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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긍정적인 생각이나 믿음이 긍정적인 삶을 만든다 (에세이. 대부분 오래 전에 남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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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재 [ajeonguard] 쪽지 캡슐

2020-09-01 ㅣ No.220881

긍정적인 생각이나 믿음이 긍정적인 삶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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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생각은 그걸 이루도록 씨를 제공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하는 게 말로 나오는 법, 미래는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있다. 긍정적인 미래도 부정적인 미래도 그 사람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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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부정적인 생각이나 그릇된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저주 받은 일들이 일어났다. 위궤양도 폐결핵도 폐 수술 3번, 삶이 힘겨워 지기 시작했다. 물론 가정에도 인생에도 큰 불행이 생겼다. 그 덕분에 나는 약을 먹는 날이 약을 먹지 않은 날보다 많아지게 생겼다. 현재는 알레르기성 비염, 과민성 방광, 역류성 식도염, 고지혈증 및 지방간, 간수치는 보통 사람의 다섯 배나 높고 그렇다. 그래서 아무 약이나 먹을 수 없다. 당과 혈압도 좀 높은 편이다. 약 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음료수, 아이스크림, 초콜릿, 사탕, 과자 등 단 것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전 단계이니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약을 입에 달고 살게 생겼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다. 하여간에 건강과 업적을 바꾼 게 되는 걸까. 파우스트는 다른 거였지만 말이다. 저는 박정희, 드골, 아우구스티누스도 닮은 사람이다. 나는 에즈라 파운드가 죽은 년 죽은 달에 카이사르처럼 태어났다. 그래서 병에 약했을까. 공황장애나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정동장애, 발달장애라고 다 그런지 아세요. 착각도 자유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도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지요. 저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입니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하지요. 하느님이 저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그러시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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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을 때나 좋은 꿈을 가졌을 때는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나 생각이 씨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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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청소년들의 피에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을 파멸시키겠다고 약속한 지 24년(2013년 기준)이 흘렀다. 원래 우리 변(卞)씨가 고집이 좀 세다. 30년 최(崔)씨 고집도 우리 변(卞)씨한테는 안 된다. 한국의 7대 고집은 최강송조..로 나가지만 말이다. 고작 24년이 흘렀을 뿐이다. 최진실이 살아있을 때 변진섭과의 결혼설이 있을 때 변진섭과 TV프로에 나와서 최씨보다 변씨가 고집이 더 세다고 말했다. 내가 최진실에게 글로 대시를 시작한 지 두주(?) 정도 만에 최진실이 자살을 했다. 바보같이 왜 자살을 했을까. 내가 남긴 글이 조성민을 더 그립게 만들었을까. 하여간에 하느님은 나의 인생에 너무 많이 개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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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획일교육으로부터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해방시키고야 만다는 생각에 있었다. 3년 후 나는 대통령 전용실에서 경치를 바라봤다. 대통령 할 만 하구나. 사람들이 대통령 자리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대통령을 꿈꾸었더니 그렇게나마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을 타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자로 당선된 날짜로 하는 청와대의 편지(친서 같은)를 받았으며 노벨상을 수상하던 날,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께 보낸 내용에 있는 내용을 언급했다. 후자는 독자적인 것인지 몰라도 그렇게 되었다. 맹자의 역성혁명론이었다. 역성혁명론이란 ‘왕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힘을 사용해 왕조를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본인이 최초의 노벨상을 꿈꾸지 않았다면 그렇게라도 되었을까. 이는 언론에서도 모르는 내용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모를 고다 어차피 관심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뿡다라 언론편과 아뿡다라 대통령편이 논픽션이듯 이도 논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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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서울 현충원에서 훗날 안기부장이 된 국방부 장관한테 어느 장관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박근혜가 서울(?)로 갈 때 누구한테 전화를 해서 어떤 종류의 말을 했는지도 안다. 무임 승치를 하려고 손을 드니 차가 한 대 섰다.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는데 이웅평 대위 차였다. 벼리별 일이 다 일어났다. 귀신에 홀렸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하느님(성령)의 이끄심이었을까. 김태희도 못 당한다는(?) 영화배우 김지미가 당한 굴욕(?)도 잘 알고 있다. 이는 매스컴도 모를 거다. 김지미가 얘기를 안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이쯤으로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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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하이텔 플라자에 올려놓은 내용이 획일교육 지지 세력에게 조롱을 받자 나는 훗날 내가 올린 내용을 발표할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게 2년 뒤 적중했다. 내가 주장한 내용이 미국의 교육심리학박사(아마 버클리대)에 의해 독창적으로 주장(95%이상일치)이 되어 그는 미국의 잡지에서까지 화제가 된 것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까지 유명하게 되었다. 만 14세 때 독창적으로 적용하고 만 22세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수면 중 아이큐 증가법’이었다. 나는 수백 가지 아이디어와 글을 남긴 상태였다. 이도 모르는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잘못 키워서 미안하다."고 말씀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다. 무함마드만 그런 꼴을 당한 게 아니다. 예수님도 비슷하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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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서태지나 신승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는 8년 만에 이루어졌다. 신승훈이 피한 상태로 나왔지만 말이다. 노벨문학상을 꿈꿨는데 아직이지만 생금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아일보에 나온 세계적 석학 철학자의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다원주의식으로 흘러야 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있었는데 그 비슷한 사상을 나는 몇 년 전에 독창적으로 이룩했으며 출판이 된 책에 남겼다. 