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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계 학교 고등학생의 일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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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환 [korpeter] 쪽지 캡슐

2006-08-25 ㅣ No.103649

** 얼마 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 한 가톨릭계 학교 고등학생의 이야기이다.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46호에도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인용한 누리집은 "한겨레 필진 네트워크" http://wnetwork.hani.co.kr/seed/이다.

 

다음은 글의 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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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인시위 나오기까지 그리고 징계위원회 그 후

 

  학교와 첫 마찰은 모금을 강제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이 일을 시작으로 시작된 학교와의 마찰은 얼마 후 있었던 집단부정행위 무마사건으로 이어졌고, 저는 자연히 학교와 더 대립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예전엔 보지 못했던 학교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명예라는 이유로 사실을 덮어버리고 끝내려는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깨끗함을 강조하던 학교에서 재정의 깨끗함은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그 깨끗함 속에 사람은 온데간데없었으니까요.

 

  시험부정행위 무마사건. 저는 그 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제가 일인시위를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생겼던 그 일. 시험지를 잘못 가져온 감독교사의 실수로 집단부정행위가 일어났고, 감독교사는 저에게 입막음을 하였죠. 저는 그 것을 학교게시판을 통해 폭로했고, 학교게시판 담당자인 정보부장은 저에게 이 사실을 함구할 것을 종용했죠. 하지만 전 그 사실을 끝까지 폭로했어요. 학교에선 재시험으로 마무리했죠. 집단부정행위 용의자들 중에 심화반이 많아서 덮으려 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그 때 뿐이었어요. 그걸로 끝인 줄 알았죠. 그리곤 2학년때 두발제한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했어요. 하지만 학교에선 그런 목소리들을 모조리 깔아뭉갰고, 저는 침묵했죠.

 

  그러고 나서 3학년 담임이 발표되던 날. 제 담임은 시험부정행위를 함구하라고 했던 정보부장 이었어요. 그리고 나선 뻔하죠. 시작부터 본보기로 발로 걷어차이고 시작했어요. 곧이어 이어졌던 5시간가량의 감금. 저항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제 자신이 모순으로 느껴지다가 죽기 직전까지 다가갔고, 깨달았죠. ‘당하고 있을 순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내려고 준비했지만, 서류양식이 너무 복잡했어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학생부장이 두발단속을 돌며 이렇게 말했죠.

“이번에 걸린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군대식 제식훈련을 시키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참으면 제식훈련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억압의 시작인 월요일 0교시에 일인시위를 했던 것이었죠. 두발제한의 완전폐지, 체벌/폭언 금지, 0교시 금지, 강제보충/야자 금지, 사회 과학책 소지 금지 폐지, 한겨레21 구독금지 폐지, 말할 권리 보장,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학생회장 성적제한 폐지 등을 들고 나왔어요. 학교에선 난리가 났고, 교감 학생부장 등에게 불려 다니며 하루를 보냈죠.

 

  하지만 교장은 나오지 않았어요. 다들 학교의 명예를 걱정하더군요. 학생의 인권은 그들에겐 학교의 명예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가치였어요.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전교조 선생님들조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계셨겠지만, 제가 만났던 전교조 선생님들은 그러했어요. ‘넌 학교의 배신자다. 집에서 일어난 일을 동네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배신자가 할 일이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거나 ‘넌 치료받아야 할 피해망상에 빠져있어’ 등의 말을 하기도 하고, ‘네가 뭔데 체벌을 반대하냐?’ 등의 이야기도 하셨죠. 다들 평소에는 학생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로 보이던 분들이에요. 그 이후로 사람을 믿기 힘들어졌지요. 그리고 그 분노를 글로 털어두었어요.

 

  한겨레 필진네트워크에 썼던 전교조에게 고함은 그 때 구상했던 것에 5.14때의 일로 살을 붙여서 썼던 글이죠. 그 글의 주제는 ‘이제라도 제발 같이합시다.’ 이었지만, 글쎄요. 그 글을 읽었던 동성고 전교조분들은 표현에만 집착하셨어요. 제가 말하려는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그저 ‘표현이 버릇없다.’가 감상의 전부였죠. 저에게 상처를 주었던 말들에 대한 사과 같은 건 듣지도 못했어요. 그 분들 중에는 저를 무척 싫어해서 저의 징계에 찬성하시는 분들도 꽤 되는 모양이에요. 결국 전교조쪽에선 서울지부에서만 징계반대 성명을 내는 것으로 끝이 났지요.

 

  그 이후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어요. 징계위원회에서 학생이 변론할 기회가 없다는 점. 이걸 보고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죠. 인혁당 재판. 인정할 수 없었어요. 그런 징계위에 참석하면 학교는 ‘이거 봐라 학생에게 변론권 줬다.’ 하고는 징계를 내려버리겠죠. 학교는 제도도 바꾸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저를 끌고가려다가 제 손목까지 삐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이에 대한 사과도 아직까지 듣지 못했죠.

