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바 여인숙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체크인 할 때도 주인이 있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가서 체크인 하는 것을 알려야 했고, 지금도 아침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식당은 고요하기만 하다. 나는 로비에 가서 벨을 누른다. 서너 번 벨을 울리고 나서야 찬드라가 위층에서 소리를 지른다.
“무슨 일이에요?” “밥 좀 주세요.”
찬드라는 이곳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여인이다. 우리나라 식당이나 시골 여인숙에 가면 조선족이 있듯이, 요르단에는 스리랑카인들이 있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할 때에도 무리져 앉아 있는 그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그들에 대한 비자 검사는 지나치게 엄격해 보였다. 나는 침침한 식당에 앉아 한참을 더 기다리다가 다시 벨을 누른다.
그제야 찬드라가 느릿느릿 내려와 차가운 빵을 데운다. 질긴 빵으로 대충 빈 속을 달래고 밖으로 나서니, 밖은 깜짝 놀랄 만큼 맑은 하늘이다. 아이와 손을 잡고 마다바 시내의 유서 깊은 몇 곳을 둘러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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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조지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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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소희 |
| St. George's Church
19세기 그리스 정교회. 560년경 회랑 바닥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지도로 유명하다. 나일강, 사해, 예루살렘처럼 레바논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모든 성지들이 이 지도상에 표현되어 있다. 원래 2백만 개 이상의 조각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중 3분의 1 가량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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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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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소희 |
| 교회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배어 있다. 약소한 돈을 기부하고 초에 불을 붙인다. 이미 수십 개의 하얀 초들이 조용히 녹아내리는 모래 쟁반에 조심스레 초를 내려놓으며, 잠시 고개를 숙인다. 속세에서 각박한 계산들로 아등바등하다가 성스러운 곳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고요함에 감사하면서.
이곳에 발을 들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멈추고 앉아서 더러운 땀을 식힐 것이다. 손과 발에 묻은 피와 먼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하늘과 별과 무한한 사랑의 손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언제나 시장 한가운데 교회나 모스크가 세워졌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아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찾아보았더니, 맨 앞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때로 분위기라는 것은 언어나 지식, 나이나 취향과 무관하게 동물적으로 감지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아이는 이곳의 분위기에 금세 젖어들었다.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조그만 얼굴을 쳐든 채,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유한 기운을 가만가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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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소희 |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들어온다. 성지순례 관광객들인 것 같다. 모두 일사분란하게 모자이크 지도를 둘러싸더니, 가이드가 족히 일 미터는 됨직한 막대기로 이곳저곳을 공격적으로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한다.
그녀의 음성은 단과학원 강사의 수능 마지막 총정리 때만큼이나 우렁차고, 중간 중간 성경구절을 인용하다가 말고 서슴없이 "할렐루야!"를 외친다. 그 바로 옆에서 기도 소리처럼 조용조용히 들려오는 독일인 가이드의 목소리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정말로 저들은 이 먼 곳까지 수능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일까? 단순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것이라면, 안방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는 것으로도 족할 터인데…. 교회에 와서도 교회를 느낄 수 없고, 교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없다면, 왜 굳이 교회에 오는 것일까?
관광조차도, 입시 천국 한국에서는 '입시화' 되었다. 몽둥이를 든 가이드는 열을 내며 짚어주고, 관광객들은 입을 벌린 채 듣기만 하면 된다. 다만, 이들은 따로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만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슬픈 일이다. 모든 배움과 느낌의 과정이 수동태가 되어버렸으니, 어떻게 자신의 내밀한 욕구와 맞닿은 순수한 감동이 있을 수 있을까.
Archaeological Park.
