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84·사진) 추기경이 31일로 주교 수품 40주년을 맞았다.
이날 김 추기경은 공식 행사는 갖지 않고,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에서 수행하는 사람들과 조촐한 식사모임만 가졌다. 주변에서 축하연을 마련하려 했으나 본인이 한사코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최근 복통으로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나 이내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해 내방객을 면담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1922년 대구에서 출생한 김수환 추기경은 51년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 사제로 성직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경북 김천 본당 주임 시절인 56년 독일 뮌스터 대학으로 유학, 대학원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후 66년 5월31일 44세의 나이에 가톨릭 교구를 관장하는 주교로 수품됐다.
김 추기경은 서품 이후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에 취임했다. 그는 68년 대주교로 승품돼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올랐으며, 69년 4월 47세의 젊은 나이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로마에서 서임식을 가졌다. 당시 전 세계 추기경 136명 중 최연소자였으며, 한국 천주교 사상 최초의 추기경으로 기록된다. 75년부터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직했던 김 추기경은 이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추기경은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의지로 교회 쇄신과 현실참여를 강조했으며, 가난하면서도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을 제시해 교회 안팎의 젊은 지식인과 서민,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또 70년대 유신시대 및 80년대 민주화시대에 파행적인 정치 현실과 불확실한 노동 문제 등에 관한 소신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억압받고 가난한 민중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 인권옹호자로서 명성을 더했다.
추기경은 98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 퇴임으로 공직에서 물러나기에 앞서 소외 이웃 돕기에 앞장섰고 해외선교 지원, 북한동포 돕기와 남북한 교회 교류활동 등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 위상을 정착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추기경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사회의 큰어른으로 국가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올곧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