동아일보에 2~3년 만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에 의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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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례성사 대부인 장면 박사가 입원했던 서울 명동성모병원에서 태어났다. 을사늑약이 있던 날. 현재는 순국선혈의 날이라고 한다. 장면 박사가 귀천한 지 10년도 안 돼 내가 태어난 것이다. 나는 에즈라 파운드가 죽은 년 죽은 달에 카이사르처럼 태어났다. 태어난 날부터 주위 사람들이 요란했다. 그것이 저주 받거나 찍혔던 자의 시작이었다. 보들레르만 저주를 받았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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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만에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에우세비오였다. 1966년 런던월드컵 8강전, 북한은 포르투갈에 3 대 0으로 앞서다 5 대 3으로 졌다. 에우세비오 때문이었다. 후후, 북한은 나한테도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런던월드컵이 있은 지 6년 만에 에우세비오가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 북한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호날두의 포르투갈에 7 대 0으로 졌다. 포르투갈한테는 계속 깨지는구나. 한국은 이긴 적이 있는데 말이다. 박지성이 골을 넣어서 말이다. 호날두가 한국을 무시했다고(?).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다던데.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열 받았다던데 선배 에우세비오한테 되게 혼나봐야겠다. 호날두 말이다. 호날두!!, 나 에우세비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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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랭보, 이상, 그리고 기형도보다는 오래 살았으니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나의 유일한 성공 말이다. 40대까지 경성제대 전 역사 + 출신들 다가 이룩한 학문적 업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꿈과 목표로 했는데 내가 하지 못하면 나의 자식이 하고 나의 자식이 하지 못하면 나의 자식의 자식이 하고. 진정 학문을 한다면 대학 하나 업적 수준 정도는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나는 서양 나이로는 여전히 만 38세(2011년)이다. 랭보가 죽은 나이보다 한 살 많다. 나도 살만큼 살았다. (랭보, 이상, 기형도의 경우 천재시인이라고 하데. 대전성모병원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받고, 퇴혼하기 전 간호사들한테 시를 한 수 남겨주고 퇴혼을 했는데 난리(?)가 났다고. 다시 대전성모병원에 갔을 때 나를 수술한 의사 선생님이 알려 주셨다. 저작권 어쩌고 하며. 나는 그 당시 20대 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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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서울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한 장면 박사한테 가서 장면 박사의 모습을 본 후로 장면은 다시 정치를 해도 된다고 했다. 다 죽어가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장면 박사는 얼마 후 1966년 6월 4일 숨을 거둔다. 장면 박사의 아들은 현재 장익 주교님이다. 나의 큰삼촌보다 한두 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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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부활절 아침 폐병으로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대학생 정대철은 같은 병원에 입원, 죽음을 기다리던 장면박사로부터 5·16과 관련된 충격적인 고해성사를 듣는다. 이후 31년이 흘러 중년이 된 정대철 전의원은 장박사의 최후고백을 담은 「장면 정권의 몰락과 5·16비화」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다. 「신동아」는 숨겨진 역사를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정 전의원의 원고를 긴급 입수, 요약 게재한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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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쏴 죽인 며칠 후, 나는 아버지한테 “김재규가 왜 박정희 대통령을 쏴죽였데요?”라고 여쭸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박근혜는 "전방은요?"라고 말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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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고 비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겨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 미래는 자기 생각이 만든다. 초등학교 여 선생님이 얼마 전 목사님이 이러한 얘기를 해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3년 전에 간절하게 원했던 것을 현재 모두 이뤘다는 것이다. 역시 간절한 마음이나 긍정적인 생각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씨를 제공해 준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초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제공을 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던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져 바다에 심어져라 해도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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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베스트셀러 소설 '연금술사'에는 ‘간절히 꿈꾸면 우주가 그것을 이루어지게 도와준다.’라는 글귀가 있다. 사실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긍정적인 사람으로 절대로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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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2세에 정신 장애인이 되었다. 2003년 5월 말이었다.  삼성 SDS 멀티캠퍼스(서울 역삼동)를 다닐 때의 일이었다. 우울증, 강박  등 정신질환에 시달려 약을 먹는 지금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 때 정신질환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살도 불러 올 수 있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좋은 씨앗이 될 것이다. 이희아는 손가락이 모두 네 개지만 긍정적으로 살았기에 삶이 고달픈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행복으로 바꾸었다. 정신장애도 마찬가지이다. 좌절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큰 축복이지 않을까. 약을 먹는 것은, 넓디넓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아울러 영화 ‘뷰티풀마인드’의 주인공인 존 내쉬(천재 수학자, 내시균형 개념 정립, 199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도 조현병(정신분열증)이었고 링컨(미국 대통령)은 조울증(양극성 장애)이었다. 그들도 정신장애를 극복하고 이름을 남긴 사람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 전 장관도 긍정적인 생각에서 있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면 유엔은 고사하고 이장이나 할 수 있었을까. 부정적인 생각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부터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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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가정과 모든 성소의 모범이신 '나자렛 성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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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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