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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반구정과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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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균 [baeyoakim] 쪽지 캡슐

2006-06-19 ㅣ No.101012

 

 

 

  아쿠장과 살쿠지 다리

 

 

 조선 전기(朝鮮 前期)의 문신(文臣) 한명회(韓明澮)는 태종 15년(1415년)에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임신한지 7개월만에 낳았으므로 칠삭둥이 재상(宰相)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에게 의지하여 자랐는데 그의 할아버지 문간공(文簡公)께서 그를 항상 비범한 인재로 생각하였으나 과거(科擧)에도 담담하고 가정이나 사업에도 또한 마음을 쓰지 않고 사방에 돌아다니며 강호 풍월(江湖 風月)에 도취하면 일년동안이나 귀가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합니다.

 

 그러다가 문종 2년(1452년) 늦은 나이(38세)에 처음으로 경덕궁직(慶德宮直)이라는 벼슬에 오르더니 그 후 친구인 교리(敎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에 가담하여 무사 홍달손등 30여명을 추천,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癸酉靖難)때 수양대군을 도와 군기녹사(軍器綠事)가 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시복시소윤(司僕寺少尹)에 올랐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乘勝長驅)한 그는 세조, 예종, 성종임금을 거치면서 성종18년(1487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승지, 판서, 관찰사, 영의정등 안 해본 벼슬이 없었고 그의 두 딸을 왕비로 들이고 정난공신 1등, 익대공신 1등 등 네차례나 1등공신이 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쿠테타와 모살(謀殺)과 옥사(獄事)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후에 신원(伸寃)되기는 하였지만 1504년(연산군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때 윤비(尹妃)의 사사(賜死) 사건에 관련되었다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화(禍)를 입은 권력자(權力者)이기도 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명회는 부인이 셋에 11남 9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첫 부인 여씨는 일찍 죽고 정씨, 이씨의 두 부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명회는 부인들에게는 엄(嚴)하여 집안에서 부인들을 높이 받드는데 소홀(疎忽)했던 점이 있었나봅니다. 어느날 세조가 한명회의 집에 방문하니 정, 이씨 양 부인이 뜰에 엎드려 그 원통한 사실을 울면서 하소연하매 왕이 형수(兄嫂)라 부르며 입시(入侍)하도록 하여 어필(御筆)로써 직접 써서 교지(敎旨)를 전하고 양 부인에게 정경부인(貞敬夫人)을 봉하는 옥새(玉璽)를 눌러주니 이때부터 온 집안이 양 부인을 예(禮)로써 대했다고 합니다.

 

 만년(晩年)에 한명회는 ’속된 세상의 일에서 벗어나 한적한 강가에 머물며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라는 뜻이 담겨진 자기의 호 압구정(狎鷗亭)의 이름을 따 관직을 떠난 뒤라도 언제라도 임금의 부름에 응할 수 있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강가에 별장(別莊)을 짓고 머물렀습니다. 현재의 압구정동 465번지(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지어졌던 별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으나 그 자리에 압구정 터임을 알리는 표석(標石)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압구정이 얼마나 컷으며 얼마나 화려(華麗)했는지를 소상(素像)하게 알리는 사료(史料)는 없으나, 멀리 명(明)나라까지 그 운치(韻致)와 화려함이 소문이 나서 조선으로 온 중국의 사신(使臣)들이 너도나도 압구정에서 연회(宴會)를 베풀기를 간청하는 지경이었습니다. 당시 재상들이 삼개나루(마포)등에 정자(亭子)를 짓고 풍류(風流)를 즐기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었는데 칠삭동이 재상이자 사위를 임금의 자리에 까지 끌어 올렸던 한명회는 별장터 고르는 안목(眼目)도 한 수 높아 멀리 삼각산과 도봉산의 차아(嵯峨)한 모습이 바라보이는 강 건너에 압구정을 짓는 혜안(慧眼)에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                                   *                                     *                                   *

 

 

