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만혼 기록' 깨는 결혼식에 주례를 서다

▲ 신랑 신부의 혼인이 적법하게 이루어졌음을 엄숙하게 선포하고...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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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은 내게 있어 매우 특별한 날이었지 싶다. 특별한 혼사, 매우 귀한 결혼식의 주례를 섰기 때문이다. 이미 결혼식 주례에 관한 글을 두세 번 썼기 때문에 또다시 주례 얘기를 한다는 게 다소 겸연쩍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얘기일 것 같아 굳이 기록을 해본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나는 나이 마흔에 결혼을 했다. 1948년 생이 1987년에 결혼을 했으니 만 나이로 따지면 서른 아홉이지만,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나이부터 한 살을 먹는 한국식 나이로는 엄연히 마흔에 결혼을 한 셈이다.
어쨌든 나의 마흔 살 결혼은 당시 우리 고장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고, 지금까지 '최고 만혼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 고장에 나보다 10년 연배이신 한 분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혼 얘기가 화제를 이룰 때는 꼭 그 분 얘기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곤 하지만 그 분은 이제 '만혼 기록'의 범주에서는 벗어난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분이 이제라도 결혼을 하신다면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되고 누구도 깰 수 없는,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최고 만혼 기록 보유자가 되실 테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분의 미혼 얘기와 함께 외로운 황혼 생활 얘기만 간간이 들려오니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다.
아무튼 10년 연배이신 그 분이 최고 만혼 기록을 세울 수 있는 확실한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황혼에까지 미혼의 길을 접지 않으신 것과도 묘하게 관련이 되면서 내 19년 전의 마흔 살 결혼은 우리 고장에서는 단연 최고 만혼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가 19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최고 만혼 기록이 그만 지난 25일 깨지고 말았다. 마흔 한 살 결혼이라는 새 최고 만혼 기록이 2006년 6월 25일 오전 11시 30분 태안읍 동문리 '동문웨딩홀'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신기록 작성을 내가 주례했다. 19년 동안 유지해온 내 최고 만혼 기록이 깨어지는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서서 그 신기록 작성을 내가 주례했으니 자못 의미 심장하고도 재미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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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제치고 우리 고장 최고 만혼 신기록을 수립한 주인공은 조우상(趙雨相)씨. 그는 1966년 생이다. 만 나이로는 꽉 찬 마흔이지만, 한국식 나이로는 마흔 한 살이다. 66년 생인 그가 2006년에 결혼을 했으니 마흔 한 살 결혼임이 분명하다.
그는 태안군 원북면 농촌 출신으로 충남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했다. 태안읍에서 대학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시를 짓는다. 고장의 <태안문학>에 1999년 제3집부터 참여하여 지금은 총무 일을 보고 있다. 2000년 <문예한국>의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한 시인으로 <한국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나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고장에서 <태안문학>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를 '발굴'했다. 나는 그의 시를 좋아한다. 특이한 정감과 율격, 예리한 현실 인식을 담고 있는 그의 시들은 내게 각별한 감동과 보람을 안겨 준다. 나는 그의 시인 '등단'을 주선했다. 연륜이 있는 지면을 택해 등단 과정을 밟게 하면서 함께 심사를 한 유명 시인들의 동의를 얻어 심사평도 내가 썼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 참으로 묘한 일종의 견제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1999년 <태안문학>에 처음 참여했을 때부터 그가 아직 미혼이라는 사실과 그의 나이에 자못 신경을 썼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 고장 최고 만혼 기록을 그가 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그의 결혼을 채근하면서 "내 최고 만혼 기록을 깰 생각일랑 아예 허들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삼십대 중반이었던 그가 어느새 삼십대 후반이 되고 또 금세 40대로 진입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체념을 했다. 그가 내 최고 만혼 기록을 깨고 신기록을 세우리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기록이 깨지는 것도 좋으니 어서 빨리 기록 경신을 앞당기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올 봄에 그의 결혼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참으로 반가운 마음이었다. 내 최고 만혼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는 묘한 아쉬움 속에서도, 끝내 미혼의 삶을 접지 않으신 10년 연배 되시는 분도 다시금 떠올리게 되고, 정말 안도하는 마음과 흐뭇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주례 요청을 받았을 때는 더욱 고맙고 흐뭇한 마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우리 고장 최고 만혼 기록을 깨는 혼사를, 새로운 최고 만혼 기록이 세워지는 그 결혼식을 내가 주례한다는 사실이 정말 묘한 흥미로움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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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행복한 모습
ⓒ 지요하
조우상씨와 한 몸을 이루어 평생을 함께 살게 된 반려는 김정희씨. 전북 김제 출신이고, 공무원으로 현재 태안보건의료원 야간 진료실 담당 간호사다. 천주교 신자로 루시아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지만, 의료원 야간 진료실 근무에다가 한서대학교 성인간호학과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관계로 신앙 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식 며칠 전인 지난 18일 그들 예비부부는 우리 부부를 초대하여 태안 읍내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나는 그때 김정희씨를 처음 보았다. 태안의료원에 이런 미인이 있었던 것을 내가 왜 여태껏 몰랐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그녀는 좋은 인상을 지닌 미인이었다. 확실한 나이를 밝히지 않았지만 삼십대 중반쯤으로 느껴졌다.
