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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의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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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부탁하기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다.
선한 싸움은 거듭남의 실체인 선한 양심의 활동 그것이 곧 선한 싸움인 것이다. 바울은 평생에 이 선한 싸움과 함께 달려갈 길을 다갔다고 고백하였다.(딤후4:7) 바울은 이 선한 싸움의 첫 상대는 바로 자기 육신에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믿는 자는 거듭남과 함께 육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지 않고는 이 싸움의 승산은 없다고 미연에 증거하고 있다. 믿는 자가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세상을 이기지 못함이요. 자기를 이기는 것이 곧 세상을 이기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의 싸움은 철저히 자기 육신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사생결단의 싸움인 것이다. 바울은 평생에 이 싸움에 승리한 우리의 모범인 것이다. 초대교회란 바로 이 사생결단의 싸움의 단체가 모여서 되어진 교회인 것이다. 초대교회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의 말씀에 조금도 사람 생각의 터치함이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았던 순수함에 있었기 때문에 곧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음으로 자기를 포기하는 실제적인 생활로 이를 나타내었던 것처럼 모든 말씀에 다 이러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초대교회의 위대한 신앙인 것이다. 이에 비하여 현대교회는 과연 이러한 순수함이 있는가? 그렇지가 못하다 온전한 자기 부인 위에 내려지는 하늘의 복을 사모하기 보다는 자기 부인의 실제적인 삶은 적당히 회피하고 그 상태에서 하늘의 복을 받기 위하여 그 복을 예수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끌어내리는 형태의 신앙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복의 핵심도 대체로 보면 신령한 것도 구하나 그 근본을 살펴보면 반드시 수량과 물질과 부에 연관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앙의 정체는 그 내용은 자기 이념이고 그 겉은 말씀으로 도배되어 진다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에 따라 이러한 지도자 아래에 있는 성도들은 또 과연 어떠한 신앙이겠는가! 한 실 예를 들고자 한다. "청년들이 본 00 교회"라는 제목 하에 30안팎의 청년인 두 공대생 과의 대담에서 발췌한 것인데 인용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김 : 목회자 말씀 선포에 너무 큰 무게가 실리는 것이 문제다. 그런 부분을 토론하고 포용하는 공동체가 건강하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교회가 이것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방법을 말하지만 그 실체는 없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행동도 안 하게 된다. 추상성에 원인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 보면 교회가 하느님의 방법은 말하지만 그 실체는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잘못되어져 가고 있는 신양의 단편적인 현 주소이기도 하다. 이 청년이 어릴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앙해오면서 자신과 주위에 나타나 보이는 신앙관을 그대로 고백한 내용인 것이다. 이 고백 속에 현 지도자들이 자기의 이념에 말씀을 덧입히고 있음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의 방법은 말하지만 그 실체가 없다는 것은 제시한 방법이 참 방법이 아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믿음을 소유한 진리의 세계에 있어서 바른 방법은 바른 열매로 충분히 인도함에 있는 것이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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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676 | 자유게시판 볼 수 없던 하룻 밤은|20| | 2006-07-05 | 배봉균 |
| 101675 | 삼포로 가는길 / 강은철|5| | 2006-07-05 | 노병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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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672 | [흘러간노래] 가거라 삼팔선/남인수 | 2006-07-04 | 노병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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