 이태조가 그의 계비(繼妃)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삼고 정도전이 세자를 두둔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제 5왕자 방원(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계비 소생의 두 아우와 이를 두둔하는 공신들을 살해했는데 이에 격분(激憤)한 태조는 함흥 별궁(別宮)으로 들어가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태종이 아버님의 분노를 가라안치려고 사신(使臣)을 보내면 보내는 족족 감금하거나 살해하였기로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신을 이르는 것으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유일(唯一)하게 목적을 이루고 돌아온 함흥차사가 박순이었는데 그는 새끼말과 어미말을 따로 떼어 별궁앞에 몰고가서 어미 찿는 망아지의 애처로운 울음을 아버지 태조를 그리는 태종의 심정(心情)으로 비유(比喩), 성난 태조의 마음을 녹이고 서울로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은 태종은 동교(東郊; 뚝섬 벌)로 나가서 장막(帳幕)을 설치하고 환영연(歡迎宴)을 준비하는데 가장 신임하는 측신인 좌정승(左政丞) 하륜(河崙)이 "상왕(上王)의 노여움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모든 일을 신중히 생각해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열 아름은 되는 큰 나무로 장막 기둥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돌아오던 이태조가 장막 앞에서 서성이는 태종을 보자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 치밀어 활을 당겨 태종을 쏘았는데 태종이 황급히 기둥을 안고 몸을 피하니 서너 화살이 기둥에 꽂히고 화(禍)를 면하였으니 그때부터 중랑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이곳이 ’살곶이 벌’의 지명(地名)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살곶이 벌’의 유래(由來)에 대하여 좀더 신빙성(信憑性)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동(東)에서 서(西)로 흐르는 한강(漢江)과 북(北)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중랑천(中浪川)이 합하는 이곳은 자연히 평야(平野)가 형성되어 풀과 버들이 무성했으므로 조선 초(朝鮮 初)부터 말을 먹이는 목장(牧場)이 되었고 또한 임금의 매 사냥터로도 두드러진 곳이어서 ’동교수렵(東郊狩獵)이란 말을 남기기에 이르렀습니다. 태조(太祖)는 즉위 3년 아직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기 전에 한양의 지리를 살필 때 동교(뚝섬 벌)에 나가 매를 놓아 사냥을 즐겼는데 이때 응봉(鷹峰: 응봉동과 금호동 사이에 있는 산 봉우리)에서 활을 쏘았던 바 화살을 맞은 새가 도요연(桃夭淵: 뚝섬 벌 목장 말들의 음료로 사용했던 지금의 살곶이 다리 부근)에 떨어졌으므로 그 자리를 ’살곶이’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태조는 다음해 3월 한강 위 지금의 응봉 기슭에 매사냥을 관장하는 응방(鷹坊)을 설치하였다 합니다. 한편 ’살곶이 벌’은 국왕(國王)의 군대사열장(軍隊査閱場)으로도 이름났던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살곶이 벌’은 예로부터 목장, 사냥, 상춘(賞春)놀이 등으로도 유명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교통의 요충(要衝)이기도 했습니다. 동(東)족으로 나가는 길은 광나루를 거쳐 강릉 방면으로 향하고, 동남(東南)쪽으로 나가는 길은 송파나루를 거쳐 충주 방면으로 향하고, 그 다음 남(南)쪽으로 나가 뚝섬나루에서 강을 건너 말죽거리(양재동)을 거쳐 과천을 지나 호남(湖南)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과 관동(關東), 영남(嶺南), 호남(湖南)을 잇는 관문(關門)인 이곳 살곶이 벌을 역대 임금들은 중요시(重要視)하여 세종 2년(1420년) 5월에 이곳에 다리를 축조(築造)를 명하여 영의정 유정현과 공조판서 박자청으로 하여금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리는 성종 13년(1482년)에야 완공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그 탄탄함이 반석(盤石)같다고 하여 제반교(濟盤橋)라고 불렀습니다. 이 돌다리는 네모의 돌기둥으로 된 교각(橋脚)위에 장대석(長臺石)을 건너지른 후에 다시 동틀돌을 놓고 청판돌을 깔아 만든 것입니다. 다리 형태(形態)가 종횡(縱橫)으로 곡면(曲面)을 이루어 잘 조화(造化)되어 있고 질박(質朴)하고 호쾌(豪快)한 느낌을 줍니다. 다리의 길이는 76m, 폭은 6m입니다. 조선시대 돌다리 중 가장 긴 ’살곶이 다리’는 1967년 12월 15일 사적(史蹟) 제 160호로 지정되었으며, 1972년 서울시가 무너진 다리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復原)하였는데, 이때 하천의 폭(幅)이 옛날보다 넓어져 동쪽은 콘크리트 교량을 연장 증설(延長 增設)하였습니다.