조우상씨는 말수가 매우 적은 사람이다. 과묵한 성격에다가 말재간이 없는 탓일 터였다. 태안문학회 모임을 할 때도 보면 너무도 말이 없어서 마냥 꿔다놓은 보릿자루인 것 같고, 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시를 짓고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수리(數理)를 가르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필경 그런 성품 탓에 연애도 하지 못하고 나이 마흔이 넘도록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식으로 말수 적은 그도 김정희씨와 만나 교제를 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2년 정도 교제를 했다는데, 2년 동안이나 사귀는 여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 한번 뻥긋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김정희씨 말에 의하면 조우상씨가 워낙 말수가 적고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아서 교제 기간이 더 길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김정희씨는 조우상씨가 건네주는 <태안문학>을 모두 읽었고, 조우상씨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저 친구가 연인에게 자기 시가 실린 책을 건네주는 재간은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네"라는 말을 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무엇보다도 김정희씨가 조우상씨의 시를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앞으로 부부 생활을 하면서 조우상씨의 말수 적은 성품을 김정희씨의 적극적인 성품이 많이 감싸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결혼식 일주일쯤 후에 김정희씨가 교적을 두고 있는 김제 성당에 가서 '관면혼배'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관면혼배'란 교회가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는 비신자 배우자와의 결혼을 특별히 허락하고 인정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그리고 조우상씨는 앞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어 '성가정'을 이루겠다고 내게 약속했다. 그 동안은 내가 여러 번 입교 권유를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을 해왔는데, 천주교 신자 연인과 결혼을 하게 된 상황에서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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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결혼식을 주례하면서 일반 결혼예식장의 순서 목록에는 없는 '합의' 의식과 '결혼반지교환' 의식을 넣어 진행했다. 천주교 혼례식의 중요 부분이었다. 하느님의 성전에서 사제께서 집행하는 것이 진짜지만(그래서 새 부부가 일주일 후 김제 성당에 가서 '관면혼배'를 받게 되겠지만), 우선 이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의식들을 진행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주례사 시간에는 먼저 7년 전에 부군과 사별하고 홀로 되신 신부의 어머님과 신랑의 부모님께, 그리고 멀리 전북 김제에서 오신 신부 쪽 가족 친지 하객들께 차례로 박수 선물을 안겨드렸다. 그리고 일반적인 주례사 대신 시문(詩文) 낭독을 했다.
신랑이 시인이기에, 내가 발굴하고 등단시킨 시인이라는 각별한 인연도 있기에 나는 주례사를 시문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주례사 대신 시문을 낭독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맞아 지은 글들을 차례로 낭독했다. 친필로 적은 글들을 일일이 복사를 해서 사본은 내가 기념으로 보관을 하고, 주례의 사인이 새겨진 원본은 신랑 신부에게 돌려주는 형식을 취했다. 또 그들의 글을 컴퓨터 작업을 해서 저장을 해놓은 다음 프린트를 해 가지고 가서 쉽게 낭독을 할 수 있었다.
