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4일 (금)
(녹)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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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수해를 겪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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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6-07-17 ㅣ No.10216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3번의 물난리를 겪었다. 고향 경북 영주에서. 그리고 결혼 직전 용산에서,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장안동에서.....한번은 낙동강 두 번은 한강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1학기말 고사를 끝내고 고향집으로 내려가던 날 중앙선 열차를 타고 가면서 곤욕을 치렀다. 청량리에서 탄 열차가 영주 안동을 가려면 원주 제천으로 가야 하는데 다시 용산으로 오더니 한강철교를 건너 영등포로 빠지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열차 내 방송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눈이 휘둥그레 있는데 차장이 한 칸씩 다니며 폭우로 인해 중앙선에 산사태가 나서 부득이 충북선으로 돌아서 가기 때문에 조치원으로 해서 제천 안동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거의 무정차로 가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충북선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으므로 미지의 땅을 본다는 즐거움에 지루한 줄 모르고 타고 갔다.

헌데 제천을 지나고 한 두 정거장 가더니 역도 아닌데서 모두 차에서 내리라는 것이었다. 타고 온 차는 거기에서 서울로 되돌아가고 약 200미터 전방에 기다리는 열차로 바꿔 탔다. 폭우로 인해 철길 지반이 유실되어 레일만 침목 위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탄 기차를 밤 8시가 넘어 영주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가면서 영주 읍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서천 다리를 건너다보니 시뻘건 황토물이 용트림을 하며 흐르는데 상류에서 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내려오다가 다리교각 사이에 걸쳐있고 누구네 것인지 집돼지가 한 마리 떠내려 오는 것도 보였다. 상류에 이미 큰 수해가 났음이 분명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잠결에 어렴푸시 “나와 보소. 뚝이 터지니더. 천방뚝이 터지니더. 나와 보소” 어른들이 징을 치며 동네를 다니면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도 나는 ‘설마, 그 뚝이 터지랴? 그러다 말겠지’ 하며 잠자리에 있었는데 안채 쪽에서 자지러지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데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오니 세상에! 세상에! 그 순간에 내가 한참 뛰어올라가야 겨우 닿는 그 높은 제방 둑이 풀썩 먼지를 일으키며 밀려나는가 싶더니 한 귀퉁이가 벌어지면서 새빨간 물이 마치 용광로에서 빨간 쇳물처럼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건 물이 아니라 불길 같았다. 혀끝을 날름거리는 새빨간 불길처럼 제방 둑 사이로 번져 나오는데 어! 어! 하는 사이에 점점 더 크게 타오르는 빨간 불길만 같았다.

“뭐하고 있노? 어서 들어가서 물건을 꺼내야제” 어머니 야단소리를 들었을 때까지 나는 멍한 상태로 그 장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빗줄기는 별로 세지 않았지만 새벽에 내리는 비여서 그랬는지 겁이 나서 그랬는지 온몸이 으스스 했다.

7월 9일인가 10일이었으니 마을 앞 넓은 벌에는 벼가 시퍼렇게 자라서 파도를 일으켰었는데 그 벌을 다 채우고 마을까지 그 황토물이 들어오려면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정신이 아니어서 어머니가 손에 들려주는 것만 황급히 들고 약 50미터 떨어진 산 밑에 있는 양식이네 마루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그 집도 보따리를 싸고 있어서 안전할 것 같지 않아 걱정은 되었지만 우선 가까우니 어쩌겠는가.

조금씩 정신이 드니까 내 교과서며 과제물이 생각났고, 그보다 더 중한 것이 할아버지께서 아끼시는 한서 책들이었다. 주로 한지에 쓰여 지거나 인쇄된 고서들이라 물에 젖으면 전혀 복구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으로 책을 한 짐 지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보시고선

“에이구 저눔의 책은 뭐할라꼬 들고 가노? 이거나 어서 날라라” 하시는데 보니까 할머니는 용단지에서 바가지로 쌀을 퍼내고 계셨다.

 

새벽 6시쯤 터진 둑 사이로 흘러내린 물이 마을 앞 논을 가득 채워 다 자란 벼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덮고 차츰 물이 마을로 올라와 우리 집 마당에 내 허리에 물이 찰 때까지 3시간 동안 생활필수품과 가재도구를 온식구들이 달겨들어 정신없이 날랐다.

마당에 물이 가득 차니 통시에 있던 인분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데 질색이었다. 하지만 거의 온갖 것들을 그 시간에 다 날을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었다.


며칠 동안 동네 정자에서 잠을 자고 밥은 약간 높은 지대에 있는 이웃집에서 끓여먹고 3일 만인가 물이 완전히 빠지고 난 후에 집에 내려가 보니 온 벽에 변 냄새가 나고 방구들은 다 무너지고 두꺼운 나무판으로 된 안마루는 둥둥 떠서 거의 천장에 마루판이 닿아있었다.

물을 잔뜩 먹은 흙벽은 물이 빠질 때 진흙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수수가지만 엉켜 있는 것이 마치 뼈대만 남은 해골을 보는 듯 했다. 완전히 쑥대 밭 같았다.

허나 그 집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대목을 불러서 다시 그 묵은 집을 복구하려 했지만 그해 혁명을 일으켰던 군인들이 공병대를 끌고 들이닥쳐 물길 자체를 돌려버린다고 모두 마을을 떠나라는 바람에 120년이나 묵은 기와집인 우리 집은 결국 철거되었고, 나는 “한절마 묵은 기와집 둘째손자”라는 내 이름 하나를 그렇게 해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 공병대가 투입되기 며칠 전에 내가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등록금 면제용 수해증명서를 떼러 읍사무소에 갔더니

“全破는 등록금 전액면제이고, 半破는 반액면제인데 반파라 그러지 말고 집에 가서 어른들 오시라고 해라”하던 읍사무소 직원이 생각난다.

수해로 인해 집이 완전히 부서진 것은 전파이고, 우리 집처럼 뼈대가 튼실하여 넘어가지 않은 집은 반파라고 해서 반파라 했더니 그 직원이 어른 들 오라는 것은 즉 자기한테 뭘 좀 주면 좋게 해준다는 말임을 알 수가 있었지만 나는 한사코 반파를 고집해서 수해증명을 받아왔다.

그 직원이 한때나마 돌아가신 내 아버지 부하였음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돈 몇 푼 때문에 내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싶었던 그때 내 행동이 내 일생 혼자자랑으로 오래토록 가슴에 남아있다.

 

밤만 되면 자기가 정들여 살던 집을 일꾼을 사서 억지로 부수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큰 나무를 목도를 져서 하나 둘 엉차! 하며 기둥에 대고 쿵쿵 박으면 물먹은 초가집이 팍삭팍삭 내려앉던 그 때 사람들의 모습들 ....

그렇게 해서 전파로 만들어 돈을 더 타내려 했지만 결국은 마을 전체가 이전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로 도로아미타불이 됐으니....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수해를 입은 게 아니라 수덕을 본 셈이었다. 새집을 얻고 새로 옮긴 땅값이 그 후에 외려 몇 배나 올랐으니.....

하지만 내 할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내 고향집은 지금은 물길 속에 잠겨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혁명을 일으킨 군인 들이 아니고서는 그 당시로서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던 하천 수로변경, 直江공사를 하여 시내를 관통하는 서천 물줄기를 변두리였던 우리마을로 옮기고, 하천바닥이었던 땅에 오늘의 영주시를 만든 기초를 닦았으니.....

아! 잃어버린 내 고향마을 이여! 원망스런 수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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