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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소년 시절을 처음 찾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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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6-01 ㅣ No.100167

 

            어머니의 소년 시절을 처음 찾아보다
                전북 임실군 관촌면을 찾아서




<1>

올해 83세이신 내 어머니의 고향은 전주시 풍남동이다. 전주시 풍남동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지내다가 임실군 관촌면으로 옮겨가서 소년 시절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전주시 풍남동으로 이사를 해서 처녀 시절을 살고, 내 아버지와 만나 결혼한 후 섬진강댐 건설공사장인 임실군 강진면의 '왼땡이'라는 곳에서 신혼살이를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전주시 풍남동은 지난해 여름(8월 7일) 어머니를 모시고 태안의 두 형제 가족이 함께 찾은 적이 있다. 우리 가족 '신앙의 고향'인 전주 전동 성당을 어머니와 나로서는 무려 53년만에 처음 찾아보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유년 시절과 처녀 시절의 추억들이 어려 있는 '풍남문', '경기전', '오목대' 등을 구경하고 '치명자산'도 올랐다.

그리고 나는 지난해 8월 <53년 만에 전주 전동성당을 가다>라는 글을 써서 웹상에 올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두 형제 가족이 함께 어머니의 고향을, 또 우리 가족 '신앙의 고향'인 전주 전동 성당을 찾은 것을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일로 생각한다.

(그런데 <53년 만에 전주 전동성당을 가다>라는 글 중에는 '영세를 받았다'라는 표기들이 두세 군데 있다. 영세(領洗)라는 말에는 이미 '받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세를 했다'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그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역전앞'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습관에 따라 '영세를 받았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 점 독자 여러분께 사과 드리고, 뒤늦게나마 바로잡는다.)


▲ 우리 가족은 지난해 8월 7일 우리 가족 '신앙의 고향'인 전주 전동 성당을 찾았다.
ⓒ 지요하

나는 그때 어머니의 고향인 전주시 풍남동 일대와 치명자산을 둘러보면서 나중에 또 한번 적당을 기회를 잡아 이번에는 어머니의 소년 시절과 신혼살이 시절이 어려 있는 임실군 관촌면과 옥정호 주변을 찾아볼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신털이봉'을 아시나요?>라는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로부터 특별 고료(<한국관광공사>의 30만원 짜리 '관광카드')를 받은 다음 구체적으로 그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지난달 27-28일 마침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원래는 지난달 6-7일에 실시하려고 했었다.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그 행사를 갖는 것이 한결 뜻이 있을 것 같았고, 6일은 교육 공무원인 아내도 '쉬는 토요일'인데다가 서울과 논산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이미 전날) 집에 와 있는 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6일 아침부터 제법 많은 비가 내려서 황금연휴를 망쳐 놓았다. 그 바람에 우리 '가족 행사'도 아쉽게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27일은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휴무를 하는 교육 공무원들이 다시 맞는 휴무 토요일이었다. 그 덕분에 딸아이와 아들녀석도 (전날 저녁에) 집에 오는 때였다. 28일 주일은 우리 태안 성당이 '야외 미사' 행사를 갖는 날이어서 나부터 고심을 해야 했고 가족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가족 행사를 또 연기한다고 해서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으므로 그냥 실행을 하기로 했다.

기상 예보는 불안과 상심을 안겨주었다. 토요일 전국적으로 지역에 따라서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오전부터 비가 그치고 날이 갤 거라고 했다. 어차피 토요일은 임실까지 가는 일만 할 터이므로, 일요일의 갠 날씨를 기대하고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소년 시절과 신혼 시절이 어려 있는 곳을 처음 찾아가는 이번의 가족 행사에는 모두 10명이 함께 했다. 두 조카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가족 7명에다가 경기도 안양에서 사시는 누님과 안산에서 사는 누이동생 모녀가 동참을 해주었다.

지난해 가을 이번의 가족 행사 계획을 처음 세울 때 그 의논 자리에 함께 했던 가운데 제수씨는 해가 바뀌기도 전에 세상을 하직해서 이번 행사에 함께 하지 못했다. 아내를 잃은 상황에서도 이번 가족 나들이에 함께 하기로 했던 동생도 막상은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족 나들이를 하다 보면 세상 떠난 아내 생각이 더 많이 나고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은 빠지겠다고 했다. 동생의 그 마음이 이해되어 강요를 할 수가 없었다.


▲ 전주 풍남문 앞에서...어머니의 고향을 처음 찾아보는 지난해 여름의 가족 나들이 행사에는 동생도 함께 했는데...
ⓒ 지요하

나는 안산에서 한의원의 사무장으로 일하는 가운데 누이동생을 이번 행사에 꼭 참여시키고자 했다.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보는 뜻있는 행사이기도 해서지만 제수씨가 없는 그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메워보려는 심산이었다. 막상 또다시 먼길 가족 나들이를 실행하려고 하니 더욱 제수씨 생각이 나면서 심정적으로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또 누이동생이 열두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전주를 가 본 그 40년 전의 기억을 흐릿하게나마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려 40년 만에 다시 친정 어머니의 고향을 찾는 남다른 감회를 누이동생에게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탓이기도 했다.

