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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한 일본 큐슈 여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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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8-09 ㅣ No.103118

 

              가족과 함께 한 일본 큐슈 여행 ②



 


▲ 뉴 카멜리아호의 레스토랑에서 여행사별로 교대식으로 식사했는데, 우리 가족은 모두 별도의 원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 지요하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뉴 카멜리아'호에 승선한 우리 가족은 '11인실'을 선택했다. 11인실에 12명이 들어갔으니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안온함과 오붓함 속에서 모두 즐거운 기분이었다.

여행사 최금환 사장이 우리 가족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풀었다. 그는 내 어머니가 누구보다도 먼저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로비로 나가 편히 앉아 계실 수 있도록 매번 신경을 써주었고, 배 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부터 우리 가족 모두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게 했다.

우리는 배 안에서 목욕도 하고, 출항할 때 갑판에 올라 야경도 즐겼다. 나와 아들 녀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선실에서 자는 것이 난생 처음이었다. 가족들 중 특히, 비행기보다 늦은 배 경험을 즐긴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7월 31일 아침 후쿠오카항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도 배 안에서 한 다음 일본 땅에 내린 우리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버스에 올라 관광을 시작했다. 최 사장은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다른 직원을 내보내지만 학생들이나 문화원의 문화탐방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가이드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이유부터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는 참으로 해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은 보통의 가이드가 아닌 '가이사'라고 했다. 그의 풍부한 지식과 능숙한 언변, 해학은 우리 일행을 매우 즐겁게 했다. 내 어머니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잠 한숨 자지 않고 그의 얘기에 열중할 정도였다. '가이사'의 얘기를 재미있게 들은 것만으로도 본전을 뺀 것 같다는 말도 하시고….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즉 어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일본 큐슈 지역을 3일 동안 돌아다니며 최 사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 한국 고대문화의 유물이 발견된 '후나야마 고분'. 처음에는 일본 고대문화 유물인 줄 알고 일본 학계가 흥분했고, 일본인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 지요하

첫날엔 태재부로 이동하여 한국 고대문화의 유물이 발견된 '후나야마 고분'을 관람했다. 이어 구마모토로 이동,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10만 명의 조선인 포로를 동원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 '구마모토성'을 관람했다.

구마모토성을 오르며 아이들에게 임진왜란의 참상을 얘기했다. 아이들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임진왜란의 전모를 거의 알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선조놈'이라는 용어를 썼고, 10만 명의 조선인 포로들이 구마모토성 공사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혀를 차기도 했다. 포로들 중 2만 명이 유럽에 노예로 팔려갔고 그 때문에 유럽의 노예값이 폭락했다는 최 사장의 이야기를 입에 담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 아이들은 구마모토성을 보면서 임진왜란과 '불멸의 이순신' 얘기도 많이 했다.
ⓒ 지요하

오후에는 세계 최대의 활화산인 '아소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아소산의 거대한 분화구에서 솟아나는 유황 연기를 볼 때 야릇한 공포를 느꼈다. 아무 때나 분화구가 있는 곳까지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딸아이가 고2 시절에 수학여행을 왔을 때는 화산 폭발 위험 때문에 입산을 통제해 아소산을 오르지 못했다니, 이번엔 운이 좋은 셈이었다. 버스가 있는 중턱까지 15분 정도 걸어 내려올 때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땅속에서 계속 연기가 솟고 끓는 물이 분출하는 '고마츠 지옥(地獄)'을 견학한 다음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 아소산의 유황 연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화산 분화구
ⓒ 지요하


▲ 땅속에서 계속적으로 연기가 솟고 끓는 물이 분출하는 '고마츠 지옥'
ⓒ 지요하

이튿날, 벳부(別府)로 이동해 '히가시시야' 폭포를 구경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아무 불편 없이 경쾌하게 걸으셔서 더 기분이 좋았다. 명반(유황에 의한 백반) 채취지인 '유노하나'와 '바다지옥(海地獄'을 관광했다. 바다지옥에서는 일행 모두 유황 온천물로 족욕(足浴)을 즐기기도 했다.

오후에는 '다카사키 원숭이공원'에 가서 '원숭이 세상'을 견학했다. 원숭이의 생태, 원숭이 왕국의 건설과 유지, 원숭이 왕국 간 전쟁 등 공원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설명 들으며 보니 놀랍기도 하고 더욱 재미있었다.