 

 ’살곶이 다리’가 위치한 ’살곶이 벌’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동서(東西)로 흐르는 한강(漢江)과 북(北)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중랑천(中浪川)이 합치는 곳으로서, 이러한 합수머리에는 많은 물고기가 모여들기에 어김없이 물고기가 잘 잡힙니다. 또 지금은 수질 오염(水質 汚染)으로 고기를 잡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잡는다 해도 먹을 수가 없지만, 불과 한 세대(3, 40년)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천혜(天惠)의 낚시터였습니다.

 

 1950년대 중반(中盤) 이승만 대통령 시절, 현대판(現代版) 환관(宦官)과 간신(奸臣)들이 연세(年歲)높은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인(人)의 장막(帳幕)을 치고 아부(阿附)와 과잉충성(過剩忠誠)으로 나라가 병들어 가고 있을 때, 대통령께서 살곶이 다리로 낚시를 나갔는데 이때 수행(遂行)한 모 장관(某 長官)이 대통령께서 방귀를 한방 터뜨리자 곧 바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성 발언을 한마디 하였다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퍼진 이 말은 아부성 발언(阿附性 發言)의 전형(典型)으로 당시 많은 국민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지금까지도 전설(傳說)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                                    *                                     *                                   *

 

 

 저는 이상(以上)에서와 같이 조선 전기(朝鮮 前期)의 문신(文臣) 칠삭둥이 재상(宰相) 한명회(韓明澮)와 그의 별장(別莊) 압구정(狎鷗亭), 조선시대(朝鮮時代) 최장(最長)의 돌다리인 ’살곶이 다리’의 유래(由來)와 그에 얽힌 전설(傳說), 이승만 독재정권(獨裁政權)에서의 현대판 간신의 아부성 발언(發言)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면서 현세(現世)에 살아가는 우리가 귀감(龜鑑)으로 삼아 본받아야 하거나, 반대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지혜(智慧)로 고쳐 나가야할 다음과 같은 몇가지 역사적 교훈(歷史的 敎訓)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째, 30여 년 동안 많은 임금아래서 권좌(權座)에 머물렀던 한명회가 만년(晩年)에 ’속된 세상일에서 벗어나

         한적한 강가에서 갈매기와 친하게 지난다’는 뜻에서 자기 호(號)를 따 압구정(狎鷗亭)이란 이름을 짓고,

         관직(官職)을 떠난 뒤 언제라도 다시 임금의 부름을 받기 위해 서울 가까운 곳에 머물렀습니다.

 

         이처럼 그 유래부터가 권력 지향적(勸力 指向的)인 탓인지, 압구정 터가 있던 곳은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권력층과 상류층의 주거지가 되었으며 주소지를 이곳에 둔 것만으로도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수준을 헤아리는 하나의 잣대가 되었습니다.

       

         또 당시 압구정의 운치(韻致)와 그 화려(華麗)함이 명(明)나라에 까지 소문이나 중국에서 사신(使臣)이

         오면 압구정에서 연회(宴會)를 열어 줄 것을 간청할 정도였다 하니, 실제로 외래객(外來客)과의 흥청

         는 연회가 많이 열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현세(現世)의 압구정동 일대는 ’로데오 거리’니 ’오렌지 족’이니 하며 외래 소비문

         화(外來 消費文化)가 흥청대는 곳이 되었습니다.

 

         두 임금을 받들어 세우고, 네개의 공신(功臣)을 겸하고, 두 임금의 장인(丈人)이었으며, 최고의 벼슬을

         여러번 살았던 천하(天下)의 한명회였지만 민심(民心)은 그의 위선(僞善)에 우둔(愚鈍)하지 않아 그의

         화려한 정자(亭子)에는 낙서가 끊이지 않았으니, 갈매기와 친하게 지난다는 압구정(狎驅亭)의 현판(懸

         板)아래에는 가까이 지난다는 뜻의 압(狎)자를 누를 압(押)자로 바꿔 압구정(押驅亭)이라 쓴 낙서가

         있었다 합니다.

 

         이렇듯 한명회의 압구정은 이미 자취마저 없어지고 현대 아파트 72동 옆의 작은 표석(標石)으로 그 유허

         (遺墟)임을 가리키고 있을 따름이지만, 지금도 갈매기를 벗하며 철새들을 맞이하고 있는 정자가 있으니

         세종조의 명상(名相) 황희(黃喜)정승이 은퇴하여 갈매기와 벗하며 머물던 파주의 임진강변에 있는

         반구정(伴鷗亭)입니다.

