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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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 어디까지 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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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어디까지 가나? 십자가를 안테나로! 아시아의 자존심인 우리 대한민국의 월드컵 축구팀이 험난한 알프스 산맥 인 스위스를 끝내 넘지못하고 16강의 꿈을 접은 반면, 죽음의 조로 불린 E조에 속한 아프리카의 가나는 미국을 이기고 16강의 티켓을 확보하여 다른 아프리카팀인 토고등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축구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여 선전한 모든 팀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특히 아직도 빈곤과 내전중인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의 꿈이자 희망인 ‘가나가 결승전까지 가기를 기원하면서' 고 민요셉신부님의 형인 민가브리엘님이 최근에 민신부님에게 보낸 편지와 민신부님의 글 ‘상코파’ 그리고 저의 글 ‘민바위와 용나무’를 다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아우인 고 민요셉 신부에게> 민신부, 오랜만에 월드컵 소식 전하네. 아우가 그토록 좋아했던 아프리카의 가나가 오늘 새벽 벌어진 2006 독일월드컵에서 FIFA 랭킹 2위의 동유럽 최강 체코를 2:0으로 격파하며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네. "가나"에 있으면서 아우가 사랑한 타탈리 마을 사람들도 우리가 토고를 이겼을 때만큼이나 기뻐했겠지... 월드컵 개막 몇일 전에 가나와 우리나라가 서로 평가전을 했는데 우리가 3:1로 졌어. 살아 있었다면 월드컵 경기를 즐겨 보며 "가나"도 응원하고, 우리 나라도 응원했겠지. 내일 새벽 4시에 있을 우리 나라와 프랑스전에서 우리 나라가 승리하여 16강을 넘어 다시한번 4강에 올라 가나와 우리 나라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작업 좀 해봐.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민신부님 홈피 http://min0319.com ‘하늘 우편함’에서)
<상코파> 오늘 새삼스럽게 나는 내 방 책상 위에 놓여진 하나의 나무 조각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상코파입니다. 이곳은 서아프리카의 가나 케이프 코스트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꼰뻰뚜알 프란치스코회 뽀르찌운꼴라 수도원 형제들과 함께 산보를 나갔다가 케이프 코스트 성 앞 선물가게에서 가나 돈으로 20,000세디스를 주고 조각품을 하나 샀습니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상코파입니다.
(상코파 : 런던 /대영박물관)
그렇습니다. 상코파는 새입니다. 그러나 상코파는 비둘기나 까치, 매나 독수리 그리고 참새나 제비처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제의 새가 아닙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새입니다. 가나 사람들은 이 상상의 새를 신성시하며 가나가 이야기하는 36개의 주요한 아딘크라 상징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상코파가 지니고 있는 문자적인 의미를 영어로 표현하면, 'go back and take'입니다. 우리말로는 '되돌아가서 취하라'는 뜻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조각품을 찬찬히 뜯어봅니다. 상코파는 자신의 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알을 입에 뭅니다. 자신이 낳은 사랑스러운 알을 입에 물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코파의 모습이 어찌 보면 매우 엄숙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또 어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매우 진지해 보입니다. 상코파는 많은 알을 낳습니다. 그러나 한 장소에 한꺼번에 모든 알을 낳지 않습니다. 여러 장소에 분산시켜 낳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리에 낳았다가 사람들이나 다른 짐승들이 빼앗거나 피해를 입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코파는 여러 장소에 알을 놓아둡니다. 한 장소에 알을 낳지 않기 때문인지 상코파는 자기가 낳은 알이 어디에 있는지 잊곤 합니다. 그러다가 상코파는 문득 자신의 알을 생각해 냅니다. 그 알을 어디에 두었을까 기억을 되살립니다. 그리곤 알을 낳은 곳을 생각해 냅니다. 그리고는 돌아섭니다. 그렇게 돌아서서 자신이 놓아 둔 알을 찾아 떠납니다. 낳은 장소를 더듬고 더듬습니다. 이곳이었는데, 아니 저곳이었는데, 그렇게 알을 찾고 또 찾습니다. 그리고는 기필코 그 알을 찾아내고 맙니다. 그렇게 찾은 알을 입에 뭅니다. 그렇게 입에 물고는 자신만이 아는 안전한 곳에 알을 모읍니다. 그리고는 따듯한 품에 알을 품습니다. 그렇게 알을 품습니다. 기다립니다. 끊임없이 기다립니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기까지 기다립니다. 사랑으로 기다립니다. 이렇게 상코파는 자신이 낳은 알을 잊고 살다가 문득 자신의 알을 생각해 내고는 하던 행위를 멈추고 돌아서서 그 알을 찾아 품에 품고 기다립니다. 이렇게 상코파가 알을 찾아 그 알이 한 마리의 상코파로 거듭 태어나기까지 사랑으로 기다리는 이러한 행동양식을 일컬어 'go back and take'라고 말하고 이것이 상코파의 깊은 의미입니다.