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1일 (금)
(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자유게시판

현대의 고려장...노용성 야고보 신부강론...꽃동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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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애 [glotilda8765] 쪽지 캡슐

2006-06-04 ㅣ No.100292

노용성 야고보 신부-꽃동네 형제회

오늘 복음의 말씀은 주인이 자기 아들 혼인 잔치를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이야기인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초대에 거절 했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전례 독서와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되고

모두 '종말적인' 주제로 일관되어 있지요.

성서에선 이러한 시간의 종말이 단지 \"시간의 영원한 끝\"이 아닌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올 이러한 시대가 하느님께서 통치하실 시간이며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 역사 안에 도래하시는 그 시대의 시작,

바로 지금 이 곳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의 육화로 이러한 시간적인 종말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느님의 통치 안에서 지금 현재 살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잔치\"안에서의 기쁨을 초래하는 것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는 이러한 \"종말적인\" 시간을 사는 것을

큰 규모의 잔치인 향연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 시간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모아 같은 음식을 나누게 하고

이렇듯 음식을 함께 나눔으로써

원수들마저도 친구로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다짐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봉헌하도록 합시다.

유럽 전쟁이 발발했던 1914년에서 1918년 사이의 프랑스에서 있었던 성탄절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시간은 잔인한 육탄전으로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냈고

양측 군대 모두에게 너무나도 끔찍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양측 군대의 참모들은 성탄을 축하하는 4일간의 휴전을 제안하게 되었지요.

양측의 모든 병사들에게는 평상시 배급된 군용식 대신 맛있고 좋은 음식이 가득 담긴 선물 바구니가 공급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일이 발생했는데

그 이전 날까지만 해도 죽여야만 했던 서로에게 적들이었던 양측 군대의 병사들은

서로의 원수들과 음식을 나누며 성탄을 경축하였던 것입니다.

 

서로서로 음식을 나누면서 이 병사들은 자신들 모두에게 똑같이 상존하는 인간 존엄성을 발견했으며

휴전이 끝난 이후에도 싸우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을 지휘했던 양측 군대의 참모들은 싸우기를 거부하는 이 병사들을

 전혀 이 특별한 친교를 경험하지 않은 다른 병사들로 바꿔야만 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바로 오늘 마태오의 복음 말씀에 그려진 비유의 핵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과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하느님께서 성대하게 베푸신 새로운 삶의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자신들이 이러한 주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잔치라는 것을 단지 먹고 마시는 것만 생각하고 잔치는 우정과 친교, 신뢰 그리고 화해라는 사회적인 특정한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 말씀의 비유는

오늘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과 특별히 그리스도의 성체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에 관련하여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이 메시아적인 향연의 초대,

미사에 정말로 응답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자신들은 진정으로 이러한 초대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단지 자신들의 유익에 관련된 일에 몰두하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이 초대에 응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하는 한 주간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관상과 묵상재료로 좀더 설명해 볼까요?

오늘 표현에서 '응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그들이 초대에 응답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지식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믿음이 부족해서,

또 다른 욕심 즉 물질적, 육체적 욕심이 생겨서 일수 도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악의 유혹 때문에 넘어가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핵심은 '우리가 그렇게 한다 해도 살아가는데 가시적인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성소를 뿌리치고 도망가는 사람,

노 부모님들을 버리는 사람들도 모두 똑 같은 생각과 이유,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수도원을 나오는 사람에게,

노인학대하는 자식들에게 폭력배가 다가 와서 생명을 위협하고 가장 좋은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라고 했다면

과연 그들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핵가족화와 외환위기,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신 고려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엇 그제 텔레비전의 보도, 자식들에 의한 노인학대에 대해서 취재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6명이나 되어도 누구 하나 돌보아 주는 사람 없어

노모는 홀로 길거리에 나와야만 했고, 기자의 질문에 모두 다 다른 형제들을 탓하고 ‘내가 왜 모셔야 합니까? 나는 모실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방 두칸에 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부모라고 함께 살 수 가 있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라는 말에 내 가슴은 꽉 막히고

그 할머니의 설움을 내 손에 움켜쥐어야만 했습니다.

 

기자가 집을 방문했을 때 그 할머니의 손자가 집안에 있었습니다.

기자는 묻습니다. '할머니가 버려졌는데 이 사실을 알고 계세요?' 그래서 저는 바로 이거야 저 손자를 통해서 가족이 변화 될 수도 있겠다 라는 기대감 하나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그 손자의 대답은 가슴이 미어지는 그

래서 쥐고 있던 설움이 눈물로 뚝 뚝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만큼 잘못을 했기 때문에 버려진 것 아녜요?’ 바로 그것이 현대의 고려장이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이 옳든지 그르던지 이유를 가지고 있지요.

