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례를 선 부부 중에 이혼 부부가 생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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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식 주례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최초의 주례 경험은 1995년(그러니까 벌써 11년 전인가)에 있었다. 이웃 동네인 서산에서 가진 일이었다. 최초의 주례 경험을 우리 동네가 아닌 이웃 동네에서 가졌다는 사실이 묘한 아쉬움을 주는데, 나는 우리 동네보다 이웃 동네나 먼 동네에서 결혼식 주례를 한 경우가 더 많다.
11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난생 처음 결혼식 주례를 부탁 받았을 때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결혼을 한 때로부터 불과 8년만이었다. 나도 어느새 결혼식 주례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난생 처음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된 사실은 정말 이상한 긴장감을 갖게 했다.
나는 최초의 결혼식 주례를 잘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했다. 멋진 주례사를 하기 위해 공력을 들여 글을 쓰고 연습까지 했다. 그리고 당일 한 시간 전에 서산의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일찍 결혼식장엘 간 것은, 내가 주례를 할 결혼식 직전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주례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말하자면 '공부'를 하려는 뜻이었다.

▲ 2004년 5월 30일 경기도 안성에서 주례를 한 결혼식 모습
ⓒ 지요하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가 주례를 할 결혼식 직전의 결혼식이 정해진 시간에 거행되지 않고 지연이 되는 것이었다. 주례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연락도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혼주들은 물론이고 예식장 주인도 자꾸 시계만 보고, 점점 초조해지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예식장 주인이 내게로 왔다. 예전부터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그 지연되고 있는 결혼식의 주례를 부탁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난생 처음 결혼식 주례를 하게 돼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판이었다. 앞의 결혼식을 보면서 주례 공부를 하려는 마음뿐인데, 느닷없이 내게 그 지연되고 있는 결혼식의 주례를 하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예식장 주인의 부탁은 완전히 강요였다. 지금 결혼식을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 번 결혼식들이 계속 지연되어서 혼잡이 가중된다고 했다. 혼주들도 내게 와서 부탁을 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 결혼식의 신랑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일찌감치 와 있는 신랑에게 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섭섭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의 첫 번째 주례를 다른 사람들에게 뺐기게 됐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뭐…."
그에게 적이 미안한 마음이었다. 내 '최초 주례'는 나에게 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뭔가 특별한 마음을 갖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최초 주례가 누군 지도 모르는 전혀 예정에 없던 사람들에게로 가게 됐으니, 섭섭한 일이기도 할 터였다.
하여간 나는 예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그 지연되고 있는 결혼식을 주례했다.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없는 주례 선생님(서산의 고명하신 분)을 대신하여 그 일을 했다. 주례사는 준비한 원고 내용에서 반을 나누어 사용했다. 똑같은 내용의 주례사를 연이어 사용한다는 것은 다음 결혼식 신랑에게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초의 결혼식 주례를 그런 식으로 했다. 게다가 첫 번째 주례와 두 번째 주례를 같은 장소에서 연이어 한 기록도 갖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그 첫 번째 주례 결혼식의 신랑 신부는 지금도 계속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남아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유일한 부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결혼식의 주례를 펑크내신 서산의 고명하신 분은 예식장을 잘못 알았다고 한다. 시간에 맞춰 다른 예식장으로 가셨기 때문이었다. 옛날과 달리 주례 부탁만 하고 주례자를 정중히 모셔오지는 않는 오늘의 풍습 탓이기도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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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식 주례를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한다. 최초 주례를 부탁 받았을 때부터 스스로 창안을 한 것인데, 신랑 신부로 하여금 미리 글을 써 오게 한다.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혼'을 하는 마당에 글 한 줄 남기지 않는다는 건 너무 허전한 일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양가의 부모와 친지,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발표할 글을 하나 써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터였다.
양가의 부모와 평생을 함께 할 반려에게 하고 싶은 말, 약속이나 다짐 같은 것들을 적어 오게 했다. 내게 맨 처음 주례를 부탁한 서산의 청년은 그것을 시문(詩文)으로 적어 왔다. 대개는 내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나는 신랑 신부가 친필로 적어 온 그 글들을 복사를 해서 사본은 내가 보관을 하고 원본은 돌려주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컴퓨터 작업을 해서(읽기 좋게 가필도 해서) 저장을 해 놓고 프린트를 해서 결혼식장으로 가져가곤 한다. 주례사를 비교적 짧게 한 다음에는 신랑 신부의 그 글을 차례로 낭독을 한다. 시 낭송이나 글 낭독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글을 읽으면서 간간이 조크를 던져 신랑 신부와 하객들을 웃기기도 하지만 대체로 숙연한 분위기를 유지한다(이 부분에서 눈물짓는 신랑 신부도 있었다).
