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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거가 그린 노송도에는 새가 앉으려다 부딪혀 떨어졌다고 하더니 자연이 그린 보탑사 산신각 여우상에는 벌레가 날아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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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윤수 |
|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하얀 도화지에 빨간 점 두 개를 찍어 놓고는, 흰 눈이 수북하게 쌓인 들판에 있는 토끼를 그린 추상화라고 박박 우기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과목들이야 그럭저럭 앞서가는 편이었지만 유별나게 음악, 체육, 미술 등 소위 예체능 과목엔 소질이 없었습니다. 소질이 없으면 관심이라도 갖고 노력을 했어야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보니 지금껏 예체능 분야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삽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까지 발로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동안에 비슷한 미술도구를 가지고도 밑그림 위에 '쓱쓱' 붓질 몇 번만 하면 요술쟁이처럼 그럴싸한 그림 한 폭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무리 그리고 또 그려도 결과는 엉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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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신각에 그려진 그림들은 송진 물감을 기온이 배합하고 바람이 붓질을 하여 그린 것입니다. 주변에는 정말 여우꼬리를 닮은 꽃들도 피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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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윤수 |
| 마음으로는 뭔가를 그려야겠다고 나름대로 멋진 모습을 상상하지만 막상 도화지에 옮겨 놓으면 마음 속 풍경이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가면 해갈수록 '이건 영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점 엉성해지거나 엉망이 됩니다.
특히 원근감을 살리지 못하니 어떤 그림이든 알록달록한 물감을 써서 탁본을 떠놓은 듯 입체감 없이 밋밋하기만 합니다.
어느 정도 어리광이나 떼쓰기가 통하던 초등학교 때라 크레파스나 도화지가 싸구려여서 그렇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곤 했지만 내심으론 없는 소질에 일찌감치 기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없는 소질을 앞가림하려 해괴망측한 추상화를 핑계로 하는 발칙한 궤변도 생각했던 듯싶습니다.
손끝에서 드러나는 엄청난 능력 차에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을 부러워도 하지만 이따금 보게 되는 자연의 걸작, 자연이 그려내는 풍경이나 배경에도 기가 죽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감히 범접 할 수 없을 만큼 대작과 같은 산수경석의 절경은 그렇다치더라도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린 정밀화만큼 섬세하고 사실적인 무늬나 형상을 보면 다시 한번 놀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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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의 서원과 정성이 깃든 산신각이라 그런지 불가의 상징인 9층탑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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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윤수 | "햐~"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가 있지? 일류조각가의 작품을 능가할 만큼 뭔가와 너무나 흡사하게 닮은 자연 형상물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그 오묘한 모양새나 무늬에 감탄을 하곤 했었습니다.
며칠 전 진천 보탑사에 있는 산신각 벽채에 그려진 그림, 자연이 그려낸 또 하나의 명화(?)를 보고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스스로의 둔감성에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극한 마음이면 바위도 돌아앉게 한다고 하더니 사람들의 치성과 정성이 깃들어서 그런지 산신각 벽채인 통나무 절단 부분에 산짐승 중 지혜제일이라고 하는 여우상이 아주 정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서녘에서 비추는 햇살에 드러난 여우상은 도드라진 옹이 때문인지 입체감마저 느껴집니다. 너무 대칭적이고 사실적인 여우상이기에 두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분명 계절과 기온이 배합한 송진물감을 가지고 바람과 나뭇결이 그려낸 걸작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오묘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뭇결과 나이테를 따라 형체를 그리고 채색을 하였을 화가는, 다름 아닌 바람과 기온 그리고 나뭇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잘려진 통나무를 캔버스로 나무에 배어 있던 송진을 그림물감으로 사용해, 불어오는 바람이 그렸을 겁니다.
춥기도 했고 덥기도 했던 계절과 기온의 변화는 물감을 섞어주거나 희석시켜 주는 용제가 되어 송진의 점도를 조절해 주었고, 불어주는 바람은 붓질을 하는 화가의 손길이 되어 흘러내리는 송진을 밀어주고 덧칠까지 해주니 이런 형상이 그려졌을 것입니다.
여우의 모습을 그리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0년이 걸렸을지, 아니면 5년이나 7~8년쯤 준비를 하다 지난봄부터 빠르게 그렸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도 있었으나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숨었던 술래처럼 나타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이따금 둘러보던 곳인데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호상(狐象)이 나이테를 따라 원만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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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그려진 그림이 있는가 하면 이렇듯 그리는 중인 그림도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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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윤수 |
| 세월을 삭이며 붓대를 움켜잡았던 바람결은 여우상만을 그려 놓지 않고 불가의 상징인 9층탑도 함께 그려 놓았습니다. 다보탑이나 석가탑을 다듬던 석공이 그랬고 탱화나 괘불을 그리던 불화가들이 그러했듯 송진을 움켜잡은 바람도 점점을 찍어가며 정성스레 9층탑을 그렸을 겁니다.
여우상과 9층탑이 많고 많은 전각 중 산신각에 그려져 있어 그런지 또 다른 의미를 두게 만듭니다. 끊이지 않고 산신각을 찾아 예경을 올리는 뭇 사람들의 정성과 애절함이 이렇듯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또렷한 9층탑과 호신의 호상(狐象)으로 도드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을 커다란 통나무에 이렇듯 자연과 세월이 오묘한 호상과 9층탑을 그려 놓으니 그 경이로움에 신비스러움이 느껴집니다.
따라서 그려 볼 거라고 작은 풀잎 하나를 들고 벽면 기둥이 기대어 서서 나이테를 따라 보탑 하나를 그려봅니다. 9층을 훌쩍 뛰어넘어 15층까지 그려보지만 온전한 정성이 결여되어 그런지 방금 그렸는데도 눈에도 마음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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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봐도 자연의 솜씨와 세월의 흔적이 그려낸 여우 초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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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윤수 |
| 우연의 일치이고 그저 닮았을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뭇 사람들의 서원과 정성이 서린 기도처라고 생각하니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현몽을 따라 산엘 갔다 산삼을 캤다고도 하고,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구사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마법과 같은 작전도 꿈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꿈들이 이처럼 현실로 나타나듯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정성과 기도가 산신각 벽면에 지혜제일의 여우와 9층탑을 그려 낸 것이리라 생각하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마음에 위안이 생기고 그 위안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면 그 편안함에서 삶의 지혜가 생겨날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보는 사람을 감탄시키는 만사에는 역시 정성과 지긋한 세월을 필요로 하는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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