내 축시는 물론이고 신랑 조우상씨의 글과 신부 김정희씨가 네 개의 예쁜 카드에 각각 적은('사랑하는 엄마께', '사랑하는 아버님 어머님께', '나의 그대에게', '주례 선생님과 친지 여러분께'라는 제목을 가진) 글들은 지금 모두 내 홈페이지와 태안문학회 홈피 게시판에 올라 있다.
그 글들 중에서 (이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무릅쓰고) 내가 주례사 대신 낭독한 축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다시 한번 내가 19년 동안 유지했던 우리 고장 최고 만혼 기록을 경신한 조우상씨와 김정희씨의 결혼을 축하하고, 새 부부가 부디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원하면서…. 또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선남 선녀들께 감사하면서….
늘 하늘 우러르며 사시기를
―조우상 시인님과 김정희 루시아님의 화촉을 보며
오늘 다시 한번
그리스 신화의 한 대목을 떠올려봅니다
사람은 원래
남자와 여자로 나뉘지 않고 한 몸이었지요
그래서 인간은 완전했고 오만했으며
신들 앞에서도 불손하고 방자했지요
인간의 무례에 분노한 신들은 회의를 열어
인간을 징벌하기로 했지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갈라놓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둘로 나뉘어 살게 된 인간은
그때부터 원래 한 몸이었던 자신의 짝을 찾아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잘 찾은 부부는
평생 동안 행복하게 살게 되고
원래 한 몸이 아니었던 짝을 잘못 찾은 부부는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했지요
그리스 신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결합하여 한 몸이 된 부부는
자신들이 원래부터 한 몸이었다는 것을,
원래 한 몸이었던 짝을 잘 찾았다는 사실을
평생 동안 스스로 확인하며,
확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했지요
천생연분이란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내가 오늘 힘써 만듦으로써
천생연분이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스 신화는 잘 말해주고 있지요
삼라만상의 신비로운 질서와
장엄한 법칙 속에서
오늘 함초롬히 결합의 꽃을 피우는
조우상님과 김정희님
그대들은 원래부터 한 몸이었음을,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잘 찾은 사람들임을
주변의 모든 눈들이 확신합니다
이제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그리하여 천생연분을 스스로 만들고
알차게 가꾸는 일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그대들의 몫입니다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잘 찾은
그 고귀한 천생연분을
함께 확인하며 힘껏 잘 가꾸십시오
오래도록 기다리고 준비해 온 오늘
불혹의 언덕 위에서
분별의 갈피들을 잘 갈무리하는 눈을 가졌으니
시를 생산하듯 삶을 창조하며
천생연분, 일심동체의 꽃을 활짝 피우십시오
수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답게
수의 이치를 잘 헤아리며 사십시오
무슨 수이든 홀로 있을 때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다른 수와 결합하고 함께 할 때
오묘하고도 광대한 수의 세계를 만들어내며
거기에 철학이 존재하는 이치를
늘 헤아리며 사십시오
뭇 사람의 상처를 닦아주고 싸매 주고
환자의 아픈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으니
약솜 냄새를 일상의 꽃향기로 만들어내는
슬기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십시오
그런 가운데서도 두 분이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사람의 천생연분과 일심동체는
오로지 두 사람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두 사람에게서
삶의 온갖 미덕들이 꽃 피어나서
부모 형제 이웃들이 함께 웃음꽃을 피울 때
비로소 그대들의 천생연분과 일심동체가 확실해진다는 것
하늘의 뜻으로 그대들이 세상에 왔고 또 만났으니
모름지기 하늘 우러르며 사십시오
늦게 시작했으니 더욱 부지런히
하루 서 말씩 깨소금을 수확하며
오래오래 청춘을 누리십시오
오늘 그대들이 활짝 피우고 있는
천생연분 결합의 꽃을
수많은 눈망울들이 지켜보며
하늘 우러러 기원과 축복의 꽃을 함께 피우고 있음을
나날 속에서 늘 기억하면서….
(2006년 6월 25일/주일 오전 11시 30분, 태안읍 '동문웨딩홀'에서 주례를 하며 낭송)
2006-06-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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