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가나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그네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나는 참으로 귀중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곳 가나 사람들은 비록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해 대부분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네들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조들이 살아왔던 아름다운 문화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토착하는 데에 가나의 미래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가나 사람들은 그들이 찾는 희망의 근거를 바로 그네들의 귀중한 유산인 상징의 세계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부심과 희망을 지니며 살아가는 가나에서 만났던 젊은(?) 친구들, 특히 가나에서 사목하고 있는 주교님, 신부님, 수녀님들과 교리 교사들이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목하고 있는지를 나는 가나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상징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상코파입니다. 이 상코파에서, 상코파 정신인 'go back and take'에서 나는 가나에서는 여간해서 찾을 수 없다는 희망을 봅니다. 상코파는 문자적으로 'go back and take' 즉 '되돌아가서 취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했습니다. 상코파는 매우 길고도 먼 안목을 지니고 있는 새입니다. 상코파는 알을 낳습니다. 상코파는 알을 소중히 여깁니다. 자신의 새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알을 다룹니다. 부리로 물어 하나 하나 모아들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알이 깨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상코파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렇습니다. 상코파가 하나하나의 알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처럼 가나 사람들도 그들의 가장 귀중한 유산을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가나 사람들이 근대화, 현대화하면서 잊어버린, 잃어버린 귀중한 유산은 바로 그네들의 덕목입니다. 가나 사람들은 외국에서 물밀 듯이 몰려 들어오는 이국 취향의 생활양식에 맛들이면서 가나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너무도 빨리 잊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잊어 버렸습니다. 잃어 버렸습니다. 가나가 자랑해 온 귀중한 덕목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 귀중한 유산을 잊은 채 허둥지둥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상코파처럼 가나에 대한 희망 하나만으로 잊혀지고 잃어버린 그 귀중한 유산을 끊임없이 되찾아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가나의 젊은이(?)들 안에서 'go back and take' 하는 상코파 정신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들 안에 약동하는 상코파 정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지금 잊고 있는 것,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다시금 되찾으려 하는 그 발상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가나 사람들은 그들이 잊어 버렸거나 아니면 잃어버린 귀중한 유산을 다시금 되찾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나 사람들은 깨어지고 허물어진 그들의 문화적 가치와 문화적 덕목을 상코파에서 찾고 있습니다. 바로 'go back and take'하는 상코파 정신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나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상상의 새, 상코파를 앞에 두고 묵상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는 상코파가 지니고 있는 의미, 'go back and take'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 가나 사람들, 특히 함께 사는 수사님들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피부 색깔이 전혀 다른 코리아의 수사 신부가 그네들 땅에 와서, 그네들의 음식을 먹고 그네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네들과 똑같은 기후에서 살고 있음을 의아해 합니다.