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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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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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흥 [felixjh] 쪽지 캡슐

2006-06-07 ㅣ No.100439

현충일을 지내며,,,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유품들을 모처럼 꺼내보았습니다..

 

유품 중에 철제 계급장과 보훈 증서, 그리고 몇개의 빛바랜 훈장이 있었습니다..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그리고 나머진 어떤 훈장인지 모르겠더군요..

아버지의 훈장을 보면서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서 찻물이 우러나듯 배어나왔습니다.
 
제 아버님은 대한민국의 명예로운 육군 장교이셨지요.

 

한산에서 손꼽는 부잣집의 장남으로 태어나셔서
서울의 한 명문고등학교 재학 중에 육이오를 맞으셨다 하더군요.

 

전쟁을 피해 고향에 내려오셨으나 인민군의 의용군으로 차출되어 가던 중
용케 도주하셨다가 다시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군문에서 반평생을 보내신 분이지요..

 

유재흥 장군이 지휘하는 군단전체가 일개 북한군 연대에 패배하여 지리멸렬해버린
6.25전사상 국군에게 패배의 오점을 남긴 유명한 패주행렬에 일개사병으로 참가하셔서
한겨울에 몇일을 걸어 오대산을 넘어 강릉에 재집결한 이후 장교가 되셨다 합니다.
(유재흥 장군이란 분은 또 북한군 몇개사단을 동부전선에 막아내었던 분이시기도 하답니다..)

 

그때 걸린 발가락의 동상과 습진으로 인해 평생을 고생하셨지요.

 

그때를 회상하시며 저에게 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군은 사기를 먹고산다..아무리 병력이 많아도,,패배감에 휩싸인 군대는 지리멸렬한다..
그것은 다른 일에도 마찬가지이다..자신감을 잃은 사람은 사소한 이유로도 큰일을 망친다."

 

휴전후 많은 장교들이 군에서 나왔으나, 선친은 그대로 군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허리에 권총을 차고 찝차를 타고 집에 오신 아버지는 정말로 멋져보였습니다..


식사를 하시느라 잠깐 끌러놓으신 그 권총을 뽑아보고 싶어 만지작거리면
아버지는 슬쩍 웃으시며 탄창을 제거해 주셨지요..

 

계급장이 번쩍이는 견장이 달린 빛바랜 야전잠바의 깃을 올리고,,멋지게 선글라스를 쓰시고
반듯하게 걸어가시는 아버지에게 저는 항상 거수경례를 붙쳐드렸답니다..

 

어려서부터 저에게 항상 신발을 깨끗히 닦아 신을 것과,
바지에 주름을 세워 입을 것과,
목과 허리를 꼿꼿히 세워 다닐 것을 가르치셨지요.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아버지가 일년여 만에 돌아오실 때
쵸코렛과 씨레이션과 그리고 캔디에 파뭍혀 저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초급장교인 아버지를 무척이나 아끼던 5.16혁명사에도 나오는 어떤 대령에 대한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 분은 혁명계획에 깊숙히 개입하였으나,,불과 혁명 몇일전에 배신을 하게되었는데,,

 

그 이유가 거사일을 목전에 두고 마음이 심란하여 부인에게 발설을 하게되고
부인이 혁명의 참가를 극구 말리자,,혁명정보를 그 당시 군의 권력자에게 보고하였답니다..

 

그럼에도 5.16은 성공을 했고 그 대령은 반혁명분자로 몰려 군에서 쫒겨났답니다.

 

그 일화를 말씀하시며 저에게
"남아가 큰 일을 도모하려면 여자와는 상의하지 말아야 한다"하시더군요..^^

 

또한 전두환의 하나회에 속했던 몇몇 장교들이 출세를 하자 못마땅해 하시며
그들의 횡포에 맞서 부딪치셨던 경험을 들려주시면서,
"관운은 따로 있다.."라고 탄식하시더군요..

 

그런 아버지가 비실비실하고 소심했던 아들이 눈에 차셨을 리 없었으나,
그래도 아버지는 항상 커가는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군대를 천직으로 아셨던 아버지는 결국 월남에서의 고엽제 후유증으로
불치의 병을 얻으셨습니다..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상태가 되자

진통을 없애기 위한 마약의 투여로 눈동자가 회색빛으로 변하고,
잇몸의 출혈로 입안에 항상 피가 가득 고이는 고통속에서도

아버지는 세상에 남을 저를 위해 묵주를 돌리셨습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가 가까워 옴을 짐작하시자
한끼라도 더 같이 저녁을 드시고 싶으셔서,,
항상 늦게 퇴근하는 아들을 일부러 기다리셨던 아버지,,

 

아들의 자질구레한 회사일을 듣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자신의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싶어하셨던 아버지,,

 

그 분은 군인답게 죽음도 깨끗하게 맞으셨습니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까지도 정신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한번도 자식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는 불과 몇시간후에 숨을 거두시더군요.

 

저는 오늘 제 아들에게 그 분의 훈장을 달아주면서 그 옛날,,젊은 날의 아버지를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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