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내 제수씨의 죽음을 알고 있을까
며칠 전 22일 새벽에 지난해 7월 22일의 내 '가족메일'을 읽었다. 일년 전 오늘은 내게(또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내가 어떤 일들을 30여 명의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지기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을까. 일단은 호기심을 가지고 읽으며 다시금 뭔가를 되새기고자 했다. 그리고 그 일년 전의 메일을 내 홈페이지 '가족공동체' 방에 올리는 일을 했다.
지난해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 동안 우리 가족은 제주도 여행을 했다. 태안 성당 어린이 복사단과 전례단의 '제주성지순례' 행사에 참여한 덕이었다. 당시 중3이었던 아들 녀석이 계속 복사 활동을 한 덕이기도 했다.
아내는 어린이 복사단 자모회의 일원이므로, 또 나는 광주공항을 가고 오는 차량의 운전대를 잡는 일로 그 행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과거에 미사 복사와 전례 봉사를 많이 했던 고3 딸아이는 특별히 포함된 경우였는데, 그 행사 시기가 고작 며칠 동안인 여름방학과 딱 좋게 맞물려서 행운을 얻은 셈이기도 했다. 여기다가 어린이 복사단의 일원인 초등학생 조카아이도 참여해서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 제주도 여행을 함께 했다.
어머니는 이미 5월에 신부님의 주선으로 성당 할머니들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오셨다. 지난 1999년에 처음 제주도 구경을 하신 후 6년 만에 다시 제주도를 다녀오신 어머니는 이야기 보따리가 풍성했다. 어머니는 제주도 여행이 참으로 즐겁고 흐뭇하셨던지 정말 풍성한 여행담을 들려주시면서 가족 모두의 등을 떠밀었다.
결국 어머니 혼자 집에 남게 되고, 우리 가족은 모두 6년 만에 다시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다분히 어머니의 성화 덕분이기도 했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쓴 지난해 7월 22일의 내 '가족메일'에는 주로 2박3일 동안의 제주도 여행 관련 이야기가 소상하게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편지 말미에는 나로 하여금 지난해 12월 세상을 하직한 내 가운데 제수씨를 또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제주도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번 집으로 전화하여 어머니의 건강 상태와 식사 여부를 알아보곤 했네. 앞 동에 어머니 대녀이신 송 바드리시아 아주머니가 사시고 계신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었네. 그 아주머니가 틈틈이 우리 집을 들락거리며 어머니를 심심하지 않게 해 드린 것 같네. 뒷동의 동생 부부가 3일 동안 혼자 계시는 어머니의 안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적이 섭섭한 일이네."
이 대목을 읽고 제수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동생 부부에게 섭섭한 마음이었다. 우리 부부가 없는 3일 동안 그들이 왜 한 번도 어머니를 들여다보지 않았는지…. 동생은 아예 인터넷 주소도 갖고 있지 않아서 내 가족메일을 읽을 턱이 없었지만, 오래 전부터 주요 수신인 중의 한 사람인 제수씨는 읽을 것을 예상하고(또는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쓴 말이었다.
제수씨가 당혹감을 가질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공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도 하면서 오히려 내게 더욱 섭섭한 마음을 가질 지도 몰랐다. 그런 우려를 가지면서도 나는 굳이 그런 말을 메일을 담았고, 그 메일을 종전과 같이 다수에게 전송을 했다.
그런데 제수씨는 그 날의 내 가족메일을 읽지 않았다. 메일창의 '수신확인'을 눌러보면 계속 '읽지 않음'이었다. 그 날의 그 메일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도, 그 후로도 제수씨는 계속해서 내 메일을 읽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제수씨의 이상한 태도는 내 가족메일을 읽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도 좀처럼 오지를 않고, 어쩌다 우리 집 식구들과 만나도 별 말이 없고….