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방인인 내가 그네들의 문화적 상징의 중심인 상코파를 사서 들고는 책상 앞에 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묵상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그네들의 귀한 문화적 상징인 상코파를, 그네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코리아에서 온 한 사제가 그 상코파에 관심을 가지고 무척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척 방관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왠지 진지한 나의 모습에서 어떤 색다른 뉘앙스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네들이 더 깊이 지켜 나가야 할 상코파, 상코파 정신을 그네들이 아닌 이방인인 내가 이상하리만치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네들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고 팽개쳐 버렸던 상코파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사님들과 상코파와 상코파 정신에 대하여 밥을 먹으면서, 그리고 산보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코파는 가나 문화의 문외한인 나에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나는 상코파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상코파 정신에 대하여 고민하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인 하나의 조각품인 상코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나 문화의 상징인 이 상코파 상 앞에서 내가 생각하고 묵상하고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go back and take' 하여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 있는 것, 나를 가장 잘 표현하게 하는 그 무엇, 아마도 나를 나로 하여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귀한 무엇인가를 나는 잊고 살아 왔나봅니다. 수도생활 16년, 사제 생활 10년, 내 얼굴에서 수도자로서의 모습이 보이는지 물어봅니다. 내 꼴에서 사제로서의 모습이 은연중에 풍겨 나오는지 물어봅니다. 무엇을 위해 나는 지금껏 살아왔는가? 내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내가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이길래…. 잠을 자다가 문득 마주친 달빛에 눈이 부셔 벌떡 일어나 앉아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찾고 싶은 것입니다. 내 본 모습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진정한 내 꼬라지를 찾고 싶은 것입니다. 서아프리카 가나의 깊고 깊은 밤에 나는 상코파를 마주하고 앉아 있습니다. 상코파를 앞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언어도 낯설고 음식도 낯선 이역만리 이국 땅 가나 케이프 코스트에서 한밤중에 일어나 'go back and take'할 나의 상코파를 찾고 있습니다. 모든 이롭고 편리한 세상을 멀리한 채,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는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멀리한 채, 낯선 땅 블랙 아프리카에서 나의 상코파를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이곳 가나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나에 살고 있습니다. (고 민요셉신부님의 ‘하느님의 결혼식’에서) < 민바위와 용나무의 사랑 > 2004년 10월에 북한산 암벽을 등반하다 선종한 고 민성기 요셉신부님의 유고집 ‘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가 최근에 출간되면서 민신부님을 사랑하고 따랐던 교우들과 수녀님들이 조촐한 출판기념식을 겸한 감사미사를 드리자고 제의해왔습니다. 저는 그 미사강론을 준비하면서 작년에 그분들과 민신부님 추모패(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입니다)를 북한산정상에 있는 어느 바위(우리는 ‘민바위’라고 명명함)에 붙이기 위해 험한 암벽을 타다 낙엽을 밟고 미끌어 넘어져 손목을 다쳐 2달간 파란 기브스(그후 저의 별명이 파랑나비가 됨)를 한 악몽(?)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북한산에 평탄한 등산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저희는 민신부님이 즐겨다니셨다는 험한 등산길과 암벽을 탔다고 하더군요.^^* 그후에 저도 민신부님을 추모하다보니 ‘민신부님은 당신이 튼튼한 교회의 반석이 되시고자 평탄한 흙길보다 험한 암벽을 좋아하셨고 아프리카의 용나무 뿐만 아니라 골고타의 십자나무까지 사랑한 민바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조진수님의 ‘바위와 나무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오랜 풍화작용을 견디다 못한 바위들이 쩍쩍 갈라져 떨어져 내리는 어느 해변의 가파른 절벽에 어느 날 바위틈에서 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싹이 바위에게 말하길 " 나 여기서 살아두 돼?" " 위험해!! 이곳은 네가 살 곳이 못돼..." " 늦었어.. 이미 뿌리를 내렸는걸..." " ......" " 넓고 넓은 세상을 놔두고 왜 하필 여기로 왔어?" " 운명이야.. 바람이 날 여기로 데리고 왔어.." 그 좁은 틈에서도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바위는 나무를 볼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으면 너는 정말 멋있는 나무가 되었을 텐데.." "그런 말 하지마.. 난 세상에서 이곳이 젤 좋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무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물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 나무야, 뿌리를 뻗어! 좀 더 깊이.." 바위도 고통스러웠습니다..나무가 뿌리를 뻗으면 뻗을수록 자신의 균열이 심해졌습니다...나무와 바위는 그렇게 수십년을 살았고 이윽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야!! 