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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러브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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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러브 스토리>
<신라의 愛情歷史 탐방> <경주 月淨橋의 old love story> <요석공주(瑤石公主)와 원효대사(元曉大師)의 러브 스토리>
요석공주는 신라 김유신의 동생이자 무열왕(김춘추)의 왕비인 문희의 두째딸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왕이요, 김유신이 외삼촌이요, 문무왕이 오빠이자 사돈이다. 요석공주는 일찌기 남편 김흠운을 백제와의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되어 외로움을 달래며,
밤이면 정원에 나와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못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이즈음에 신라에 널리 알려진 도승이자 원융무애의 해탈스님이 있어었으니, 바로 元曉大師이다.
원효는 617년 생이니 당시 40세 전후의 나이로 요석 공주보다는 몇살 정도는 많은데, 道를 깨우친 스님이라, 정말 먼 앞날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요석공주를 사모하고 있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아무튼 요석 공주를 염두에 두고 한듯한 요상한 아래와 같은 詩를 읊고 다녔다는데,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株(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라 읊고 다녔다고함. ~"자루없는 도끼는 남편없는 과부를 뜻함이요. 하늘을 받칠 큰 기둥은 신라에 도움이될 휼융한 인물을 말함이니, 요석공주를 두고 한 말이 틀림없지만 이 말의 뜻을 알아차린 사람은 무열왕밖에 없었다고함. 청상과부인 요석공주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원효대사가 월정교(月淨橋) 다리에서 물에빠져, 바로 가까운 요석궁에서 옷을 갈아입고 말리고 몇일(3일 혹은 한달?) 쉬는동안에 요석공주가 신라의 삼문장(强首.薛聰.崔致遠)중의 한분인 설총(한문을 국어화한 "이두문" 창시자)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설총의 벼슬은 신라의 한림(翰林;정사품 벼슬)에 이르렀다고함. 그 "월정교(月淨橋)"다리가 사랑의 가교 다리가된 셈이 람니다.
혹시 또 경주방문하시면 월정교(月淨橋)를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Old love story를 더듬어가며, 다시한번 산책(散策)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파계승(破戒僧)이된 元曉大師> 재탐구 整理 理解 필요.
그분은 인도의 佛心의 갈등원리(入山修道만 주장한 원초적인 佛心원리 사상)를 초월하여 韓國적인 佛心원리로 佛敎思想을 재정리 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위대한 佛心思想이 인도/중국의 佛心원리로 도로 재 전파되었었다. 그분이 깨달은 創意의 思想이 한국의 불교 고유의 思想으로 정착 되었었다. 즉, 1). 和諍思想(여러 모순/대립 현상을 보는 관점 차이는 있을뿐, 갈래의 본질/근본 뿌리는 같다). 2). 無碍思想(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 사상). 3). 眞俗一如(진리와 속세의 삶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글옮긴이~李도희/아오스딩 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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