 

  학교는 결국 구색맞추기식 징계위원회를 열고 저에게 징계를 선고했어요. ‘특별교육 이수 10일’ 예전 표현으로 하면 정학. 퇴학 이전단계의 징계래요. 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의 징계위원회 결정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징계사유였죠. 두발단속 불이행, 징계거부,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불응. 맨 처음 징계위가 열릴 때에는 두 가지가 더 들어있었어요. ‘허락받지 않은 자기주장’ ‘선동’ 잘만 하면 선동가로 불렸을 수도 있었는데 아쉬웠죠.

 

  어쨌든, 두발단속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불응했고, 그 이유가 부당한 징계를 거부했으며, 교사의 정당하지 못한 지도에 대해서 항의했습니다. 제가 한 건 그 뿐이었죠. 하지만 학교에선 그걸 ‘정신이상’으로 판정했어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기에 이의신청을 해두었더니 2학기로 넘긴답니다. 아마도 이 것이 잊혀지길 바라는 모양이겠지요.

 

  잊혀질까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일인시위를 하면서 많은 걸 느꼈죠.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는 뭔가 일이 터졌을 때 갈린다는 걸 배우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한명이 나서서 뭔가 한다고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세상을 바꾸는 건 다수고,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알리고, 같이 할 사람들을 찾는 일이죠. 저는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비록 학교에서 저를 고립시키기 위해 제 주변사람들을 괴롭히고 있긴 하지만, 학교에 모든 것을 빼앗겨 학교에 부당함을 보게 된 학생들이 있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에요.

 

  아마 학교에서 잊게 만들려고 해도, 학생들은 기억할거에요. 자신에게서 인간성을 빼앗아 간 것이 누구였는지를. 학교는 자신들의 잘못이 이렇게 칼이 되어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있죠. 저에게 ‘너 배후가 어디야’ 라고 호통 치는 꼴이란……. 저에게 배후가 있다면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인간성마저 빼앗기며 아무 말 못해야하는 학생들의 원한이며, 그런 상황 속에서 같이 숨죽이고 있던 저의 원한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자본주의를 굴리기 위해 따끈한 임금노예를 만들기 위해, 노예화 과정들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키는 학교를 뜯어고치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 학생회의 힘도, 교사의 힘도 아니라 학교 내 피억압 세력인 일반 학생들의 힘으로 이뤄지고 이 힘이야말로 학교의 모든 모순을 배후에서 조장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깰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선생님들에 대해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에요. 그저 함께 할 수 있다면 함께 할 뿐. 하지만 ‘학생들이 싸우는 데에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고 싸워야 한다.’라는 것은 비웃고 싶어요. 선생님들도 싸울 땐 학생들의 허락을 맡고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자신이 살고 있는 처지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나와 싸우는 것이고, 얼마든지 같이 싸울 순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들끼리의 관계로 인해서, 학교와의 관계로 인해서, 학생들의 고통이 저 뒤쪽으로 밀려나야 한다면 저는 그 것이 스탈린주의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고 싶네요.

 

  제가 아는 역사에서 혁명이 가장 불타올랐던 시기는 부조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싸울 때였고, 혁명이 몰락해 추악한 반혁명과 다를 바 없던 시기는 부조리와 타협하는 때였어요. 제가 나선 건 단지 제가 부조리에 맞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위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제 명성을 위한 것도 아니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예전엔 타협했지만, 지금과 앞으로는 타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타협했을 때 학교는 학생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짓밟았으니까요.

 

  이 글을 볼 수 있는 학생 여러분. 자신의 부조리에 대해서 싸우는 게 가장 중요해요.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저항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확실한 건 사소한 것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선생님들과 예비 선생님들께선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당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학생이 부조리에 맞서 일어서면 어떻게 할 건가요?’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물론, 이 부조리엔 재단의 거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이 일상적으로 행할 수 있는 부조리도 포함됩니다.

제가 돌렸던 전단지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 지을게요.

 

  권리를 되찾을 기회가 찾아온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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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된다면, 내 글을 읽었던 사람들이 사소한 표현들에 신경쓰지 않고 내가 쓰려고 했던 이유를 알아주기를, 그리고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민들레에서 글을 읽었던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지금은 그저 그렇다.

내 생각의 한계 때문에 저기에 적진 못했지만, 굴레에 묶여있지 않은 탈학교 청소년들이야말로 모순으로 가득 찬 학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학교에선 벗어났지만 여전히 사회의 거대한 학교라는 굴레의 영향을 받기에 탈학교 청소년들 또한 학교에 격렬하게 맞설 수 있는 주체 중 하나이다.

잊지 말자.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살게 만드는 체제는 '소수 엘리트'의 힘도, '직접적 관련자'만의 힘도 아닌 억압받는 모든 계층의 단결로 부수어야 한다.   (이상 끝)

                                                            http://wnetwork.hani.co.kr/seed/   한겨레 필진 네트워크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가톨릭계 학교 교육 현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옮겼습니다.

대부분의 가톨릭계 학교가 이성과 신앙, 사랑을 추구하는 이념을 가지지만, 막상 '입시'라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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