 

         반구정의 반(伴), 압구정의 압(狎)은 글자는 비록 다르지만 둘 다 ’벗한다’라는 뜻입니다. 두 정자는

         다같이 노재상(老宰相)이 은퇴하여 한가로이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餘生)을 보내던 정자입니다만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은 정자의 주인인 황희 정승과 한명회의 일생만큼이나 극적(劇的)인 대조(對照)를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 째, 압구정의 유래가 권력 지향적이며 중국 사신들과 연회를 벌이며 흥청대던 곳이고 지금의 압구정동이

         상류층의 주거지(住居地)이며 외래 소비문화가 흥청대는 곳이라면, 살곶이 다리가 놓여있는 살곶이 벌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庶民)들의 삶터이고 말(馬)문화(文化)와 깊은 관계(關係)를 갖고있다 하겠습니다.

 

         살곶이 벌(뚝섬 벌)은 사방 3,4십리의 넓은 평야(平野)로 풍부(豊富)한 맑은 물과 양질(良質)의 목초지대

         (牧草地帶)로서 조선 초기부터 말들을 많이 길렀습니다. 또한 뚝섬은 임금님의 사냥터이고 군대(軍隊)를

         열무(閱武)하는 연병장(練兵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은 임금님이 무예(武藝)를 점검하기 위하여 자주 거둥하였는데 그때마다 임금의 행차(行次)를 알리

         는 독기(纛旗: 쇠꼬리나 꿩꼬리로 장식한 장군기)를 세웠으며, 이곳 지형이 삼면(三面) 모두 강으로 둘러

         싸인 섬과 비슷하다하여 한자 독도(纛島)라 하였는데 발음(發音)이 뚝섬으로 변하여 지금까지 뚝섬이란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말과 관련된 지명(地名)이 일부 남아 있는데, 과거’마장(馬場)안벌’ 이라고 일컬어지던 장안평과

         마장동(馬場洞) 등이 대표적 지명입니다. 또한 현재 한양대학교가 자리한 산기슭에는 말의 안녕(安寧)을

         비는 마조단(馬祖壇)의 터가 남아 있습니다.

 

         마장동은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었는데서 비롯된 지명이며, 제주도 같은 곳에

         서 어렵사리 말을 한양으로 운반해오면 암말은 지금의 자양동(雌養洞: 옛이름 雌馬場里)으로 보내졌고

         숫말은 마장동의 말 목장에서 길러 졌습니다. 한때는 마장동 일대에 서울에서 제일 큰 가축시장(家畜市

         場)과 도축장(屠畜場)이  있었는가 하면, 현대적 마차(馬車)인 버스 터미널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장안평에는 현대 마차인 자동차(自動車) 매매시장(賣買市場)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1989년 과천(果川)으로 옮긴 후 이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쳬육시설(體育施設)이 들어서

         이웃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뚝섬에는 경마장(競馬場)이 있었습니다. 더욱 재미있고

         신기한 것은 옛날 말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던 살곶이 벌(살곶이 다리 옆 둔치)에 ’살곶이 자동차극장’

         이 생겨 성업(盛業) 중이라고 합니다.

 

셋 째, 한명회가 두 딸을 왕비(王妃)로 들여 두 임금의 장인(丈人)이 되어 평생(平生)동안 권세(權勢)를 누렸지

         만, 부인(婦人)들에게는 엄(嚴)하였다 합니다. 한명회가 지나친 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조선시대 부인들이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유교적(儒敎的) 전통(傳統)을 잘 지켜나가고 희생적(犧牲的)

         인 내조(內助)를 하였기에 이웃에게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칭송(稱誦)을 듣고 조선왕조

        (朝鮮王朝)가 500년이 넘게 사직(社稷)을 보전(保全)하는데 일조(一助)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넷 째, "지나친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격언(格言)이 있습니다. 세상에 지나칠 과(過)자가 앞에 붙어 좋은

         뜻의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과욕(過慾), 과음(過飮), 과식(過食), 과색(過色), 과체중(過體重), 과부하

         (過負荷), 과소비(過消費), 과다노출(過多露出), 과보호(過保護), 과잉충성(過剩忠誠) -- 등등.

 

         이중에서도 과잉충성(過剩忠誠)은 알랑방귀와 더불어 예나 지금이나, 양(洋)의 동서東西), 조직(組織)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간신(奸臣)들에 의해 저질러져 나라를 망(亡)하게 하고 조직(組織)을 와해

         (瓦解)시키는 것입니다.