마다바 모자이크 예술의 집대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마다바는 106년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614년 페르시아의 침입이 있을 때까지 지방 도시로서 엄청난 번영을 누린다. 로마식 주랑이 열지어선 거리나 인상적인 건물들, 모자이크들은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고고학 공원이라 불리는, 세심한 발굴을 거쳐 일반에게 공개된 이 아담한 곳에서는 번영기의 찬란한 컬렉션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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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세한 공원 내 모자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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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소희 |
| 고고학 공원에 들어가니, 티켓을 판매하는 남자가 내게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인도라면 대뜸 얼마냐고 묻고 가격을 흥정하는 데에 골머리를 썩겠지만, 요르단은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즉, 이 사람이 내게 순수한 호의로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돈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혼자 여행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추근대는 것인지… 세 가지 경우를 다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첫 번째 경우에 대뜸 가격을 물으면, 물론 실례가 된다. 아랍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세서, 당신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때로는 사과를 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두 번째 경우는 오히려 속편하다. 그들은 대체로 흥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이드를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만 결정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경우는 가장 골치 아프다. 왜냐하면, 늘 첫 번째 경우(순수한 호의)를 가장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가장 흔히 있는 일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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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원 안쪽 바닥 모자이크. <사계>와 <아프로디테>에 얽힌 신화가 형상화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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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소희 |
| 나는 일단 가이드를 받기로 했다. 매표원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는 어차피 곧 밝혀질 터였고, 내 짧은 고고학적 지식만으로는 디테일 한 것까지 조감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처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다시피 내 곁에 바투 붙어 선다. 그의 어조에는 다분히 거부감을 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이미 수천 번은 반복하여 달달 외웠을 고고학 공원에 대한 설명들을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늘어놓는 것이다. 중빈이 중간에 끼어들기라도 하면, 대단히 모욕을 받은 사람처럼 말을 멈추고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뭐,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의 표현이라고 해 두자. 나는 그의 현학과 수사를 그런대로 존중하며 듣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몽둥이를 들고 "할렐루야"를 외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계단에 이르러 그의 손이 내 어깨로 올라온다. 마치 내가 계단을 오르는데 장애가 있기라도 한 듯.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자 예의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손을 거둔다. 그러나 곧 계단을 내려가는 데 다시 슬금슬금 손이 올라온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한 단어 한 단어 힘을 주어 도움이 필요 없다는 것을 재차 밝힌다.
그는 이제 완전히 토라졌다. '이런 모욕 처음이야' 하는 얼굴로 나머지 유적들에 대한 설명을 한 줄로(현학도 수사도 간데없이) 요약해 버린다. 그리고 내게 돈을 요구한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액수를. 운 나쁘게도, 매표원은 두 번째와 세 번째에 두루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최악의 조합이다.
나는 적당한 금액만을 지불하고 나오며, 씩씩거린다. 어째서 요르단의 남성들에게는 한 번의 "No"가 통하지 않는 걸까? 쌀림만 해도, 사해에서 내 몸에 진흙 바르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것을 무려 세 번이나 정색을 하고 거절해야 했다. 남성 우위에 익숙한 요르단 남자들은 여성에게 거절 당해본 경험조차 없는 것일까?
아니면, 여성의 의사를 존중해본 경험이 없는 것일까? 이들이 여성의 반응이나 역할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대는 이슬람 문화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천편일률적으로 순종적인 주변 여성의 것을 모델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거절할 때 이들은 당황하거나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처럼 현지인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여성 여행자에게, 그런 면에서 요르단은 가장 편하고도 힘든 나라이다. 현지인들에게 다가갈 필요도 없이, 잠시라도 길에 서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 다가온다는 점에서 요르단만큼 편한 나라가 없다. 심지어 내가 혼자 있고 싶은 순간에도 혼자 있을 수 없을 지경이다.
문제는 여성들이 모두 집안에 있으므로, 이들이 십중팔구 남성들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이슬람 특유의 단순한 여성관을 가진 남성들이라는 점이다. 처음에 순수한 듯 보이는 접근도, 쉽게 추근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지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여성 여행객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의도를 알 수 없는 그들에게 일단 기회를 주어 보는 것. 그리고 친절함이 엉큼함으로 변질되는 바로 그 경계에서 선을 긋는 것.
