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에 전해오는 전설
옛 날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지금의 보길도 앞바다에는 지금의 보길도보다 더 큰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든 주민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찬양하며 하루하루를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탄이의 형인 삼탄은 그것이 너무나 배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그 평화를 깨뜨리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주민들의 창조주께서는 얼굴이 잔뜩 부어있는 삼탄의 얼굴을 보고 미운 중에도 안타까운 측은지심이 일어 ‘왜 그렇게 얼굴이 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삼탄은 “창조주께서 그들에게 좋은 것만 주시기 때문에 저들이 창조주를 찬양할 뿐이지 조금만 혼란을 주면 저들은 창조주를 원망할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리하여 그 창조주께서는 삼탄에게 ‘욥기’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섬나라의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큰 배를 타고 축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삼탄이 창조주께 나아가 선장에게 비정상적인 항해를 하도록 명령해주시기를 요구했습니다. 큰 배의 선장은 창조주의 명령이 너무도 많이 이상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명령대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판장이 뛰어와 선장에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은 창조주의 명령이니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갑판장은 이해가 되지 않음은 물론 의아스러워 갑판원들에게 함께 가서 선장의 잘못을 바로잡자고 말했습니다. 갑판장과 갑판원들은 함께 선장에게 가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항해해 주기를 요구했지만 선장은 역시 그대로 따르라고 했습니다. 실망한 갑판장과 갑판원들은 너무나 답답하여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였고 삽시간에 축제를 즐기고 있던 큰 배의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윽고 사람들이 몰려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큰 배는 바다 가운데서 뒤뚱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배가 기우뚱거리자 사람들이 더욱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혼란은 더해져 배가 침몰할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진정시켜보려고 노력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은 가중 되었고, 나중에는 사태의 본말이 뒤엉켜지고 사람들은 편이 갈리게 되었으며 감정의 골은 깊어져 어느 누구의 말도 들으려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그 큰 배는 침몰하고 말았으며 단 한사람만 살아남아 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곧바로 토굴로 들어가 창조주께 부르짖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흐른 뒤 그 생존자는 그 사건이 창조주의 허락 하에 행해진 삼탄의 ‘딴지권법’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해있는 삼탄의 얼굴과 수심에 잠겨계신 창조주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는 토굴을 나와 슬픔에 잠겨있는 주민들에게 배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토굴 속에서 보고 깨달은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를 재건하였습니다. 그 공동체는 순간순간을 뒤돌아보며 창조주께로 나아갔습니다. 많은 유혹과 수없이 많은 횟수의 ‘딴지권법’이 등장했지만 그때마다 그 사건을 거울삼아 열심히 기도하여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벼운 일이라 여겨지는 것도 모두가 함께 기도하여 창조주의 뜻을 알려고 했고, 기도에서 얻은 응답까지도 침묵을 지키며 모두들 자신들의 임무완수에만 열심 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도의 응답 마져도 침묵을 지킨 것은 다른 사람들과 의견 차이로 인한 불편과 오해를 이기기 위함이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로 인하여 공동체에 누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해가 생기기라도 하면 오히려 칭찬과 대화를 통하여 이해와 화합을 추구하였습니다. 공동체가 단단히 뭉치면 뭉칠수록 삼탄의 시기와 질투는 심해졌지만 삼탄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삼탄은 끝까지 창조주께 대항하여 발버둥 쳐보았지만 공동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찌푸려진 삼탄의 얼굴을 불쌍한 눈초리로 바라보시고는 그 공동체 전체를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사람들만이 아니고 섬 전체를 들어 올리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삼탄은 이를 갈며 동생인 ‘사탄’에게 뒷일을 맡기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길도 앞바다는 태평양을 향하여 뻥 뚫려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가끔씩 고향인 보길도를 갑니다. 보길도의 앞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아무도 믿지않는 전설을 생각하면서 제 신앙을 비추어봅니다. 그들처럼 들림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노래하면서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 일초라도 줄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려 각오를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