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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The Extant Works of the Writers of that Age THERE flourished many learned men in the Church at that time, whose letters to each other have been preserved and are easily accessible. They have been kept until our time in the library at Aelia, which was established by Alexander, who at that time presided over that church. We have been able to gather from that library material for our present work.
Among these Beryllus has left us, besides letters and treatises, various elegant works. He was bishop of Bostra in Arabia. Likewise also Hippolytus, who presided over another church, has left writings. There has reached us also a dialogue of Caius, a very learned man, which was held at Rome under Zephyrinus, with Proclus, who contended for the Phrygian heresy. In this he curbs the rashness and boldness of his opponents in setting forth new Scriptures. He mentions only thirteen epistles of the holy apostle, not counting that to the Hebrews with the others. And unto our day there are some among the Romans who do not consider this a work of the apostle.
CHAPTER 21 The Bishops that were well known at that Time AFTER Antoninus had reigned seven years and six months, Macrinus succeeded him.
He held the government but a year, and was succeeded by another Antoninus. During his first year the Roman bishop, Zephyrinus, having held his office for eighteen years, died, and Callistus received the episcopate. He continued for five years, and was succeeded by
Urbanus. After this, Alexander became Roman emperor, Antoninus having reigned but four years. At this time Philetus also succeeded Asclepiades in the church of Antioch. The mother of the emperor, Mammaea by name, was a most pious woman, if there ever was one, and of religious life. When the fame of Origen had extended everywhere and had come even to her ears, she desired greatly to see the man, and above all things to make trial of his celebrated understanding of divine things. Staying for a time in Antioch, she sent for him with a military escort.
Having remained with her a while and shown her many things which were for the glory of the Lord and of the excellence of the divine teaching, he hastened back to his accustomed work.
CHAPTER 22 The Works of Hippolytus which have reached us AT that time Hippolytus, besides many other treatises, wrote a work on the passover. He gives in this a chronological table, and presents a certain paschal canon of sixteen years, bringing the time down to the first
2. year of the Emperor Alexander. Of his other writings the following have reached us: On the Hexaemeron, On the Works after the Hexaemeron, Against Marcion, On the Song of Songs, On Portions of Ezekiel, On the Passover, Against All the Heresies; and you can find many other works preserved by many.
CHAPTER 20 The Extant Works of the Writers of that Age
20장 그 시대의 저작자들의 현존하는 작품들
이용섭(06-03-16 23:06 )
Likewise also Hippolytus, who presided over another church, has left writings.
이용섭(06-03-16 23:13 )
졸역 : (주교 베릴루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교회를 지배하였던 히폴리투스도 또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용섭(06-03-16 23:22 )
CHAPTER 22 The Works of Hippolytus which have reached us
22장 우리에게 들어온 히폴리투스의 작품들
이용섭(06-03-16 23:32 )
결론적으로 최초의 교회사가 에우세비오는 히폴리투스를 이단자나 열교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즉 에우세비오는 로마 주교의 수위권이나 무류성을 몰랐었다는 증거이다. 작금 천주교회는 히폴리투스를 최초의 대립교황으로 간주해 오고 있으나 이단자나 열교자나 배교자에게 아주 냉혹한 에우세비오는 오히려 그를 좋게 평가하고 있다.
