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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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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균 [baeyoakim] 쪽지 캡슐

2006-05-28 ㅣ No.99940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 신희상
 
 
1.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퍼온 글)

 

<* 교황 베네딕도16세 성하께서는 2005년 6월 23일, 천진암 성지 주임 卞基榮 神父를 몬시뇰(Monsignor)로 임명하셨다.* 2005년 9월 1일(목) 오전 10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 주례로 서임미사가 거행되고, 9월 4일(주일) 낮 12시에는 천진암 성지의 성모성당에서 경축미사와 연회가 거행된다* 1993년 9월 21일, 전임 교황 요한바오로2세성하께서,100년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 머릿돌 강복문에서,\"한국천주교 발상 성지 천진암의 새 성전 머릿돌에 교황 강복을 베푸노니, 하느님의 보우하심으로, 온 겨레가 영원히 화목하기를 기원하노라.\"하신 데 이어, 이번 새 교황성하의 이러한 성은은 천진암 성지의 장소와 건물과 사람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선언이라 하겠다*>

天眞菴은 本來 檀君影幀 天眞을 모시고 山祭祀, 堂山祭, 山神祭 등을 올리던 天眞閣 혹은 天眞堂이라는 작은 草家 堂집이 오랜 세월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며, 훗날 天眞菴이 되어, 1779년을 전후하여 廢刹이 되었었으니, 丁若鏞 선생의 글에, \"天眞菴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다(寺破無舊觀)\" 하였고, 1797년 丁巳年 당시 洪敬謨의 南漢志에서는, \"天眞菴은 오래된 헌 절인데,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司饔院에서 관리하고 있다(天眞菴爲古寺造紙物今屬司饔院)\"고 함으로써, 사찰로서의 기능을 言及하지 않고 있으며, 聖다블뤼 主敎는 1850년 경, 젊은 선비들과 함께 李檗聖祖께서 講學을 하던 곳은, 쓰지 않는 廢刹이었다(isole et perdu)고 하였다.


1779년 당시 李檗 聖祖 26세, 丁若鏞 17세, 丁若鍾 19세, 丁若銓 21세, 李承薰 22세, 李寵億 15세, 權哲身 44세, 등 주로 10代와 20代 젊은이들이 모여서 그 당시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天主敎 책을 읽고 실천하는 일을 일반 儒敎 書堂에서나 正常的인 사찰에서, 또는 일반 가정에서는 하기 어려우므로, 다블뤼 주교의 기록대로, 폐찰이 된 天眞菴에서는 여럿이 모여 함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pour s\'y livrer ensemble a des etudes profondes), 天主敎 眞理를 탐구하고 실천할 수 있었으니, 天眞菴은 바로 儒·佛·天이 合流한 곳이고, 朝鮮天主敎會가 시작된 韓國天主敎 發祥地이다. 그런데 丁若鏞 선생은 종종 [天眞菴]에서 [菴] 字를 빼고 그냥 \"天眞\"이라고만 부르기도 하였으니, \"共詣天眞\" 또는 \"天眞之游\" 등이 그 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자이신 曠菴 李檗 聖祖께서 천진암을 根據地로 활동하신 바가, 丁若鏞 선생의 글에도 보이는데, \"己亥年(1779년)에 天眞菴에서 講學을 할 때(己亥冬講學于天眞菴), 李檗이 밤중에 와서 여럿이 촛불들을 밝히고 經書를 談論하였으며(雪中李檗夜至張燭談經)\", 그후 \"丁巳年(1797) 端午날에 둘째 형님(丁若銓)과 天眞菴에 와보니, 李檗의 讀書處, 곧 이벽의 修學 道場 건물이 아직도 그저 있구나(端午日陪二兄游天眞庵 李檗讀書猶有處)\"하였고, 丁學術의 李檗傳에서는, \"戊戌(1778) 己亥(1779) 년에 李檗 曠菴 선생이 廣州 鴛鴦山寺 곧 天眞菴에 隱居하시며 丁氏 李氏네들과 어진 벗들(賢友)과 학문에 열중하였으며(勉學), 그 당시, 道友가 衆徒를 이루자 聖敎要旨를 下筆하시었다.\"고 밝히고 있다.


天眞菴 聖地는 韓國天主敎會 創立先祖들께서 선교사 없이 自發的으로 眞理를 探究하고 福音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韓國天主敎 發祥地일뿐더러, 陰曆主日 제정과 실천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근로자들의 정기적인 휴식을 겸한 敬神禮節과 社會階級打破, 男女平等 實踐 등이 敎會創立과 더불어 시작되어, 훗날 民族開化와 祖國近代化 및 조선 社會改革 運動의 싹이 트기 시작한, 온 겨레의 精神文化 聖地이기도 하다.


