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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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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수 [sooyaka] 쪽지 캡슐

2006-06-17 ㅣ No.100917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2006년 6월 18일


마르 14, 12-16. 22-26.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대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해방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하신 이별의 만찬이었습니다. 해방절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념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상하고 그 사건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삶 안에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상을 위한 제사에서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제사에서 우리가 조상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분들이 아끼고 사랑하셨던, 우리 형제자매들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제사 후 음복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그분들의 시선에서 형제자매들을 바라보고 우애를 다집니다. 돌아가셔서 과거의 존재가 된 그분들이 오늘 우리의 삶을 위해 갖는 의미를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해방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기억하고, 그들의 삶 안에 되살려 내는 의미는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과, 그 함께 계심은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해방이 보여주었듯이 그들에게 은혜로운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이 해방절 식사였던 것은,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삶 안에 되살려낸 예수님이었고, 그분 안에 하느님이 주시는 해방과 은혜로우심을 제자들이 깨달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식탁에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라는 말씀과 더불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셔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몸과 같은 피가 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계약의 피라는 말씀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계약은 쌍방이 미래 행동 방식을 약속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신 빵을 먹게 하고,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포도주를 마시게 하면서, 쌍방의 미래 행동 방식을 정하셨습니다.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 안에 예수님이 살과 피로 살아계셔서 당신의 삶이 그들 안에 발생하게 한다는 약속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몸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를 의미하고 피는 생명입니다.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의 인간관계와 생명을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 만찬으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미래의 행동방식이 정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분의 자비를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인관관계이고 생명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피’라는 말씀이 요약합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유대 사회의 실세였던 사제들과 율사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특권을 받았다고 믿으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나 잘못 지키는 사람에게나 하느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유대교의 제도권에 몸담은 사람에게나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에게나 하느님은 함께 계십니다. 제도권 안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높은 사람 행세하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3.45). 그 시대 사제들과 율사들은 하느님을 빙자하여 그들 자신의 위신을 찾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일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셨습니다. 그것은 섬김의 인간관계였고 하느님의 생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이 강요하던 십일조와 제물 봉헌에 동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을 것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응답으로서의 사랑을 기대합니다. 군림하고, 명령하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은 횡포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불쌍히 여기고 베푸시는 분이기에 우리도 당신의 자녀 되어 불쌍히 여기고 베푸는 일을 자유롭게 실천할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종교 제도권의 지도자들 같이 위신을 찾고,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대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두둔하는 것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비하하는 천박한 행동이었습니다.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하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에 구애받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과 어울리시기에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이라고 버려진 이들과 어울리면서 하느님은 그들과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몸짓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와서 나를 따르시오.”(마르 10,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이 재물이거나 위신이거나, 베풀고 쏟는 일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버리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한 사람을 위한 계획에서 해방되라는 말씀입니다.


성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이라는 빵과 피라는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인간관계와 삶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이해하듯이, 우리 자신을 보는 눈도 성찬에서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인간관계와 삶을 배워 실천하는 우리가 됩니다. 빵이 예수님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가 되었다는 말로써 성찬에 대한 말이 끝나지 않습니다. 성찬은 우리 자신도 변하게 합니다. 이 변화는 어느 한 순간에 기적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은 한 순간에 자라고 한 순간에 무엇을 배우지 못합니다. 생명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성장하고, 서서히 무엇을 습득합니다. 우리는 성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시간과 더불어 이 변화가 우리 안에 일어날 것을 빕니다. 우리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서서히 벗어나 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으신 예수님의 삶이 우리 안에 실현되게 하는 성찬입니다. 성찬은 빵도, 포도주도, 우리 자신도 모두 변하게 하는 하느님의 일, 곧 성사(聖事)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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