요르단을 여행하는 내내, 나는 이 친절함과 엉큼함 사이의 경계를 가늠하여 선을 긋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가는 곳마다에서 추근거림과 순수한 선의를 구별해내기 위해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을 묻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대화 끝에도 손을 잡으려 드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집에까지 초대하여 가족을 일일이 소개시켜주고 서로 살아온 내력을 모두 공유하면서도 끝까지 우정 어린 신사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인도를 여행한 뒤 한동안 돈과 관련해서 현지인의 선의를 의심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듯, 요르단을 여행하면서 나는 집적대는 것과 관련해서 현지인의 선의를 의심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늘 하던 대로 'Give it a try!' (한번 해보지, 뭐), 여전히 마음속으로 속삭이면서도….
마다바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다섯 시 땡! 아잔이 울리고 식당이 문을 연다. 오늘은 낮 동안 유난히 허기에 시달렸기에, 좀 거하게 저녁을 먹기로 한다. 마다바의 오래된 석조 저택을 리모델링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는 끼니마다 사먹던 천 원짜리 치킨 샌드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어 기뻤다.
우리가 식당에 도착한 것은 다섯 시 십 분경.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은 이미 외국인들로 만원이다. 아잔이 울리기 삼십 분 전부터 미리 와 자리를 잡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출입구 근처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흠~ 이곳 사람들 일하는 속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우리는 여섯 시나 되어야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군. 에고, 배고파라.
이미 주문된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웨이터와 간신히 눈을 맞춘다. 치즈가 든 만두와 요구르트에 허브를 곁들인 소고기 요리를 주문한다. 삼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역시나. 아무리 기다려도 음식은 나오지 않고, 총을 든 꼬마 녀석이 제자리에 앉아 있을 리 없다.
식당 옆에 곁달린 토산품점에 들락날락, 저 멀리 물담배를 피는 사람들 곁으로 왔다갔다. 그로부터 또 십여 분만에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간신히 붙잡고, 메인 요리가 오래 걸린다면 만두라도 먼저 달라고 하자, 그가 정중하게 하는 말.
“주문하신 만두는 디저트인데요….”
나는 등에 붙은 뱃가죽을 움켜쥐며 말했다.
“보세요. 우리 둘은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디저트를 신발 위에 올려주신대도 꿀꺽 먹어치울 참이에요….”
사람 좋아 보이는 지배인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지배인이 주방에 대고 몇 마디 지시를 하고, 만두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메인 요리가 나온다.
그런데, 소고기에 요구르트를 소스로 끼얹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요구르트에, 온갖 향신료와 허브를 곁들여 튀긴 소고기를 넣고 펄펄 끓인 것이다. 1cm는 됨직한 기름층에 끓인 요구르트의 시금털털한 냄새, 거기에 온갖 향신료까지…. 중빈이 십 리 밖으로 도망간다. 큰일이군. 락&락에 남은 음식을 싸서 내일 점심에도 먹여야 하는데….
아마도 친절한 지배인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가 보다. 다시 오더니, 이 음식은 아이에게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 원한다면 취소하고, 다시 다른 것을 주문해도 좋다고 한다. 중빈이 "아싸~!"를 외치고 "Chicken and chips, please!" 주문까지 해버린다. 이리하여, 오늘 저녁도 또 치킨이로군…. 쩝.
다시 치킨이 왔을 때,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한창 바쁠 텐데도 매니저는 우리가 치킨을 먹는 것을 한동안 지켜본다. 음,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그는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고, 요르단이 어떤지 묻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마침내 또 그 질문….
“남편은 어디 있나요?”
There it goes. 또 시작이로군. 친절이 친절로만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고마운 마음으로 이 식당과 매니저와 마다바를 기억할 텐데. 나는 남편이 한국에 있고 함께 휴가를 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또 묻는다.
“밤엔 무얼 하시나요?”
으으~.
“아이를 재우고 그 곁을 지켜야겠지요. 어린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엄마에게 밤 생활이란 없답니다.”
나는 건조하게 대답한다. 그가 약간 머쓱해져서 다른 테이블로 돌아간다. 그래도 그의 친절함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락&락을 꺼내기도 전에, “라마단 기간이라 필요할 것”이라며 남은 치킨과 감자 칩을 꼼꼼히 포장해주었다. 그래, 어쩌면 요르단 남성의 친절은 이렇게 요약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해주고 일단 한 번 찔러보고 아니면 말고. 찔리는 사람 불편한 것은 자기네들 사정이 아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