이 聖地에 한국의 民族宗敎들과 儒敎, 佛敎, 天主敎 등의 建築美 일부씩을 참고하면서 韓民族 100年計劃 天眞菴大聖堂을 세우고 있다. 千年歲月을 두고 한겨레의 精神的 기둥이 될 이 대성당 건립에 政權을 超越하여 各界 各層에서, 온 겨레가 子子孫孫이 뜻을 같이하고 힘을 함께 모으며, 다같이 정성을 바쳐야 하겠다. 또한 中央政府를 비롯한 地方自治團體들과 모든 기관들도 行政的으로뿐 아니라 物心兩面으로 이 거룩한 사업에 한 몫을 해야 할 것이다.




* 2005년 9월 1일(목) 오전10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 심상태, 변기영, 이정운, 새 몬시뇰 3명 서임경축미사, 최덕기주교 주례.


* 2005년 9월 4일(일) 낮12시, 천진암성지에서 변기영 몬시뇰 서임경축미사.

* 2005년 9월 9일(금) 오후2시, 수원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 천진암성지본당 출신 김현 새 신부 외 18명 새 사제 서품식.


* 2005년 9월 11일(일) 낮12시, 천진암성지에서 김현 새 신부 첫 미사.


순례 시간: 매일 오전10시 ~ 오후5시
평일 미사: 매일 오전 6시, 낮 12시,
주일 미사: 매주 오전 7시, 9시 30분,낮 12시
고백 성사: 매일 미사 시작 30분 전
촛불 기도: 매월 첫 토요일 저녁 7시 미사, 기도회 8시 ~ 9시 30분
성체 강복: 매월 마지막 주일 12시, 그레고리안 미사 후.

 
2.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약력


1. 이벽 성조(曠菴, 德祖, 李檗, 세자 요한) 

1754 :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화현리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에서 천학논증.
성교요지,천주공경가 저술,
그 후 천주밀험기, 험세문득기, 래세예언기, 령득경신기,
숭례의, 상천도 저술
1783 : 이승훈 성조를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
1784 : 이승훈 성조에게서 영세
1785 : 명례방 집회로 을사박해 중, 가내 연금상태에서
아사벌(餓死罰)로 단식순교(斷食殉敎)


자세히보기 :  이벽성조약기 이벽성조전기 이벽성조의 <성교요지>


2. 이승훈 성조(蔓川,子述, 李承薰, 베드로)

1756 : 서울 중림동 만초천 언덕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1783 :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
1784 : 영세받고 귀국
1785 : 명례방 집회참석, "만천유고"남김
1787 : 북경주교에게 보고서 저술, 발송
1801 :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순교(斬首殉敎)

자세히보기 :  이승훈성현약전
이승훈성현의 서간



3. 권일신 성조(沙右居士, 稷菴, 權日身,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1742 :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 갈산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1784 : 이벽 성조에게서 영세
1785 : 명례방 집회에 참석
1791 : 신해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혹심한 장타(杖打)로
귀양도중 순교(杖打殉敎)

자세히보기 :  권일신성조 약전
권일신 성조의 수난기



4. 권철신 성조(鹿菴, 權哲身, 암브로시오)

1736 :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 갈산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유한당 언행실록" 서문 저술
1784 : 이벽 성조에게서 영세
1801 : 신유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옥중 고문으로
장타순교(杖打殉敎)


자세히보기 :  권철신성조 약전
권철신 성조의 「유한당 권씨 언행실록(有閑堂 權氏 言行實錄)」序文



5. 정약종 성조(選菴, 丁若鐘, 아오스딩)

1760 :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능내리 마재에서 탄생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1785 : 명례방 집회 참석
1795 : 명도회 회장으로 활약
1797 :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를 본따서
그 해설판으로 "주교요지"를 저술
1801 :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순교(斬首殉敎)


자세히보기 :  정약종성조 약전
정약종 성조의 저서 <주교요지>


 
3. 천진암 성지 모습
 
천진암에 나브끼는 대형 태극기

천주 공경, 나라 사랑

 

<앵자봉 중턱을 닦아 마련한 3만여평의 천진암 대성당터. 터닦기 공사를 끝내고 터다지기 공사를 착공했다. 6월 24일 학국 천주교 교회 창립 226주년 기념제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앵자봉(667m) 기슭 한가운데 에 쏫아 있던 해발 225m짜리 산봉오리를 하나를 깍아서 만든 3만여평의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天眞菴) 대성당터의 주변 산들이 무더위를 품은 짙은 안개에 쌓여 아득히 보인다.
장마를 알리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6월 24일 한국 천주교 창립 제226주년을 맞이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앵자봉 중턱에 자리 잡은 천진암(天眞菴) 대성당 터에서는 기념 미사가 있었다.
 

