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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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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천 [yudobia] 쪽지 캡슐

2006-06-10 ㅣ No.100647



진주 사람들이 매년 10월 개천 예술제로 진주성 싸움을 기린 지 60년이 다 돼갑니다. [이기주소/ 우리군사 이기주소/ 죽여주소 죽여주소/ 왜놈들을 죽여주소] (쾌지나 칭칭나네). 노인 아이 없이 돌을 던지며 고향을 지켜낸 진주 사람들의 호국혼은 구전 민요에까지 담겨 내려옵니다. 충절의 고장, 예향(藝鄕)이자 문향(文鄕) 진주의 곧은 얼은 일본 수중에 떨어진 김시민 교서의 얄궂은 운명을 종내 바로 잡으리라 믿습니다.
진주성 지킴
1592년 10월 왜군이 진주성으로 처 들러왔습니다. 인근에서 싸우던 병사(兵使) 유숭인이 전투에 패해 혼자 말을 타고 성으로 들어 오려했습니다. 진주 목사 김시민은 상급자인 유숭인을 돌려 세웠습니다. [전투를 앞 두고 주장(主將)을 바꾸면 지휘 체제가 무너진다]는 이유였습니다. 말을 돌린 유숭인은 결국 전사 했답니다. 그러나 의병장 곽재우는 [이로써 진주성을 보전 할수 있었으니 진주 사람들의 복이다]라고 했답니다.
왜군은 곡청 호남으로 가는 길목 진주성을 무너뜨리려 3만 대군을 보냈습니다. 김시민은 병력이 3800명 뿐이었지만 왜군 조총을 본떠 총통 170자루를 만들고 화약 150근을 구웠습니다. 넉넉히 대비한 덕에 화약을 짚에 싸 성밖으로 내 던져 댔습니다. 1주일 공방 끝에 적은 물러났습니다. 학봉 김성일은 [늙고 약한 남녀들도 돌을 굴리고 불을 던져 성안에 기와나 돌, 지붕 이엉이 다 없어졌다]며 진주 백성의 기개에 찬탄했습니다. 노량 행주와 함께 임란 3대첩에 드는 진주성 대첩 입니다.
김시민은 전투 마지막 날 적병 총탄에 숨졌습니다.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 패전을 두고두고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다시 진주를 공격해 전날의 분함을 씻으라] 이듬해 왜군이 10만 군사를 몰아 진주성을 포위하자 늙은 기생이 김시민 없음을 탄식 했다고 합니다. [전에는 장졸이 서로 사랑하고 호령이 한결같아 이겼으나 지금은 병졸이 장군과 익숙지 못하다.] 며칠만에 성이 함락됐습니다. 왜군은 민관 7만명을 살육 했습니다. 선조는 1604년 김시민을 선무(宣武) 2등 공신에 올리고 노비와 밭을 하사하는 교서를 내렸습니다. 이 교서가 일제때 일본인 학자에게 넘어갔다가 작년 말 도쿄 경매시장에서 고서적상에게 1200만엔에 낙찰되면서 모처럼 소재를 드러냈습니다. 진주성의 상징 김시민 공신교서를 그대로 둘 진주사람들이 아닙니다. 시민 단체들이 모금 운동을 벌이고 민속예술단체 들도 모금 공연에 나서 교서를 되 사오기로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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