이용섭(06-03-16 23:40 )
◆ 에우세비오 ◆ 라틴어 Eusebius
① 체사레아의~(E. Caesariensis, 260?~339).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사가.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팔레스티나 태생. 스승인 팜필로스(Pamphilos)를 통해 오리제네스(Origenes)의 계보 학통(學統)을 이어 오리제네스가 수집한 카이자리아의 그리스도교 도서관에서 학구의 일생을 보냈다.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 284~305)의 대박해 때까지는 카이자리아의 장로로 있다가, 후에 주교로 취임하였다(313년). 그의 신학적 경향이 오리제네스적인 종속론(從屬論) 계통을 계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우스 논쟁 때는 아리우스의 입장에 동정하였다. 니체아회의에서는 ‘호모우시오스 신경(信經)’에 일단 서명했지만, 그 후의 논쟁 발전에서는 아타나시오파(派)에 반대입장을 취하며, 항상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 306~337)의 통일정책을 받아 들였다. 대박해에 종지부를 찍은 대제의 출현은 그로서는 대망의 ‘구원의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생각되어 대제에게 여러 번 송사(頌詞)를 바쳤고, 대제의 사후에는 ≪콘스탄티누스전≫(Vita Constantini)을 저술하였다. 이 전기에는 대제가 경건한 신앙자로 묘사되어 있어서, 후세의 학자간에서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 ≪콘스탄티누스전≫이나 송사에서 그는 대제의 제국을 하느님의 지배의 지상(地上)에 있어서의 모상(模像)으로 생각하고, 황제는 하느님의 대리인,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이란 황제이념을 창조하였다. 이 이념이 바탕이 되어 황제를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보는 동방교회의 전통이 생겼고, 1917년의 혁명 때까지 러시아에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콘스탄티누스에 관해서는 그밖에 ≪콘스탄티누스 치정 30년 기념연설≫(335)이 대표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서(歷史書)로, 아브라함의 탄생(기원전 2015년?)에서 303년까지를 연표(年表)로 만든 ≪연대기≫(年代記)는 중세 역사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303년부터 재삼 증보되어 325년에 10권으로 완성한 ≪교회사≫는 그리스도교 승리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호교적(護敎的)인 목적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며, 수많은 귀중한 문서 · 저서 발췌를 수록, 고대교회사를 아는 데 없어선 안되는 사료(史料)의 보고(寶庫)이다. ≪교회사≫의 부록(附錄)에서 후에 확대 독립된 ≪팔레스티나 순교자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의 실제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호교적인 2대 저술로는, 이교도를 대상으로 한 ≪복음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 15권),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의 증명≫(Demonstration evangelica, 20권)이며, 이 두 개의 저서에는 고전 그리스의 사상가들로부터 방대한 인용이 있어, 그의 박학을 증명해 준다. 그밖에 성서석의(聖書釋義)도 많이 썼지만, 오늘날 잔존한 것은 적다.
그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오리제네스적, 중용적이다. 정통파인 호모우시오스를 배척하는 동시에 아리우스주의도 배척한다. 그는 또한 아타나시오(Athanasius)의 교설을 ‘사벨리우스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참고문헌] M. Weis, Die Stellung des Eusebius im arianischen Streit, Freiburg 1920 / J. Stevenson, Studies in Eusebius, Cambridge 1929.
출처 한국 가톨릭 대사전
이용섭(06-03-16 23:42 )
또한 303년부터 재삼 증보되어 325년에 10권으로 완성한 ≪교회사≫는 그리스도교 승리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호교적(護敎的)인 목적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며, 수많은 귀중한 문서 · 저서 발췌를 수록, 고대교회사를 아는 데 없어선 안되는 사료(史料)의 보고(寶庫)이다.
이용섭(06-03-16 23:42 )
위 글 위 본문 일부 인용.
이용섭(06-03-16 23:47 )
조정제님의 각성을 위해서...
이용섭(06-03-17 00:00 )
and Callistus received the episcopate. He continued for five years,
이용섭(06-03-17 00:03 )
졸역 : 그리고 칼리스토(투스)가 주교직을 계승했다. 그는 5년 동안 (주교직을) 계속했고,
이용섭(06-03-17 00:08 )
위의 언급이 에우세비오가 칼리스토에 대하여 말한 유일한 언급이다. 괴이한 일이로다 !
이기종(06-03-17 00:29 )
이용섭 형제님.. 참으로 형제님의 의지? 고집?을 누구도 말리기 어렵군요... 위의 본문 내용이 우리 일반 신자들 신앙생활에 무엇이 얼마나 도움되며 또 중요한 것인지요?
모르긴 해도 형제님의 교회지식을 자랑하려는 건 아니실 줄 믿습니다. 아니..혹시 자랑하기 위해서 입니까? 설마 그건 아니시지요?
지금 어느 개신교인 또는 이단 종파와 그 문제 관련하여 토론중이라면 좋습니다. 그것도 아니면서, 대부분 교우분들이 별로 관심 없어 하는 문제를 놓고 왜 그렇게 계속 집착을 하시는지요?
이제 그만 합시다. 게시판 분위기를 전혀 모르시는 것 같이 행동하시니 답답하여 제가 자꾸 나서게 되는군요.
게시판의 여러 형제님들이 원 하시는 게시물을 올리세요. 형제님은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니 얼마던지 가능한 일 아닙니까? 이제부턴 그렇게 하세요.
이용섭(06-03-17 13:28 )
이기종 요아킴 형님
지식 자랑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건 김영태 비오 후배가 잘 압니다. 요사이도 서로 하루에 한 두번씩은 통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화는 비오 후배가 해 주지요. 저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 문제 제기를 이해하여 각성하는 교우가 있는 한 계속하렵니다. 그럼...
이기종(06-03-17 21:31 )
이용섭 형제님 잘 알았습니다..^^ 괜히 제가 쓸데 없는 말씀을 드린 것 같군요. 주교회의 게시판에 들어 오시는 분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었으면...하는 생각일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