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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 칼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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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6-06-15 ㅣ No.100843

"이상범 칼럼"
제목   전도자 칼럼버스
글쓴이 관리자 E-mail 번호 93
날짜 2005-09-08 조회수 24 추천수 0




신대륙을 발견한 칼럼버스는 전도자였다. 프랑스의 민족학자 장 세르뷔에는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크리스토프 칼럼버스는 ‘신대륙’ 해안에 다가가면서 ‘지상의 낙원’에서 그리 멀지 않는, 다시 말해 성서가 말하는 ‘약속의 땅’에 가까이 이르렀다고 확신했다. 그의 확신은 너무나 강력했기에,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능통한 로드리고 데 이에레스를 종자로 데리고 상륙했는데, 그는 개종한 유대인이었다. 왜냐하면, 재발견한 ‘약속의 땅’ ‘에덴’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이 언어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항해자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예언이 종말이 오기 전에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었던 칼럼버스에게 있어서, 세상의 종말은 이제 먼 훗날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신대륙의 정복, 이교도의 개종,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분쇄가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르뷔에가 그렇게 서술할 수 있었던 근거는 칼럼버스 자신이 스페인의 국왕 페르디난도와 여왕 이사벨라에게 그의 <항해일지>를 증정하면서 쓴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 스페인의 국왕과 여왕이야 말로 칼럼버스로 하여금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파견해준 장본인이 아니던가.
“(전략) 크리스토바르 콜론(크리스토프 칼럼버스)을 이미 언급한 인디아의 한 지방에 파견하시어, 그 땅의 군주와 백성과 나아가서는 그 토지, 그 상황, 그 밖의 모든 것을 보고 듣게 함으로, 그들을 거룩한 가르침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방도를 탐구하도록 명하고, 그를 위해 지금까지 다니던 동쪽 땅을 거치지 않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다녔었는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는 서쪽으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칼럼버스는 이교의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길을 찾는 것이 항해의 주 목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대항해의 동기가 전적으로 경제적 이익추구에 있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실은 종교적 열정이 훨씬 더 큰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명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페르디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라센인들과 전쟁을 해왔었다. 우리들이 레콘키스타(reconquista)로 부르는 이 전쟁은 이슬람이 지배해왔던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으려는 운동이었다. 1492년, 승리한 국왕은 승리 직후의 고양된 분위기 가운데서 칼럼버스의 항해를 허락한 것이었다. 신대륙에의 진출은 이교도 정복 전쟁인 레콘키스타의 연정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고로 16세기 초 중남미대륙을 침략하고 잉카, 아스데카 문명을 파괴한 자들을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라 불렀는데, 그들이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뜻에서였다.
칼럼버스도 이교도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일을 문자대로 그의 사명으로 받아드리고 있었다. 섬을 발견하고 새 주민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길들여질 수 있는 민족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려야했고, 이를테면 “그들은 쉽사리 그리스도교도가 될 것으로 사료됨”하는 따위의 보고서를 써 보내곤 했던 것이다.
전도자로서의 칼럼버스의 사명은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 신대륙이 그리스도교 복음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그러나 처음 전도자들을 만난 신대륙의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되돌아보는 역사는 과연 그리스도의 아픔과 전혀 무관한 것일 수 있었을까 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했고, 많은 피를 흘린 지점이 그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끔직한 살상이, 그리고 원주민의 노예화가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 참상의 일부에 대해서는 라스 카사스라는 도미니크 수도회에 속한 수도사가 <인디아스의 파괴에 대한 간단한 보고>라는 책에서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중의 한 토막 “나는 그리스도교도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산채로 불에 굽고, 찢고 고문하는 것을 목도했다... 또 그들은 생포한 인디오들을 모두 노예로 삼았다.”
칼럼버스의 전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도 승리였을까 아니면 아픔이었을까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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