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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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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대축일 2006년 6월 4일 요한 20, 19-23 사도 2, 1-11 성령강림은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남기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임의에 맡겨집니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떠난 사람이 사람들 안에 남겨 놓은 기억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그것이 역사에 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당신 안에 일하시던 성령을 제자들에게 남기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과 제1독서로 들은 사도행전은 그 사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역사 안에 남겼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과 더불어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손과 옆구리는 십자가에서 종말을 고한 당신의 삶을 요약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초기 교회는 예수님이 잉태되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마태 1,20)이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도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성령이 당신 위에 내려오시면서(마르 1,10)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같은 성령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의 복음 선포도 성령을 받아 시작된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고 예수님은 그 숨결로 사셨습니다. 창세기(2,7)는 흙으로 된 인간 모상에 하느님이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숨결을 받아 산다는 뜻으로 복음은 예수님이 그들 안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이십니다. 유대교는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인간 죄의 결과라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이 범한 죄에 대해 하느님이 벌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우리의 세상입니다. 미운 사람이 불행할 것을 원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 세상과 그런 마음은 하느님도 사람을 미워하고 불행을 주는 분으로 만들었습니다. 악한 마음은 악한 하느님을 만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상상하여 만든 하느님을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해 선한 일을 합니다. 악한 인간이라도 “생선을 달라는 아들에게 뱀을 대신”(루가 11,11) 주지는 않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선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라고 믿으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6,36) 스스로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느님은 인간 생명을 고치고 살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생명을 살고 실천하셨습니다. 어느 날 베짜타 못가의 중풍병자를 고치신 다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요한 5,17). 우리는 오늘 제1독서로 사도행전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활동을 서술하기 전에 두 폭의 그림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그림이고 또 하나는 오늘 우리가 들은 성령강림의 그림입니다. 이 두 폭의 그림은 사도행전의 서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도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이미 떠나셨고, 성령이 오신 다음 시작된 사도들의 활동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의 서문에 해당하는 성령강림의 화폭에 성령이 강림하신 장소는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루살렘입니다. 시기는 유대인들의 해방절 다음,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모여드는 오순절을 택하였습니다. 오순절은 해방절이 지나고 50일째의 축일입니다. 보리와 밀의 햇곡식을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제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상기하고 그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13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이 날 예루살렘 성전에 의무적으로 순례해야 합니다. 성령강림 장면에 나타나는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와 ‘불’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20,18)가 묘사하는 하느님 발현의 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졌다’는 말은 교회의 복음 선포가 사람들에 의해서 된 일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기원이 있는 말씀이 하신 일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불길 같이 전파된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내려오시자 사도들은 다른 언어로 말을 하고 모여든 군중은 각기 자기네 지방말로 알아듣습니다. 복음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든 민족에게 선포된다는 뜻입니다. 인간 예수님 한 분 안에서 발생한 복음이지만, 이제부터는 인류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을 움직였던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그 성령은 인간의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 일하십니다. 인간은 작은 구실만 있어도,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고 장벽을 쌓습니다. 민족과 문화의 다양함을 비롯하여 출신과 직업의 다양함은 인류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을 차별과 불화의 동기로 만듭니다. 성령의 이름으로도 우리는 많은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여러 역할을 함으로써 교회는 창의적이고 풍요로운 것이지만, 일부 역할을 성령이 주어져서 발생한 신분이라고 과대 포장하여 신앙인들 사이에 장벽과 차별을 만들었습니다. 성령의 이름을 붙인 신심단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를 만들어 갈라놓고 교회 안에 새로운 장벽을 만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를 하신 일도 없고 그런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벌주는 악한 하느님을 상상하여 만들었듯이, 그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을 차별하는 성령을 만듭니다. 성령은 예수님 안에 일하셨던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하느님 안에 모두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숨결입니다. 차별 만들기를 좋아하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우월감에 빠져 살고 싶은 우리를 그런 욕구에서 해방시켜, 하느님의 자녀로 함께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은 용서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욕심, 허영, 질투, 미움 등 우리를 갈라놓는 죄에서의 해방은 이 용서로 시작합니다. 성령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숨결이십니다. 그 숨결은 우리를 갈라놓는 죄에서 우리를 용서하여 자비하신 아버지의 자녀 되게 하십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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