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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세계 : 연, 월, 일 (1)
성서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어느 시점으로 잡았는가?
인간은 매우 일찍부터 해가 지구를 한바퀴 도는 것을 하루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하루의 시작을 어느 시점으로 잡느냐가 문제인데, 옛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해가 뜰 때와 질 때이다.
천여 년의 역사를 반영하는 구약성서에는, 하루의 시작으로 아침을 말하는 곳도 있고 저녁을 말하는 곳도 있다. 판관기에 보면,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위에게 장인이 더 묵었다 가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이제 날이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하룻밤 더 묵으면서 즐겁게 지내고, 내일 아침 일어나서 길을 떠나 자네 집으로 가게나”(19,9. 그리고 1사무 19,11이나 28,19 같은 곳도 참조).
그리고 해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합하여 만 하루로 말하는데, 먼저 한자말의 ‘주야(晝夜)’처럼 “낮과 밤”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말에서는 ‘밤낮’이라는 말이 워낙 고정되어 있어서 이런 식으로 옮기기도 한다(예레 33,20; 신명 28,66; 1사무 30,12 등). 아무튼 이러한 정황은 성서의 사람들이 아침을 하루의 시작으로 계산하였음을 드러낸다.
이와 반대로, 느헤미야 13장 19절에는 해가 지기 전에 예루살렘 성문들을 닫아 상인들이 짐을 들여가면서 안식일을 훼손시키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모세 오경 가운데에서 가장 후대에 편집된 부분에 속하는 레위기 23장 32절에는, “저녁부터 (다음) 저녁까지”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 나온다. 그리고 유배 이후의 본문들에는 우리말의 ‘밤낮’처럼 밤이 낮 앞에 오는 표현을 볼 수 있다(유딧 11,17; 에스 4,16 등). 이러한 사실은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성서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인들처럼 아침을 하루의 시작으로 계산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바빌로니아 제국의 세력권에 들면서 (아마도 기원전 6세기 말부터)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는 법이 도입된다. 이 제도가 신약성서 시대와 후대의 유다교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하루는 어떻게 나누었는가?
이집트 사람들은 예로부터 낮과 밤을 각각 열두 시간씩 나누었다. 물론 오늘날처럼 정확한 시계가 없었으므로 위도(緯度)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하루를 각각 두 시간에 해당하는 열두 단위로, 이 열둘은 다시 각각 사 분에 해당하는 서른 개의 소단위로 나누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렇게 세분된 시간이 쓰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예전의 우리 나라와 별다름 없이 자연 현상에 따라 하루를 나누었다. 곧 동이 틀 무렵(창세 19,15; 여호 6,15), 아침(탈출 18,13), 정오(창세 43,25), 무더운 한낮(2사무 4,5), 저녁 산들바람이 불 때(창세 3,8), 해질 무렵(창세 15,12), 저녁때(19,1) 등이다. 때로는 저녁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성전에서 거행되는 전례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1열왕 18,29; 다니 9,21). 그런데 열왕기 하권 20장 9`-11절(= 이사 38,7-8)을 보면, 유다 왕궁에서 일종의 해시계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궁궐이나 주요 관청에서는 좀더 세분된 시간을 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미 기원전 제2천년기부터 해시계와 물시계가 쓰였다.
신약성서에서는 현재의 아침 6시부터 시작하여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는 로마식 시간 계산법도 사용된다. 예수님께서는 “제6시” 곧 낮 12시 이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9시” 곧 오후 3시쯤에 돌아가신다(마태 27,45-46과 병행구). 이 로마식 시간 구분이 한자식으로 표현된 ‘육시경(六時經)’, ‘구시경’ 등의 이름으로 지금도 성무일도에서 쓰인다.
주민의 안녕을 특별히 돌보아야 하는 밤의 경계 근무 시간은 많은 민족이 따로 책정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하룻밤을 다섯 경(更)으로 나누었는데, 성서의 사람들은 본디 세 경으로 계산하였다(탈출 14,24; 판관 7,19; 1사무 11,11). 그러다가 예수님 시대에는 옛날 이집트에서처럼 네 경으로 나누는 로마식을 따르게 된다(마르 6,48과 병행구).
‘주(週)’라는 제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히브리 말에서 ‘주’는 ‘샤부아’라 하고 ‘일곱’은 ‘쉐바’라 한다. 성서에서는 해와 달과 관련된 날과 달 외에 일곱 날을 한 주기로 삼는 주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사실 이 제도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종교나 신앙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사람의 일상 생활을 규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달과 해가 바뀌는 것과 무관하게 일곱 날을 시간의 한 단위로 정하고 마지막 날을 쉰다는 주(週) 제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에서 생겨난 것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컨대 달이 변하는 모양이라든가 장이 서는 주기라든가 ‘전체, 총체, 완전’의 의미를 지닌 일곱이라는 수의 상징성에서 일곱 날을 채택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무튼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와 민족이 생기기 전부터 안식일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창세기 저자는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주와 안식일 제도까지 제정하셨다고 말한다(창세 2,2-3). 안식일이 주의 핵심임은 안식일을 뜻하는 ‘샵바트’가 후대에는 가끔 ‘주, 주간, 일주일’을 뜻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레위 23,15; 이사 66,23; 루가 18,12). 요일은 ‘이렛날’이나 ‘제칠일’ 또는 ‘첫날’처럼 순서수로 불렀다(탈출 20,10; 31,15; 마르 16,9). 오늘날의 요일 이름은 후대의 서양에서 유래한다.
<임승필 요셉 신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경향잡지, 200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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