<이용훈 수원교구 총대리 주교의 집전과 최덕기 주교 강론으로 시작된 기념 미사.>
 

<천진암 대성당 건립위원장 강영훈 전 총리, 김용래 전 서울시장, 김성훈 상지대총장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광활한 3만평의 빈터에는 교황 바오르 2세의 강복문이 세겨진 머릿돌과 사방 출입문 자리를 표시한 철골 네 개, 성당의 중앙 제대(祭臺)로 쓰일 87t짜리 제대석, 1㎥ 크기의 화강암들만이 놓여 있을뿐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 현장에는 1년전과 별로 달리진 것이 없다.
 

<우리민족 화목을 위한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조감도.>
 
눈에 뜨이는 것으로 대성당터 입구의 대형 십자가 좌우에 높이 25m의 깃대가 양쪽에 세워졌다. 오른쪽에는 대형 태극기가, 왼쪽에는 노랗고  하얀 교황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공공 기관에 나브껴야 할 대형 태극기가 십자기와 나란히 걸려 있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
“한국천주교가 다른 나라처럼 선교사들의 전도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부처를 모신 사찰에서 이벽, 정약용 등 젊은 선비들이 모여 천주학을 논하면서 자생한 것처럼 토종 한국 천주교의 발생지 천진암 성지를 찾아 온 신자들을 누구나 한번쯤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대형 태극기를 달았습니다.”
천진암 李 그레코리오 신부의 말처럼 천진암 성지는 천주만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가짐도 함께하는 성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념제에서는 이벽 성조등 순교자 후손들도 참석하여 선조들의 넋을 기렸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1979년부터 35만평의 천진암 주변을 개발하여 성역화 사업을 해오고 있다.  높이 85m, 추녀 끝에서 추녀 끝까지 196m, 연 면적 1만3733평의 2층 건물로 세계 10대 성당 안에 꼽힐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의 건립 총 감독은 변기영(卞基榮, 66)신부가 맡고 있다.
 


<뙤약볕 아래 땅바닥에 앉아서 보는 기념 미사. 순교자들의 얼을 되새기 거룩한 순간이다.>
 
현재 대성당터 기단(基壇) 3만여평 터닦기 토목공사가 완공되어 바닥 건평 8,107평의 대성당 기초공사가 착공되고 있다. 공사비로는 골조공사에 약 500억, 조적공사(석축벽, 천정, 내장 등)에 약 500억, 합계 약 1,000억이 소요될 예정이다.  천진암 대성당 건립을 위한 천진회 회원들이 월 1만원씩 내는 봉헌금과 전국의 400만 천주교 신자들의 작은 성금들을 모아 천진암 대성당을 완공시킬 것이다. 2079년에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는 천진암 대성당은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현재 10대 정도면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살아 생전에 볼 수 없다.
 


<가설 중앙 제대에는 제대 건축에 쓰일 크기 1㎥의 화강암들이 늘어서 있다.>
 
신자가 아니여도 한국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을 둘러보면서  226년전인 1779년 퇴락해가는 천진암에 모여 호롱불을 밝히고 당대의 석학인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에 참석하여 천주학을 연구하고 믿음을 키우다가 순교를 한 권철신의 동생 권일신, 정약용과 그의 형들인 약전, 약종, 그리고 이승훈, 이벽등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조선조 末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천주교가 어떻게 전래되여 왔는지를 되새겨 본다.
 

<100년 성당 공사 총감독 변기영 신부. 그도 살아 생전에 천진암 성당이 완공되는 것을 보질 못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광주IC에서 45번 국도를 타고 팔당댐쪽으로 3km쯤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 88번 자방도를 타고 퇴촌면을 지나 5km쯤 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천진암 이정표를 우산천을 따라 7km쯤 직진하면 멀리서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광암성당이 있는 너른 광장에 차를 세워두고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100m쯤 오르면 대성당 부지가 펼쳐진다.  대성당터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면 계곡 모퉁이에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비’가 보이고 이를 지나 더 오르면 ‘강학당터’, 천연 샘터인 ‘빙천(氷泉)’, 이어 ‘천진암터’와 이벽등 창립 선조 5위의 묘역이 나타난다.
 

<앵자봉 중턱에 마련된 35만평의 부지에 한국 천주교 발상지 성역화 사업이 서서히 조성되고 있다. 광암성당과 성모경당, 박물관, 연구소등이 건립됐다.>
 

<천진암 터에 모셔진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 이승훈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 선조들의 묘역을 참배를 하는 후손들과 신자들.>
  

(천진암 성지에서 발췌)(기타 기사-월간조선)
 
 
 
 

신성자(socho) (2005/10/08) :

사랑의 신비여/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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