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6.13.“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스크랩 인쇄

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21-06-12 ㅣ No.147532

   마르 4, 26-34(연중 11주 주일)

 

오늘은 연중 11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우리에게 선사된 하느님 나라입니다.

<1독서>는 유배지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새로운 나라의 희망을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고, 그 나무가 무성하게 하는 이가 당신 주님이심을 알게 하리라.”(에제 17,22-24 참조)고 말합니다. 이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비유로 말씀하신 ‘겨자씨’를 떠올려줍니다.

<2독서>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믿음으로 확신에 차,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어떻게 건설되는 걸까요?

 

오늘 <복음>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이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7)

 

그렇습니다. 먼저, ‘씨’는 우리에게 선사됩니다. 선물로 주어집니다. 주는 분에 의해 건네 져 옵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혹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건네 져 나라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 나라의 이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우리들 가운데 들어와 있고, 스스로 줄기를 뻗고 싹을 틔우며, 이삭을 맺고 낟알을 영근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곧 눈이 맑아져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체험하는 일입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상호 침투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왔지만,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곧 체험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들어오는나라요, 동시에 들어가는나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성장하고 자라며, 우리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이삭을 맺고 낱알을 영글어 갑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하느님 나라가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막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위대한 은총이 우리 안에서 계속 자라도록 응답해야 할 일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31)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거창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와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작은 모습으로 와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미 우리 안에 심어진 씨앗입니다.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됩니다. 마치 십자나무처럼, 모든 인류를 끌어안은 큰 나무가 됩니다. 십자나무에 인간이 거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듯, 그 그늘에 짐 진 이들을 불러 안식을 주듯, 자라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작은이의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를 품고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 작은이로 오실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작아져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작은이로 계신 그 씨앗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작은 ‘겨자씨’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비록 작은 ‘겨자씨’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속에서 썩기만 하면 말입니다. ‘씨가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르게’ 그렇게 썩는다면 말입니다. 그들 속으로 들어갈 만큼, 작아지고 낮아지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 나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그 나라를 체험하게 되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나라의 이 놀라운 신비에 순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31)

 

주님!

당신은 겨자씨처럼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길인 까닭입니다.

형제들 앞에 작아지게 하소서!

십자나무에 인류의 거처를 마련하듯, 형제들의 거처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767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