 

         "방귀 자라 X된다"고 이승만 대통령의 낚시 행차(行次)를 수행하다가 대통령이 방귀를 터뜨리자 "각하

         시원 하시겠습니다."라고 알랑방귀를 뀌어댄 간신들의 과잉충성(過剩忠誠)으로 인(因)하여 몇년 후

         (1960년) 3.15 부정선거(不正選擧)가 이루어 지고 4.19 학생혁명(學生革命)으로 이어져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下野)를 하고 독재정권(獨裁政權)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간신들과 알랑방귀쟁이들의 행태(行態)를 살펴보면 임금이나 대통령, 크고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늙거나, 어리거나, 어리석거나, 병들었을 때와 독재권력(獨裁勸力)을 휘두를 때 어김없이 나타나 왕(王)

         이나 대통령(大統領), 조직(組織)의 우두머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바른 사람들을 모함(謀陷)하고 인(人)

         의 장막(帳幕)을쳐 접근을 막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말과 행위(行爲)를 일삼으며

         자기가 우두머리라도 된 양 호가호위(狐假虎威) 합니다.

 

         또 그들은 자기들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멀쩡한 제도(制度)를 뜯어고치려 하고, 악법(惡法)을

         만들어 댑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우두머리를 돕는다고 별 짓을 다 하지만 결국은 우두머리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다섯째, 독도(纛島)의 발음(發音)이 독섬이 되었다가 다시 뚝섬으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듯이

           삼국시대(三國時代), 고려시대(高麗時代), 조선시대(朝鮮時代)를 통(通)하여 우리들 특히 서민(庶民)들

           에게는 정겨운 고유(固有)의 지명(地名)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日帝時代)에 일본놈들이 자기들의 식민통치(植民統治)에 편리하도록 우리들의 아름다운

          고유지명(固有地名)들을 뜻도 안 맞는 한문(漢文) 말로 고쳐놓은 것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강(漢江)을 거슬러 올라가며 옛날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불렀던 고유의 지명을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포-삼개나루, 옥수동-두뭇개, 금호동-무수막, 자양동-자마장, 광장동-광나루, 풍납동-바람드리,

          암사동-바우절 ---- 등등

 

 

 

         

      살곶이 벌 인근(隣近)에 살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압구정과 살곶이 다리를 아쿠장살쿠지 다리라고 불렀습니다.  

 

 

 

 

 

 

 

- 끝 -

 

 

 

 

 

 

이강길

성금연 가야금 산조

 

 