▲ '히가시시야' 폭포 앞에 선 친자매나 다름없는 사촌자매
ⓒ 지요하


▲ '다카사키 원숭이공원'에서 사는 'C왕국' 원숭이들의 저녁 식사 장면. '일인자' 원숭이는 별도의 자리에서 식사한다.
ⓒ 지요하

쇼핑 순서도 있었다. 한국 돈도 쓸 수 있고, 카드 사용도 할 수 있는 상점에서 다양한 일본 물품을 구경했다. 쇼핑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우리 돈 30만원을 일본 돈으로 바꾸어갔던 나는 관광을 시작한 날 저녁에 가족 모두에게 돈을 고루 나누어주었다. 대학생 딸아이를 포함하여 어른들에게는 3천엔씩, 아이들에게는 2천엔씩 주었다.

1000엔이면 우리 돈으로 만원이 넘는 금액이니 그 정도면 아이들에게 충분히 용돈이 될 것 같았다. 최대한 아껴 쓰고 남은 돈은 반납하라고 했는데, 반납하는 녀석은 한 놈도 없었다. 종래에는 모두 빈털터리가 되어 음료수 값으로 내가 별도 지출을 해야 했는데, 그것도 가족 여행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었다.

마지막 날엔 오전에 다시 태재부로 이동하여 '천만궁'을 관람했다. 천만궁에서는 사당 앞에 드리워진 '금줄' 등 우리 문화의 유입 상태를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학문의 신', '지성(至誠)의 신'을 모신 '성묘'로 연간 700만 명의 참배객이 줄을 이을 정도로 존숭받고 있다는 '태재부천만궁' 입구
ⓒ 지요하

큐슈 여행에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은 아소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야마나미(山列) 통나무 콘도'에서 이틀 동안 잔 일일 것 같다. 아소산의 분화구에서 솟아나는 화산 연기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 표고(標高) 1080미터 지점에 여덟 채의 콘도가 나란히 있었다.

여행사가 일본 정부에서 관리권을 사서 직접 운영하는 콘도라고 했다. 그 콘도를 이용함으로써 여행사는 저렴한 가격으로 관광 상품을 제공할 수 있으며 연간 6천 명 정도가 그 콘도를 이용한다고 했다.


▲ 아소산국립공원 내 표고(標高) 1080미터 지점에 있는 '야마나미(山列) 통나무 콘도'. 연간 6천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이곳을 이용한다고 한다.
ⓒ 지요하

여덟 채의 콘도 중 네 채를 우리 일행이 이용했다. 그 중 맨 끝에 있는 콘도가 우리 가족 차지였다. 하루 관광을 마치고 콘도로 들어가니 1층 거실 식탁에 기본적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별채 주방에 가서 국을 가져와 저녁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도 그런 식으로 했다.

콘도는 우리 가족 12명이 이용하기 적당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2층에서 잤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1층 방에서, 우리 부부는 1층 거실에서 잤는데, 가족 모두 한 집에 있으니 더욱 오붓한 느낌이었다. 아이들도 일찍 자지 않았다. 딸아이가 '가톨릭동아리' 활동에서 배워온 오락거리들이 많아서, 아이들은 밤 1시까지 재미있게 놀곤 했다.

네 성씨가 섞인 여덟 명의 '범(範)가족'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자며 여행을 즐기는 것도 흔치 않을 터였다.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흐뭇한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1층 거실 식탁 앞에 앉아 누이동생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행복감을 맛보았다. 가족 사이에 너무도 분명한 '빈자리'가 안겨주는 슬픔과 아쉬움 속에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소산 국립공원을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산책한 일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아소산국립공원 산책길에서 볼 수 있는 풍경. 화산 분화구에서 치솟는 연기도 볼 수 있다. 산책길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일본의 모든 길이 그러했다.
ⓒ 지요하

어머니께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우리 가족과 함께 한 태안신도신협산악회원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내 어머니를 보며 감탄했다.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몸이 불편하여 거동을 잘 하지 못하는 자기 친정어머니 얘기를 하며 질투심이 생긴다고 하신 아주머니도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 하나는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 모시고 여행 한 번 해보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된다고 말했다.

어머니 덕분에 우리 부부도 여러 사람에게서 많이 칭찬을 받은 셈이다. 그다지 효자도 아닌 내가 효자 소리를 다 들었으니 어머니께 더욱 감사할밖에. 이래저래 즐거운 가족 여행이었다.


2006-08-09 12:45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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