이런 방식의 결혼식은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하객들에게도 좋은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결혼식이 참 재미있다는 반응을 접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에다가 최근부터는 천주교 혼인식의 중요 사항인 '합의'와 '반지 교환'을 모방하여 활용한다. 일반 결혼 예식장의 순서 표에는 없는 사항들이다. 결혼식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짧게 하면서 주례사는 길게 하는 오늘의 습속을 그대로 따라 가지 않으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 주례의 무슨 말 때문인지 웃음 짓는 신랑 신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2005년 3월 3일 충남 태안의 몽산포 해변에서 있은 '야외 결혼식' 장면
ⓒ 지요하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결혼식 주례를 한 신랑 신부들 중에서 단 한 쌍만이 미리 글을 써 오는 일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주례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한 셈이었다. 나는 그들이 왜 내 부탁을 거절했는지 확실한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 의아하고 섭섭한 마음과 허전한 기분으로 주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 후로는 결혼식 주례를 부탁 받을 때마다 그 신랑 신부 생각이 났고, 아쉽고도 섭섭한 마음이 지속되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게 벌써 6년 전의 일인데, 나는 그때 일을 떠올릴 적마다 그들 부부가 결혼 생활을 잘 하는지 궁금했다. 그들 부부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나는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될 때마다 내가 결혼식을 주례했던 그 모든 부부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매번 그 부부가 더욱 특별히 생각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서산의료원'을 갔다가 우연히 그 신랑의 아버지를 만났다. 태안군 원북면에서 사시는 농민으로 옛날부터 잘 알고 지내는 분이었다. 신랑 자리가 아닌, 신랑의 아버지 되는 분이 내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케이스로는 현재까지 유일한 분이기도 하다.
서산의료원으로 비뇨기과 치료를 하러 오신 사정을 듣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아들 부부가 잘 사는지, 이상한 불안감 같기도 한 궁금증을 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 분은 우울한 기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들 부부가 결혼 2년 만에 헤어졌다고 했다. 여자 쪽에서 먼저 이혼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래도 계획적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계획적이었던 것 같다'는 그 말이 갑자기 만가지 상념을 갖게 만들면서 가슴을 한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여자 쪽의 그 '계획'의 내용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어떻게 그런 계획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저런 의문들이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농촌 출신으로 서울로 진출해서 생활하다가 여자를 만났던 아들은 상심이 너무 큰 탓인지 서울 생활을 접고 집에 내려와 산다고 했다. 이혼 경력도 갖게 되고, 농촌 청년이 다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큰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결혼식 며칠 전에 신랑과 통화를 하면서 왜 글을 써 오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신랑 자리는 이런 말을 했다. 신부 쪽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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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성으로 결혼식 주례를 하러 가서는 예식장 상공을 선회하는 패러글라이더의 결혼 축하 비행도 보고...
ⓒ 지요하
내가 결혼식을 주례한 부부들 중에도 이혼 부부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분은 적이 씁쓸했다. 갑자기 결혼식 주례를 서는 일이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될 때마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목욕을 하고, 먼저 신랑 신부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무더운 계절이 아니면 내가 결혼을 할 때 입었던 예복을 입고 가서 주례를 하곤 했다(나는 1월에 결혼을 해서 결혼 예복이 동복이다). 그리하여 가끔 결혼식 주례를 할 때나 꺼내 입는 내 결혼 예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말짱한 상태다.
평생을 하느님 신앙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깊은 생각, 넓은 마음, 높은 정신을 추구하며 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결혼식 주례를 하니, 어떤 음덕이 그들 새 부부들에게도 작용하리라 믿고 소망했다.
그런데 내가 결혼식 주례를 한 부부들 중에도 이혼 부부가 생기다니…! 그것은 앞으로도 또 다른 이혼 부부가 생길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할 터…! 생각하면 절로 겁이 나고 우울해지는 일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결혼하여 살다가 마음이 안 맞거나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이혼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렇게 탄력을 갖고 살아야지 이혼을 무조건 부정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혼식 주례를 한 사람으로서는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또 한번 결혼식 주례 부탁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5일(월) 낮에 신랑 자리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막 인쇄된 청첩장을 맨 먼저 '주례 선생님'께 드릴 겸 인사를 하기 위해 우리 집을 찾은 것이었다.
이 달 25일(일)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그 신랑 자리와 나눈 얘기도 있고, 결혼식 주례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들과 내 마음가짐을 새롭게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오늘은 이런 글을 써 보았다. *
2006-06-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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