살풀이

진양조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새로운 강의 역사적 교훈 시리즈를 시작합니다...아쿠장과 살쿠지 다리 어때요...ㅎㅎ 재미있죠? 도마 과대표, 머하구 있어...학생들 집합시키지 않구...^^
남희경(nhk1961) (2004/09/13) : 출석 1등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레오 학생, 출석 1등 인정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리차드 강 이강길 파비아노 조교~~! 역사 시리즈 1편 아쿠장과 살쿠지 다리 떴따~~! 언능 관련사진, 배경음악 올려...바 부우~탁해...요.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도마 과대표두 독자적으루 103 성인전 강의 하는거야? 기특두 하지..."용장아래 약졸 없다"라드니.역쉬 요아킴 교수 제자 도마 학생이로구만.ㅎㅋㅎㅋ(대견스러울 때 나오는 웃음)
남희경(nhk1961) (2004/09/13) : 말씀하신 반구정은 지금 분단의 상처를 가지고 유유하게 임진강을 바라봅니다.그곳에서 장어와 매기 매운탕이 일품입니다.
남희경(nhk1961) (2004/09/13) : 전에 수업떙떙이치고 도마 과대표,요셉,저,비비안나 낮시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혹 학점에 영향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레오 학생, 말루만 장어와 메기 매운탕이 일품이라구 하지말구... 언제 한 번 요아킴 교수를 모셔바 바... 반구정에서 유유하게 흐르는 임진강을 바라보면서..ㅎㅎ 쐬주 한 잔..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반구정에서 한 잔 거나하게 취하면 ㅎㅎ A 반구정 근처에두 못 가보면 ㅋㅋ F
신성구(xhak59) (2004/09/13) : 고유의 옛 지명들이 우리의 정서상 편안하게 들립니다... 절두산은..용의 머리를 닮앗다하여 "용두봉", 또는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모습이다하여.."잠두봉" ..맞지요 교수님..^^
배봉균(baeyoakim) (2004/09/13) : 어련 하겠어...도마 과대표...ㅎㅎ 절두산 쪽은 자네가 더 잘 알자나...^^
신성구(xhak59) (2004/09/13) : 레오학생..!! 죄다 다 까발릴껴!! 비비안나자매님~~거 ..누구는 거기서 작업도 하구...ㅎㅎ^^
이진숙(lcs) (2004/09/13) : ㅋㅋㅋ 작업 실력 형편 없두만 도마형제 비비안나 자매님은 아마도 살아 있는 성인 일껴...^^*에궁 관샘보살...이렇게 쓰는거 맞는거여 과대표님^^*...
배봉균(baeyoakim) (2004/09/14) : 리차드 강 이강길 파비아노 조교~~! 큰일 났따~~ ! 도마 과대표 103성인 전에 나탈리아 자매님=찬수 프란치스꼬 엄마가 배경음악 띄었어... 앞으루 계속 띄울래나바...
배봉균(baeyoakim) (2004/09/14) : 이거 완존히 나한테 배운거 다 써먹네...선생잡아 먹을래나바... 파비아노 조교...우리두 질 수 없자나... 머하구 있어...빨랑 올리지 안쿠서리...
최미정(NATALIA99) (2004/09/14) : 선생님께도 존경과 말없는 응원을 음악은 조교님께 양보! 좋은 하루되세요!
이진숙(lcs) (2004/09/14) : 파비아노 어데로갔니 ?...꼭꼭 숨었어요 못찾겠다 꾀꼴 꾀꼴~~~!...^^*...
배봉균(baeyoakim) (2004/09/14) : 나탈리아 자매님=찬수 프란치스꼬 엄마, 고마워유... 음악은 됐시유...도마 한테나 올려줘유...이왕이문 예쁜그림두...나한테는 추천이나 꾹 눌러줘유..이왕이문 피터팬두 데리구와서
이강길(u90120) (2004/09/14) : 지두 추천 눌렀어유~...
김교훈(ilgyo20) (2004/09/14) : 추천만 눌르면 뭣하냐 강의에 맞는 영상을 올려야지... 파비아노 조교 한계인가? 언능 올려바바바
이윤석(animation) (2004/09/14) : 교수님... 주일 날 잠깐 말씀하셨던 강의가 이제 시작되는거네요... 많이 배우겠습니다...^^ 히지노형님... 아무래도 파비아노한테 머리좋아지는 약을 좀 멕여야 할까봅니다^^
김명순(luciaone) (2004/09/14) : 아침 공부하다 소임터는 지각하는 소동이 생길 것만 같아요. 감사합니다.
조성봉(t4153032) (2004/09/14) : 조선의 태조로부터...감이 좋읍니다.태조의 여동생 정화공주가 저의 조상님 부인(태조의 매제)되시는데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복선(lbs) (2004/09/14) : 옛이름들이..참 멋스럽군요....우리것에 대한 역사적 고찰...강의 잘 들었습니다....출석부에 싸인 하고 갑니다...@(^_^)@
이강길(u90120) (2004/09/14) :
