邪敎)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