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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하느님과 함께(사막의 영성)1 출에굽의 사막ㅡ세상의 부재/에디트 슈느베에르 *김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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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6-08-11 ㅣ No.103194

홀로 하느님과 함께(사막의 영성) /에디트 슈느베에르 *김좌동 옮김

 

 

1, 출에굽의 사막 ㅡ 세상의 부재

 

사막에서 당신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 그분의 자에는 영원하시니 (시편136,16)

 

사막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늘 엄숙합니다. 그대는 세속을 떠나 고독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가슴을 찢는듣한 괴로움과 단절과 포기로 시작됩니다.

 

눈물 없이는 가장소중히 여겼던 것들과의 관계를 단호하게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떠나 오랫동안 고통을 격은 히브리 백성들 한태도 이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탈출14,11; 민수 14,2)

 

게다가 그들은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그대한테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창세 12,1 - 4)

 

 

 

아브라함이 주저하거나 후회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모든것을 던져 버리십시오.

 

너무 깊이 생각하여 망설인다면 언젠가 감수해야 할 희생만 늘어날 뿐,

결코 은수자가 될 수도 없고 끈질기게 밀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그대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분은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보쉬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해방시키지 않고 떠나게 하신다.

 

그분은 복종시키지 않고 단절시킨다.

 

그분은 깨뜨리고 파괴하신다.(La Saint Vierge[동정성모]성모 승천강론)

 

 

훗날 그대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19,4)

 

십자가의 무게를 해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랑의 부족에서 옵니다.

 

무능합을 문제삼지 말고, 그대를 사랑으로 감싸시는 분을 신뢰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레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호세2,16)

 

 

사막은 매혹적인 동시에 공포심을 자아냅니다.

 

사막은 철저한 고독의 땅이며, 홀로 마주 대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낌니다.

 

사실 은수자란 외따로 떨어져 사는 사람 입니다. 순수한 사막에서는 삶의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빙산처럼 사해(沙海)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

곧 창조주의 손길에서 나와 태초에 물 위를 감돌았던 하느님의 기운이 아직도 머물러 있는듯한 곳입니다.(창세1,2)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지형적인 순수성에 이끌립니다.

 

사막은 순수하고 순결한 곳입니다.

 

인적이 없는 이곳에는 죄악도 없으며 세속적인 소란스러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철저한 고독을 느끼며 그 엄숙함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막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미다.

 

 

사막과 구렁의 땅에서

 

가뭄과 암흑의 땅에서

 

어떤 인간도 지나다니지 않고

 

어떤 사람도 살지 않는 땅에서 (예레 2,6)

 

 

세상과 단절되고 자기 자신 안에 갖힌 그대는 인간적 교류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될 것이고, 사막은 그대에게 지도히 공허하고 터무니없어 보일 것입니다.

 

그대는 관광을 위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며 되돌아 가리라는 희망이 없는 유목민처럼 머물게 됩니다.

 

그대에게 설사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듯 할지라도 성 베네딕토가 ''''사막의 투쟁''''이라 일컬은 그곳에, 그대는 세속의 도구를 가져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는 어떤것도 말입니다.

 

 

사막은 허약한 인간은 받아 들이지 않는다. 사막은 인간을 짓밟는다.

수고와 투쟁을 바라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밀라드 아이사ㅡ예수의 작은 형제회,[Les Oeuvres Spirituelles du pere de Foucauld]드 푸코 신부의 영적 저서)

 

 

사실입니다.이말은 또한 우리를 숙고하게 만듭니다.그대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꿋꿋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겸허한 기도로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그들 자신의 손과 팔만으로써 육체와 생각의 악습을 거슬러 싸우기에 충분한 이들 가운데 하나"(성 베네딕토-수도규칙 1장)가 되십시오.

삶에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고 더많은 결실을 지속시키고

더 많은 결실을 얻기 위해 휴식을 취하듯이,

고독을 사랑한다면 그 고독은 생동감을 주고

그대의 활동에 따른 결과를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언뜻 보기에 쓸데없는 일처럼 생각되겠지만, 가능한 한 갑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입니다.

이에 동의한다면 그대는 보상을 후하게 받게 됩니다.

그대의 사막을 주변을 지키십시오.

출팜물이나 서신, 사람들으 방문을 허용한다면 무엇때문에 울타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인간의 부재가 사막의 본질적 특징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막은 어떤제한된장소가 아니라 영혼의 상태 입니다.

홀로 공허한 그곳에서 고독한 가운데 있는 그대는 처음으로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 닙니다.

광야에는 바람의 신음소리만 있을 뿐입니다. 아랍의 속담에 '사막이 탄식하며 우는것은 초원이 되고 싶어서'
라는 말처럼 메마르고 건조한 땅에있는 그대도 주님께 간청하여 그곳에 이슬이 내리게 해야 합니다.

그대는 성령의 숨소리만 들어야 합니다.

이 침묵을 회상이나 과거의 모습, 세속적 호기심으로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사회생활의 대용물처럼 말입니다.

사막은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가혹한 길로 나아가게 하며 가차없이 죽음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곳은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모든 걸 버리게 되며, 취미생활은 관상의 효과를 잃어 버리게 합니다.

은둔지의 투박한 단조로움이 그대를 지치게 하고 세속적 유혹이 그대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대는 뿌리뽑힌 식물처럼 극심한 갈증으로 초최해질 것입니다.

더욱 힘든것은, 그대가 바라는 대상이 사라지고 하느님이 그대를 멀리하심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사막은 목마른 곳입니다.

그대는 하갈이나(창세21장 참조), 호렙산으로 향하는 엘리야(1열왕19장 참조)처럼 죽음을 생각 할 것입니다.

그러할지라도 발길을 돌리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그대에게 양식을 주십니다.

이렇게 홀로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엄격한 수행에 열중해야만 깊은 침묵에 이를 수 있습니다.

끈기있게 노력하여 침묵의 단순성에 이르러 침묵과 하나가 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 지체치 않고 오실것입니다.

그분은 침묵의 순간에, 호렙의 엘리야에게 오셔서 미풍같은 속삭임으로 말씀하셧습니다.(1열왕19,12)

주님은 인간의 영혼을 관상으로 이끄실 때 당신의 모든 능력으로 그를 침묵하게 하시고
오로지 당신 한테만 의 탁하게 하십니다.

더이상 자신한테 몰두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더이상 불평하지 않을 때,
모든 근심에 귀기울이지 않을때,
사랑이외의 모든 갈망을 거부할 때,
그대의 처지에 무심해 질때,
그대자신을 좋게도 나쁘게도 생각하지 않을때,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해 하지 않으때 ,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모든 것에 시선을 두지 않을 때 그대는 침묵의 하느님께 스며듭니다.

하느님은 그대영혼의 성소에 머물며 그대를 초대 하십니다.그리하여 주님이 모세에게 이르듯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환시나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민수12,7-8)

십자가의 성(聖) 요한은 사막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성부께서 한 말씀(Parole) 하셨다. 그 말씀이 성자시다. 성부께서는 영원한 침묵중에 말씀하신다.
영혼이 말씀을 듣는것도 침묵 중에서다.(십자가의 성요한[잠언]284)

때때로 그대안에 말씀이 들려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같은 숭고한 속삭임이 바로 은수 생활입니다.

성부 이외에는 그 누구도, 책이나 신학자도 그것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요한 6,44)

이 영원한 말씀이 양식입니다.


계속 . . . .

(다음은 '세례자 요한의 사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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