정재훈(jhjung1868) (2004/09/14) : 우주씨리즈는 넘 어려웠어요 ㅠ.ㅜ 이제야 좀 살것 같네요 *^^*
장정원(dizimon) (2004/09/14) : 추천 안날리면 요 위의 꼬마한테 맞는 거죠? 추천 꾹 누르고, 한문공부까지 하고 갑니다. 이참에 한자능력시험 준비해도 되겠습니다. 조교님, 추천 소녀 옷 이쁜 걸루 입히세요*^^
배봉균(baeyoakim) (2004/09/14) : 레오 학생, 도마 과대표, 미카엘라 학생, 나탈리아 학생, 파비아노 조교, 요셉 학생, 루시아 학생, 조성봉 신입생, 아녜스 모범생, 다닐엘 학생, 엘리사벳 학생, 출석..인정~
배봉균(baeyoakim) (2004/09/14) : 어때요~! 학생 여러부운~~ 새로운 역사적 교훈 시리즈가...우주시리즈 보다 쉽구 재미 있지요...벌써 조회와 추천을 보면 알아요...호응도를..ㅎㅎ(기분 디게 좋아서)
박혜서(phs55) (2004/09/15) : 어머 반구정도 있었네요.. 압구정은 예전에 Tv로 보았는데... 참 고유지명은 정감있네요.. 팔이 아파 지각입니다.
이복선(lbs) (2005/09/08) : 1등으로 추천 날리고 갑니다...ㅎㅎㅎ
권태하(domini0727) (2005/09/08) : 저산교수님 오늘 TV뉴스에 앞으로 북한산은 삼각산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하더이다. 그 이름 바꾸는데 김현풍 강북문화원장(현구청장)이 10년 넘어 고생을 했죠. 저도 쪼메는...하지만 저 위에 중랑천(中浪川) 그것도 조선왕조때 지도에는 中梁川으로 돼 있거든요. 쪽발이들이 梁이란 複母音 발음을 못해 랑浪한거지요. 중량천으로, 중량구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제지꺼기 地名을 청산해야 합니다.창씨개명된 일본이름을 아직 쓰는 이는 없잖아요.그런데 왜???
김명희(sayoo39) (2005/09/08) : 교수님의 오늘 강의는 째끔 기네요..^^...자리잡아 놓고 다시 와야지~..그런데 양손에 음악을 두개 들고 계시면 분필(요즘은 이거 아닌데..)은 어느손에 집어실 건가요?..ㅎㅎ
이복희(03chris) (2005/09/08) : 에고, 저도 이 시간이 되어 즐겁고 재미난 공부 잘 했습니다. 상류층과 권력층이 아니어도 압구정에서 20 여년 살아왔는걸요. 제겐 고향이나 다름없어서 누가 뭐라해도 반갑고 정겨운 동네입니다. ^^ 자세한 역사 이야기와 더불어 동네 공부 잘 하고 갑니다. ^^
김유철(kimstefano) (2005/09/08) : 꼬리글이 작년과 금년을 오가니 참 이상허네요. 작년에 벌써 이 글이 올라 왔었다는건가. 어지러워라~~~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아녜스 모범생이 1등으루 추천을 날렸군...요...ㅎㅎㅎ...이뽀라.
이옥임(okim1066) (2005/09/08) : 교수님 저 같은 사람에겐 속독법부터 가르쳐 주셔얄 것 같아요. 할일, 볼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오늘은 글자도 왜 이렇게 잘아요? 머리의 방귀에 아래의 알랑방귀라 오늘 강의의 압권입니다.^^ 이 맛에 매일 끌려오나 봅니다. 그런데 전 추천은 안 해요. 왜냐면 여러 게시물들을 읽고 비교분석 후에 결정해 추천해야 된다고 저는 보는데 전 다독을 못하는 처지거든요. 그래서리....... 그래도 굳이 해 달라고 부탁하시면 더 안 할 거예요, 에헤헤~~.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권 선배님 학생...저두 그 TV뉴스 밨어,,,요..거의 모든 지명을 그런 식으루 바꿔놨쥐...요...일본넘들이...나쁜 넘들...동대문구 龍頭洞두 우리나라 말루 용머리라구하는 마을 이름을 그러케 고쳐논고라니까....요...동대문에서 뚝섬 유원지, 광나루까쥐 기동차가 다녔쥐,,,요...용머리에 정거장이 있었어...요..
이기종(lkj0550) (2005/09/08) : 강의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넹요.. 소피를 간신히 참았잔아여.. A..C..E...하마터면 ×뻔 했넹..^^ 아! 그래두 70년대의 뽕밭.. 잠실벌이여!! 아마 지금분들 그 시절 그곳 풍경 상상도 못할 것이여...!!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思瑜(sayoo) 니임 학생...오늘 강의는 수준을 쪼깨 높였어...요...긴 고 같아두 200여장 자료에서 액기스만 뽑아 정리한고라구...요...무지 만은 정보가 담겨있어...요...다른 대학 다른 교수한테서는 못 듣는 강의야...요...험 험. 글구 음악은 파비아노 조교가 지난번 강의 때 올려노은게 죽었길래...이번에 본문에 가야금 산조를 올렸드니...먼저 음악이 살아나서...두 음악이 같이 들리는 군...요...■를 누르면 음악이 정지돼요...^^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히메 사진작가님 학생이 압구정동에서 20년을?...기럼 오렌지 족?...ㅎㅎ...어쩐지...현대 아파트가 아니구...건너 주택가라구...요?...기래두 압구정동은 압구정동이쥐.^^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스테파노 학생은 모가 어지럽다구 그래...요...구 꼬리글, 신 꼬리글 읽는 재미에 출석한다는디...다른 학생들은~~~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얼짱 요안나 학생은 청개구리인가바...에헤헤~~...추천 해달라구 하문 더 안 해준다구 하는 골 보니..오늘 꼬리글의 압권이넹...얼짱 요안나 학생은 절대루 추천하쥐 마세...욧