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 !! " " 나무야, 난 이곳에서 십억년을 살았어..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어..난 너를 만나기 위해 십억년을 기다렸던 거야.." "......" " 네가 오기 전에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네가 오고 나서야 난 기쁨이 뭔지 알았어.." " 나도 그랬어.. 이곳에 살면서 한번도 슬퍼하지 않았어.." 그날 밤엔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나무는 바위를 꼭 끌어안고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바위는 나무에게 이렇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 당신이 내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날마다 쪼개지는 바위가 되거야..."> 민바위 아니 민신부님은 아프리카에서 용나무(‘천년 먹은 용나무’라고 불리우는 용혈수)를 만나게 되고 그의 유고집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그 나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용나무는 이코드 데 로스 비노스 마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 헤아려보면 나는 참 많은 용나무를 만났습니다. 내가 오늘의 나로 바로 서기까지 나는 참 많은 용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를 만나 넉넉해지고 그를 만나 풍요로워지고 그를 만나 강물같은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나의 용나무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용나무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나리아 제도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바로 용나무였습니다. 풍요와 지혜의 상징으로서 언제나 카나리아 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있는 용나무가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너무 닮았습니다. 자신의 몸인 껍질을 내어 놓아 마을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고, 많은 가지와 무성한 잎을 뻗어 넓은 그늘을 만들어 쉼터를 만들어 주는 모습이 어쩌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으시며 자신의 몸을 내어놓으시는 예수님과 너무 닮았습니다. 또한 ‘용의 피’라고 이야기하는 용나무의 열매에서 나오는 수지가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로 쓰이고 주술 을 물리치는 원료로 사용되는 점이 십자가에서 당신 피를 흘리시며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습이며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나도 용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어느 누구에게라도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평화로울 수 있는 그런 용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멀고도 먼 카나리아제도의 작은 산골인 이곳까지 용나무를 찾아오듯이 나도 용나무를 닮아 용나무처럼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 누군가가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용나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닮은 용나무처럼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용나무가 되고 역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꼭 필요한 용나무가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좋은 일로만 가득할 것이며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의 예화로 든 ‘바위와 나무와의 사랑’에서처럼 민바위인 민성기 요셉 신부님에 있어 용나무는 바로 십자나무요, 우리 즉 당신의 양떼인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그의 성심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며 매일 쪼개지는 바위가 될 것입니다. “주님, 아프리카인들에게도 민바위요 용나무였던 당신의 종 민요셉 신부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아멘.”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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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251 | 이런 '당신'이 되어 주고 계신지요.|12| | 2006-06-24 | 이복선 |
| 101250 | 당신의 거룩 | 2006-06-24 | 장병찬 |
| 101244 | * 가나, 어디까지 가나? *|1| | 2006-06-24 | 이현철 |
| 101247 | Re: 아프리카의 전사들 |
2006-06-24 | 이현철 |
| 101249 | Re: 아웃 오브 아프리카 (펌)|1| |
2006-06-24 | 이현철 |
| 101243 | 인생의 폭풍가운데서 우리를 업고 가시는 예수님|8| | 2006-06-24 | 박여향 |
| 101241 | [사람의 우연과 하느님의 필연]|1| | 2006-06-24 | 사두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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