갑자기 제수씨의 태도가 왜 저럴까 하고 우리 가족은 서로 의문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의 제주도 여행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먼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니만 집에 남고 우리 가족 모두 제주도엘 가면서 제수씨에게는 함께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아서 제수씨가 섭섭한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제수씨가 약국 아르바이트 근무를 할 때라, 그리고 무더운 여름철에도 계속 작업 현장 근무를 하는 동생을 생각하니 차마 제수씨에게는 제주도 여행을 함께 하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제수씨의 이상한 태도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가족 모두 의아한 마음이 컸지만, 제수씨에게 묻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언짢은 마음도 일체 내색하지 않았다. 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제수씨는 다시 종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는데, 우리 가족은 아무도 제수씨에게 지난여름의 이상했던 태도에 대해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수씨가 지난해 12월 세상을 뜬 후 '100일 탈상'을 하고 났을 때였던가, 동생으로부터 조금은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제수씨가 2년 동안 남의 집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번 돈을 알뜰히 모아 1천만원을 만들었는데, 그 돈을 남에게 빌려주었다가 그만 떼이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자신이 2년 동안 노고로 벌어 모은 1천만원을 떼이고 나서(돈을 빌린 사람이 가게문을 닫고 종적을 감추어버린 사실을 확인한 순간부터) 큰 충격 속에서 상심이 무척 큰 것 같았다는 말을 하면서 동생은 눈물을 지었다. 그런 거액을 남에게 빌려주면서 남편과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사실이 섭섭하기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사람이 더욱 가엾어진다는 말도 하면서….
제수씨가 1천만원의 거액을 떼인 때는 지난해 여름이었다고 했다. 그런 속사정이 있어서 지난해 여름 제수씨의 태도가 그처럼 이상했던 것이었다. 정말 우리로서는 아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동생의 실토를 듣고 나는 지난해 여름 이상했던 제수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22일 아침에 지난해 7월 22일의 편지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다시금 그때의 제수씨 모습과 이런저런 일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몹시 아파 와서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다시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지난해 여름 제수씨는 돈을 빌려간 사람이 종적을 감춘 것을 확인한 순간의 충격과 상심, 그리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그 사람을 쫓는 방도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안간힘을 썼을 터였다. 제수씨가 2년 동안 남의 집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벌어 모은 피 같은 돈이었다. 거액이라면 거액인 1천만원을 남에게 빌려줄 때는 중간 역할을 한 사람도 우리 가족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제수씨에게서 1천만원을 빌려가고 종적을 감춘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제수씨로 하여금 그 사람에게 1천만원을 빌려주도록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제수씨가 누군가에게 1천만원을 빌려주었다가 떼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제수씨가 남편과 상의 한마디 없이 남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인 사실을 뒤늦게 남편에게 실토하며 눈이 붓도록 울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공연한 의문도 떠올리게 된다. 내 제수씨에게서 돈을 빌려가고 종적을 감춘 사람은 지금 내 제수씨가 세상에 없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종적을 감추고 있는 그곳에서 이곳 소식을 들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는 이곳의 불행한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제수씨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까? 채권자의 사망과 부재로부터 혹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태안 읍내에서 가게를 했던 사람이라니 그의 확실한 신원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생은 제수씨에게서 그 사람에 관한 자세한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왜 그런 거액을 남에게 빌려주면서 남편과는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한 것 때문에 아내와 잠시 다툼을 하고서는, 그 일에 관해서는 서로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은 제수씨가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받았는지도 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제수씨 사망 후 유품을 처리할 때 차용증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동생은 아예 차용증 따위를 찾아볼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사정도 있고 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찾아볼 마음을 아예 갖지 않았다. 설령 차용증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누구인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그 사람을 찾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단념을 했다. 그 사람을 찾고 돈을 찾으려는 일을 시도한다면 그 일이 혹여 제수씨의 영혼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리 가족 모두 공유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그 사람이 내 제수씨에게 끼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겨주지 않기를…. 채권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내 제수씨에게서 가져간 돈을 잘 이용하여 부디 재기를 하게 되기를….
내 제수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늘 간직하고 살다가 혹 형편이 나아지면 하느님 앞에 속죄하면서 내 제수씨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기를…. 그 피 같은 1천만원을 떼인 일에서 받은 충격과 상심이 내 제수씨의 혈액순환에 이상을 가져와 '뇌혈관 기형'에 더욱 악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서….
관련 기사 - 제수씨의 선종 100일을 지내고
2006-07-25 11:17
ⓒ 2006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