그렇게 해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양심을 팔아 버린데 있었습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데 있었습니다.

즉, 예복을 입었다고 생각하거나 예복을 입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었지요.

만약 우리가 이런 자신이라면 예복은 바로 회개와 믿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복은 사랑의 이중계명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만족하는 삶,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제 우리가 만약 예복을 입지 못했다면, 입을 수 있기를 노력하고

예복을 입고 있는 하느님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교만하지 않도록

마태22장 14절 말씀: \"부르심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라는 말씀\" 을 상기해야 하고,

하느님 체험을 한 분이라면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20절 말씀 \"영원히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삶의 잔치에 초대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멍에로 느껴진다면 기쁨의 예복을 묵상하고 십자가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면 원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쁘게 살아가야 합니다.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의무입니다.

인생은 하느님을 향해 흘러가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강가에 있는 몸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싣는 우리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류영국씨의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흐른다의 한 부분입니다.

“물은 합치려는 의지로 흐른다, 돌부리에서, 가랑잎 틈새에서 스며 나온 물은 흐르다가

바윗등이 줄기를 갈라놓으면 옆으로 비켜서 만나고 둑을 쌓아 막으면 틈새로 새어나와 다시 만난다.

 

그렇게 만나고 합쳐서 강이 되어 흐르고 강물은 다시 합쳐 바다에서 하나로 된다.

물소리는 서로가 그리워서 울부짖는 외침이다.

그리움 끝에 만난 물줄기인지라 포구에 다 와서는 웃음 짖는 둥근달을 띄우고 또 흐른다.

물의 여정은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하나가 되려고 자꾸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거나

또 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필요한 행동실천이 게으르다면 우리의 삶은 의식적인 삶, 깨어있는 삶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날 밤, 한 자매님이 기도실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고 있는데, 뭔가 눈앞에 아른 아른 거리는 것이 느껴졌지요.

순간 그 자매는 옛날 한 소문이 떠올랐고,

눈을 떠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 자기 눈앞에 악마가 있는 것이었어요.


악마랑 마주친 그 자매님은 악마를 쫓기 위해 찬미노래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당황해서 아무 찬미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한참을 머뭇거린 그 자매님이 드디어 찬미가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곤 악마를 향해 강렬한 눈빛으로 손을 들고 이렇게 찬미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어요.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뭐 신부님 그렇게 까지 되겠어요? 하시겠지만 깨어있지 못한 상태에서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입니다.

이곳 꽃동네는 기도회가 매주 있습니다.

그래서 고백성사를 밤 늦게 까지 하는 일이 자주 생기지요.

지난주 성령기도회때 고백성사를 마치고 형제님께 보속을 주고 사죄경 외우기 전,

힘들어하는 고통 받고 있는 형제님을 위해 근사하게 기도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밤 2시가 넘어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했으나 잘 할 것만 같았지요.

그리스도교 신자로 살아가는데 그래도 기도하나는 제대로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욕심이 그 짧은 순간 들었고

그래서 그 형제님을 위안해 주는 기도를 아주 폼나게? 그래서 이것저것 순간이지만 생각도 했답니다.

 

머리에 손을 얻고 시작한 기도중 이상한 점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글쎄 제 자신이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아이고 이건 아닌데 라는 순간 그래도 다행이다.

소리 내어서 기도했더라면

어떻게 할 수 없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텐데 ...라며 중얼거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마태오 23:5) 라는 생각도 스쳤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목활동, 신심활동, 사도직 활동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다만 깨어있지 않고 활동에만 몰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자칫하면 세속적인 것에 치우쳐

하나의 출세 방편으로,

어떤 경우는 나를 들어내는 간판으로, 어떤 경우는 나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환으로

전락시키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웃사랑의 실천마저 하나의 일로 전락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의적으로 습관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못나고 부족한 우리를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풍성한 잔치를 차려놓고 사람들이 와서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집 나간 아들을 애타는 아버지의 정으로 그리며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

 바로 이 분이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바로 그 분이지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할 줄 알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받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인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있음을

이 ‘아버지’라는 한 구절에서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28주일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경종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많은 것을 받아서 많은 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작을 지라도

실제로 그분께서 나에게 베푸신 사랑을 다시 한번 묵상하는 한 주간의 시작이 되도록 합시다.

여러분, 꼭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이,

재산 축척하는 것이, 내 가족만 편히 먹고 사는 것이 인생역전이 아닙니다.

천국을 그리는 것도 그래서 영적여정에 투자하는 것도 인생 역전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는 거룩한 미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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