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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깨달음
나는 천주교를 알기 위해서 성당에 처음 오시는 예비교우들을 위한 교리시간에 그리스도교를 먼저 말하기 보다 한국민의 생활과 정신 그리고 피 속에 체화되어있는 불교와 유교와 도교 그리고 무속신앙을 먼저 알리고 좋은 점을 발견하여 먼저 전한다. 오천년의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우리 한국 민족의 피에 흐르는 종교의 피는 다섯 가지인데 무속신앙을 바탕으로하여 불교 유교, 도교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피가 서로 섞여서 돌고 있다.
성당에서 불교에 대해 듣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신기하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치 천주교에서 불교가 좋은 종교라는 말이 어색해서인지 아니면 불교를 칭찬하는 천주교가 스케일이 큰 것 같아서인지 아무튼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밝았다.
부처님은 성이 고타마 이름은 뜻을 성취할 사람이라는 싯다르타이다. 붓다는 진리를 깨친 자라는 뜻으로 부처님께서 깨달은 후에 얻은 이름인데 그것은 마치 천주교에서 교리 공부를 마치고 세례받을 때 얻는 새 이름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깨달으셨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고통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기는 고통스럽게 울면서 태어나고, 또 살아가면서 사람은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는데, 이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깨달으셨다.
우리 인간은 세상에서 이렇게 생리적으로 고통을 살아가는데 이보다 어떤 점에서는 마음의 고통을 더 당하고 살아간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옛말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 같이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고통이 그렇게 클 수는 없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인간에게 쓴 고통을 준다. 남북이산 가족사이의 이별의 고통, 어려서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부모 자식간의 생이별의 고통,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 이혼, 사별 우리 인간 사회에는 참으로 많은 이별로 고통을 당한다. 이 모든 고통이 한이 된다.
우리는 구하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청년이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어보려고 정착하였다. 그 청년은 열심히 농사를 짓기 위해서 공부하고 준비하였지만 갑작스런 장마로 추수 때 많은 곡식을 얻지 못하여 마음의 고통을 적지 않게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세상살이에서 얻지 못하는 고통을 많이 당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대학입시에서 실패하고, 회사에서 조기퇴직, 명예퇴직 이제는 우리나라 전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오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오관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고통스럽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으며, 느끼려해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 그러나 우리 인간은 마음의 오관이 무디어질 때 참으로 고통을 당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우리 인간은 괴로운가? 욕심 때문인가? 애착인가? 고집인가? 집착인가? 우리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을 잘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 모든 고통을 제거하고 없앤 미르바나, 즉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을 해야한다고 외친다. 다른 말로 욕심을 빼고 자기이익만을 위한 이기심을 빼버려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나만을 생각하는 집착의 거품을 빼야 한다. 세상은 나만을 위해 욕심을 부리고, 집착할 때 자신도 고통을 당하고 이웃에게도 고통을 줄 수 있다. 나의 욕심을 줄이는 일이 나라 전체를 위한 일이 된다. 이제 나라는 국민을 국민은 나라를 위해 고통을 벗어나는 열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단순히 그 때 그 때마다 생기는 고통을 제거하기에는 힘들고 그것이 또다시 고통이 될 것이다. 이제 지속적으로 열반을 살아가기 위해서 바로 도(道)를 닦아야 한다.
첫째, 생명을 빼앗는 데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살생만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며, 넓은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고 살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땅을 살리고 물을 살리고 공기를 살리고, 농약을 뿌리지 말고 땅과 먹거리를 살리려야 한다.
둘째,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해야 한다. 도둑질은 반드시 값비싼 물건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는 정신적인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왔다. 이 말은 요즘 벤처 산업이라는 것과 통한다. 그리고 이제 주어진 것을 잘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고통과 돈을 반드시 지불해야하는 시대가 왔다. 교통질서를 안 지키면 우리가 그 대가를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교통 위반 스티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번잡한 그곳에 경찰관을 배치해야하므로 그를 위한 봉급은 당연히 세금을 내는 우리가 지급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세째, 감각적인 그릇된 행동에서부터 벗어난다. 이 말은 요즘 우리 나라의 정신문화에 대한 반성을 늘 하게 한다. 전화방, 비디오방... 우리에게는 사랑방이 필요하다.
네째, 그릇된 언설을 하지 않는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말을 잘 못한다.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은 데 항상 마음에도 없는 말이 입밖에 나와서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화나게 한다. 아이들의 말투도 부모에게서 닮는다. 우리는 한 가지 한 가지 사건이나 사실에 비춰서 말하기보다는 한 번 한일도 뭉뚱그려서 항상 그런 것처럼 말한다. 한 번 어머니 심부름을 한 아이에게 사람들은 ’너 착한 아이구나’한다. 어떤 이유로 한 번 실수하여 잘못한 아이에게는 너는 항상 이렇게 엉망이냐 하며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의 행동만을 있는 그대로 실천한 그대로만 솔직하게 말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다섯 째, 마음을 흐리게 하는 도취 물에서 벗어나라. 마음을 흐리게 하는 도취 물이기에 음주일 수도 마약일 수도, 노름일 수도, 또한 너무 무절제한 스포츠도 마음을 흐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녹야원에서 만난 다섯 제자에게 하신 첫 설법을 풀어서 모아 본 것이다. 해석상의 차이는 있지만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네 가지 거룩한 이치는 이 세상이 모두 무상하다는 것(苦), 고(苦)의 원인은 집착에 있는데 모든 것이 그렇게 연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集)이고, 그 연기를 끊을 수 있다는 것(滅)이며, 그리고 그 길(道)이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열려있는 길은 여덟 가지가 있다.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직업, 올바른 수행, 올바른 마음가짐, 올바른 명상, 바르게 보고, 바른 결심을 하여 그대로 나아가는 마음의 길이다.
나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가 지금도 여전히 적용이 되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마음을 다스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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