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1일 (토)
(백)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자유게시판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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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수 [sooyaka] 쪽지 캡슐

2006-07-15 ㅣ No.102069

연중 제15주일    2006년 7월 16일


마르 6, 7-13.


초기 교회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겪은 후에 그분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하신 일들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배워 실천하려 하였습니다. 복음서들은 그들이 그런 노력을 하는 과정에 기록으로 남긴 문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복음서는 기원 후 70년경, 그러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4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복음에서 초창기 교회 상황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당부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말씀 안에는 예수님이 과거에 실제로 하신 말씀도 있고, 또한 초기 교회의 활동 상황과 제자들의 마음다짐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여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겪었고, 그분이 죽음 후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계신다는 사실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실천을 역사 안에 지속시켰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한이나 신분을 받았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교의 율사와 제관들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권한과 신분을 주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권한과 신분을 받았다고 믿는 이들은 우월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직과 제도는 경직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경직성이 없고 하느님의 일만 보이는 하느님 자녀의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섬김이 있고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며 서로의 의견을 듣는 유연한 공동체입니다. 남의 발을 씻어 주는 종과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섬기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는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들 자신도 실천하고 사람들도 실천하도록 권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신비스런 지배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인간을 지배하는 나쁜 힘, 곧 더러운 영들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합니다. 인간 안에 무질서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 시대 사람들은 쉽게 ‘더러운 영’ 혹은 ‘악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사회적 모든 무질서는 이 ‘더러운 영’의 조화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복음 선포는 그런 무질서의 해악(害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님이 하신 첫 번째 기적으로 회당에서 정신병자를 고친 이야기를 전하면서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저분이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1,27)라는 사람들의 반응도 함께 전합니다. 결국 제자들이 받았다는 오늘 복음의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들도 지속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벼운 몸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사실 그 시대 사람들은 여행할 때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가벼운 차림으로 다니라는 말씀입니다. 가진 것이나 옷차림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남의 눈에 띄는 복장으로, 불편에 대비하여 많은 것을 갖추고 다니는 사람은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강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흉내를 내지 않고,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답게 가벼운 옷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닌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얼마든지 민폐를 끼쳐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초기교회는 가정 교회였습니다. 신자들 중 넓은 가옥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집을 공동체 집회 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집을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가 발족하였습니다. 따라서 집 하나가 집회 장소로 정해지면, 그 집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그 지역 신앙인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이나 바울로 사도의 편지들을 보면, 제자들이 선교 여행 중 거점으로 정한 곳은 항상 가정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집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 안의 특수 계층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마르코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신앙인들은 선교를 어느 신분과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충실히 살아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권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과 옷차림에 구애받지 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신체적, 사회적 무질서의 해악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도록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건강, 상호간의 신뢰와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되찾아 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오늘의 인류 사회는 조직에 있어서 유연함을 추구합니다. 제국주의, 봉건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보다 더 유연한 것이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오늘 민주주의 사회는 자발적 시민운동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더 큰 유연함을 향한 행보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인간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더 유연한 조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통신 매체들은 모두가 정보를 쉽게 공유하게 해 줍니다. 세상은 상호 의사소통이 원활한 다원(多元)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개방하고 유연하게 현실에 대처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실효성을 지닙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경직된 개인과 집단은 고립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유럽 교회가 신앙인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은 성직자를 중심으로 경직된 중세적 조직을 교회가 고수한 데에 그 원인의 하나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느님의 일을 신앙인들의 삶 안에 되살려내는 데 실효성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였습니다. 과거 유럽 중세 사회에서 얻은 언어와 옷차림과 제도적 경직성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옷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늘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교회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관을 쓰고, 거창하게 입고, 권위주의적인 언어로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그 구성원들이 함께 생각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서로 섬기는 유연한 교회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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