내가 다가오는 여름방학도 무시하고 굳이 5월의 주말을 택해 이번 가족 나들이를 실행한 것은, 한의원의 중간 관리자인 누이동생에게는 여름방학이라는 것이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또 누이동생이 며칠 휴가를 얻게 되는 여름에는 우리 가족의 일본(큐슈 지역) 여행이 예정되어 있기 까닭이었다.

누님의 동참은 다소 뜻밖이었다. 딸을 다섯이나 낳아 키웠어도 살림 도와주는 딸자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출가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근처 딸들의 살림을 도와주어야 하는 형편이니 누님은 환갑을 자신 나이에도 도무지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누님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 누님에게서 뜻밖의 연락이 왔다.

<2>

동생을 제외한 태안의 일곱 식구는 오전 10시쯤 출발, 덕산온천을 들른 다음 안양으로 갔다. 누님 댁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태안에서 사 가지고 간 해물로 누님이 이틀 동안 집 식구들이 먹을 꽃게탕과 붕장어포볶음 만드는 것을 기다렸다가 안산으로 이동했다.

안산에 도착할 때쯤 제법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누이동생이 일하는 한의원을 쉽게 찾을 수 없어 우중에 시간을 많이 소모하며 안산 시내를 헤매다가 한양대역 앞에서 겨우 누이동생 모녀를 만나 차에 태우고 4시 30분 쯤 임실을 향해 출발을 했다.


▲ 지난해 여름, 53년 만에 다시 찾은 전주 전동 성당 안에서 미사보를 쓰시려는 어머니
ⓒ 지요하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를 넘어서니 비도 오지 않고 도로도 전혀 젖어 있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동군산 IC를 거쳐 전주로 들어서니 다시 비를 보게 되어 혹 내일까지 비가 이어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었다.

토요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리라는 기상 예보 덕분에 토요일 오후의 고속도로가 그다지 막히지 않았는데도, 안산에서 임실까지는 4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8시 40분쯤 임실군 관촌면에 도착하여 우리를 안내해 주기로 한 여성 작가 김여화(한국문인협회 임실지부장)씨를 만났다.

김여화씨의 안내로 '신선대관광지' 안의 한 음식점으로 가서 메기탕으로 늦은 저녁을 먹은 다음 면소재지인 관촌리로 다시 와서 미리 예약을 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방 세 개를 얻었다. 한 방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 어른들이 들었다.

엄마가 없어 알게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있을 텐데도 올해 열 살인 내 조카딸 규빈이는 색다른 곳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 괜히 설레는 기분을 갖게 하는 모양이었다. 할머니와 두 고모와 큰엄마가 있는 방에도 들어와 보고, 큰아빠와 두 오빠가 있는 방도 들여다보고 하는데 완연히 들떠 있는 기색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계신 방에 가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 가족이 어머니의 소년 시절이 어려 있는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에 와서 비록 여관방에서나마 하룻밤을 지낸다는 것은 정말 즐겁고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물론 처음으로 가져보는 일이었다. 지난해 여름 어머니의 고향 전주시 풍남동과 전동 성당을 찾았을 때도 당일치기 나들이여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또 안산의 누이동생은 지난 2004년 여름 우리 가족이 어머니 모시고 중국(북경/만리장성) 여행을 할 때 동참을 한 경험이 있지만 누님은 출가한 후로 친정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하며 여관방에서 잠을 자는 일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누님의 감회가 누구보다도 클 터였다.

어머니는 전주시 풍남동에서 임실군 관촌면으로 이사를 한 유년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다고 했다. 관촌에서 몇 년을 살고 다시 전주시 풍남동으로 이사를 한 소년 시절의 기억은 또렷하다고 했다.


▲ 지난해 여름, 처녀 시절의 추억이 어려 있는 전주 '경기전' 뜰에 앉아 어린 손녀의 재롱을 보시는 어머니
ⓒ 지요하


소달구지 하나를 얻어서 고리짝 등 가재 도구 몇 가지를 싣고, 꽁보리밥을 지어서 큰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싣고 길을 떠났다고 했다. 어린아이였던 내 작은 외삼촌만 소달구지의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서 가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물론이고 큰 외삼촌과 두 이모와 어머니는 50여 리 길을 걸어서 갔다고 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느릿느릿 가는 소달구지를 따라 걷다가 점심때 소달구지를 세우고 길가 풀밭에 가족이 둘러앉아 풋고추에 된장을 발라 꽁보리밥을 먹던 기억이 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그 꽁보리밥이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간다고 했다

원래 임실군 신덕면의 활꼬지(弓高地/오곡리)라는 동네에서 천석지기 부농으로 사셨던 외할아버지가 가산을 모두 잃고 전주시 풍남동에 거처하게 된 사정, 임실군 관촌면으로 이주했다가 몇 년 후 다시 전주로 이사하게 된 사연들을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소년 시절 추억들이 어려 있는 관촌면의 한 여관방에서 누님과 누이동생, 그리고 마누라와 함께….

생각할수록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이요, 장소였다. 우리 부부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누님과 누이동생으로부터 치사를 듣는 것도 우리 부부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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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53년 만에 전주 전동성당을 가다


2006-06-01 12:12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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