배봉균(baeyoakim) (2005/09/08) : 同 요아킴 학생~...低山 교수의 강의는 긴 것두 있구 짧은 것두 있구 그래..요...ㅎㅎ...잠원동에 뽕 밭이 많았구...압구정동엔 배 밭이 많았쥐...요...지금 현대백화점 자리두 배밭이었어...요..!! 同 요아킴 학생이 자꾸 소피 야기 하니깐 低山 교수두 마렵잔아...여..A.C.E..
곽주만(kjm0417) (2005/09/09) : 어제는 남산에 갔다 왔습니다. 업무차 남산동에 가면서 '이왕 온거 귀경이나 한 번 하자'하는 마음으로.., 미풍으로 불어오는 솔향기며 아카시아 꽃내음으로 오랜만에 추억에 젖었습니다. 과대표 하던 졸업반 시절에 교수님 모시고 학우들과 남산 오르막에서 담론을 나누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교수님, 자유대학 야외강의는 언제 가능할까요?
곽주만(kjm0417) (2005/09/09) : 연애시절에 아내가 압구정에 살아 78-1 83-1 버스 타고 남산순환도로를 지나 제3한강교를 건너 신사동에 내려 찾아가면 복숭아밭도 있고 띄엄 띄엄 집 한 채씩 있는 한적한 압구정이었지요.
고재순(gomonica) (2005/09/09) : 잘 배우고 갑니다....아직 몸은 말이아니지만 지명이 바뀐 북한산 아니 삼각산에 회장님이랑 함께 가고싶네요....오늘은 비가와서 생각못하지만 엇그제 같은날은 산으로가고파 집에있는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이윤석(animation) (2005/09/09) : 배교수님이 느낀 역사적 교훈들 역시 멋져요~~^^ 그 중 과유불급 부분에서 과다노출은 때론 시각의 영양제가 되기도 하더군요...ㅋㅋ(글치만 낭중에 울 딸내미는 절대 네버 안듸여요...^^)
이복희(03chris) (2005/09/09) : 대학생 시절에 압구정가는 버스가 11번 하나였죠.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 지나 중앙시장으로 해서 안암동쪽으로 가는 노선이었나 그래요. 나중에 성수대교, 동호대교 등이 생기고 버스노선, 3호선 등이 생기면서 살기 편해졌죠. ^^ 사족이었슴다~ ^^
곽주만(kjm0417) (2005/09/09) : 11번은 고대 지나 왕십리 들러 한남동으로 넘어 가는 버스 노선이고, 78-1번은 남산순환도로 지나 한남대교를 넘어 옛골저수지로 가는 버슨디 제 기억은 결혼전이니 80년대 초반의 기억입니다. ㅎㅎㅎ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09/09) : 니꼴라오 학생이 어제 남산에?...사전 답사하러 갔었나?...低山 교수가 오늘 남산에 관한 글(요지경) 올리는 고 알구...ㅎㅎ...10월달에 단풍구경 겸, 야외 강의 겸 산행 모임을 하기루 혔쥐 안은감?...지난 8월 모임에서 결정혔쥐...9월 23일(금요일)에는 권 선배님 관할구역인 청량리에서 모임을 갖기루 하구...ㅎㅎ
배봉균(baeyoakim) (2005/09/09) : 모니카 총무님 학생은 다리 수술한고 다 나았어...요?...언능 나아서 날러 다녀야 하는디...맨발루...담에 삼각산 갈 때는 나보구 등산화 벗으라구 하쥐 말어...유...맨발루 등산하라구 그러문 난 안 갈 고야~
배봉균(baeyoakim) (2005/09/09) : 요셉 학생~ "배교수님이 느낀 역사적 교훈들 역시 멋져요~~^^"...ㅎㅎ...내가 몇년 전에 쓴 글이쥐만 지금 내가 바두 멋진고 있쥐?.. 自筆自讚하문 안되는 곤디...요셉학생은 과다노출을 조와하는 구만...시각의 영양제라구...ㅉㅉ
배봉균(baeyoakim) (2005/09/09) : 히메 사진작가님 학생 말이 맞는 고 같따...왜냐문 압구정동에 살았으니까...현대 아파트 짖기 전부터 살았나바...원주민 동네에...78-1같은 버스 노선은 낭중에 생겼을 고야...그나저나 암튼 니꼴라오 학생두 압구정동으루 장가 갔구만...처가 집이 압구정동이니깐...ㅎㅎㅎㅎㅎ
박혜서(phs55) (2005/09/09) : 지각해서 읽자니 눈이 아프고 팔이 아프넹.... 재미있게 읽고 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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