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대문구 청량리역 근처에는 유독 옛날식 다방이 많다.
커피 한잔에 1천 5백 원, 거기다 따끈한 삶은 계란까지 덤으로 준다.
“사장님!”하고 부르면 모두가 뒤돌아볼것 같은 옛날식 다방에서 오늘 그를 만났다.
“어때? 옛날 다방 기분 나지?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스폰 소리를 들어본다.” 콧노래까지 덧붙인 그 친구의 넉살에 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
참으로 편안한 만남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50평쯤 돼 보이는 홀이 모두가 나처럼 삭은 얼굴, 60대, 70대들로 가득했다. 가뭄에 콩 나듯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남자들 사이에 드문드문 끼어있기도 했다. 주고받는 얘기로 짐작컨데, 근처에 흔히 보이는 입장료 천 원짜리 무도연습장에서 만나 함께 차를 마시러 온 듯 했다.
“등산보다는 춤이 백번 낫지, 리듬에 맞춰 움직여서 그런지 피로하지도 않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나이의 운동치곤 춤이 제일이야.” 70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말씀에, 세월을 거꾸로 돌리려고 버둥질 한 흔적이 얼굴에 잔뜩 묻은 여인이 말 허리를 끼고 든다.
“을지로 6가에도 좋은데가 있는데....”
어쩌면 그 방면에는 그녀가 할아버지보다 훨씬 더 도가 트인 것 같아 보였다.
“뭘 그리 쳐다봐?”
친구가 내게 물었다.
“저 양반들 얘기가 재미있어서....” 대꾸를 하며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창틈으로 비치는 햇살에 하얗게 번져오르는 담배 연기 속으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강원도 원주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다방 레지 아가씨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외출이나 외박허가를 받으면 으레껏 첫 코스로 들렸던 곳이 바로 그 다방이었다.
너무 오래 된 일이라서, 그녀 얼굴모습이며 그녀와 내가 어떻게 하다가 그리 가깝게 되었는지조차도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말단 쫄병인 나한테 지극 정성을 다했던 그녀의 마음만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 시절에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에게는 ‘모닝커피’라 하여 뜨거운 커피에 계란 노른자 하나를 넣어서 내놓았다.
계란마저도 귀했던 시절, 요즘말로 하면 토종닭 달걀을 깨뜨려서 흰자위는 그릇에 쏟아 두고 노른자위만 달랑 커피 잔에 집어넣어서 주는 것이었다.
차 스푼으로 땡글땡글한 노른자를 터뜨려서 뜨거운 커피에 휘저어 호르륵 마시면 계란 비린내와 커피향이 혼화되어 그 맛이 참으로 구수해서 좋았다.
그녀는 모닝커피에서 나오는 계란 흰자위를 그릇에 모아 두었다가 내가 외출허가를 받아 그 다방에 나타나는 날이면 후라이 팬에 버터를 바르고 그 흰자위만 가지고 계란 묵을 만들어서 “쫄병 영양식”이라며 갖다 주곤 했다.
파란 실파나 부추를 섞고, 빨간 실고추를 고명으로 위에 얹어 만든 계란 묵의 그 구수하고 담백한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녀가 주인마담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다른 날은 이걸 내가 집에 가져가는데, 외출 날은 얘가 눈에 쌍심지를 해서 지켜보는 바람에, 눈치 보여서 내가 이걸 못 가져간다니까.” 하며 나를 웃기던 그 다방 주인 마담도 나한테는 항상 잘해주는 편이었다.
일등병이 상병, 병장으로 제대를 할 때까지 그녀의 영양 보살핌 속에 군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그녀와는 끝이었다.
“옛날에는 명절 다음날은 읍내 다방이 전부 맞선 장소였잖아? 여기 저기 시골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나와서 맞선을 보던...” 친구도 그 사이에 옛날 생각을 한 듯 내게 말했다.
“맞아. 자네가 경험자니까 나보다는 그런 건 더 잘 알겠지만...” 대답을 하려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시절에는 정말 그랬다. 먹고 살기 위해 객지로 나간 아들, 딸들이 모처럼 명절을 쉬러 고향에 내려온 김에 짝을 맞춰주려는 부모님들이, 애써 자녀들을 설득해서 맞선자리를 만들어 주었던 곳이 주로 다방이었다.
다방 맞선을 생각하다가 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까닭은 그 친구가 다방에서 맞선을 본 여성을 아내로 맞아 오늘날까지 금실 좋게 잘 살아오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별난 사연이 하나가 더 있어서였다.
그 친구가 부모님으로부터 맞선을 보라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내려가던 날, 청량리역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게 되어있는 중앙선 3등 객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었는데 그가 앉은 좌석의 맞은 편 창가 쪽으로 삼삼한 처녀가 하나 앉아있더라는 것이었다.
그가 옆 사람에게 계란빵이며 사이다를 사주면서 자꾸 너스레를 떨면서 자리를 옮겨가서 차츰차츰 목표로 삼은 그 처녀한테까지 접근을 해서 드디어 그녀와 대화를 텄는데 처음에는 ‘어디 가느냐?’ ‘뭐 하러 시골에 가느냐?’ ‘서울에서는 어느 동네에 사느냐?’ 등등을 묻고, 또 대답을 하며 대화가 진행되다가 처녀 쪽에서 그에게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그가 사실대로 ‘자동차 정비공장에 근무합니다.’라고만 말했으면 그가 일생을 편하게 살았을 텐데, 행선지마저 같은 그녀한테 미련이 남아 제 딴에는 그녀에게 좀 더 환심을 사보려는 생각에서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 시절엔 대학생이라 하면 처녀들의 선망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맞선을 보기 위해 다방으로 갔다가 그 친구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단다.
자신의 맞선 상대로 나온 여성이 바로 어제 자신과 기차를 함께 타고 내려온 창가 쪽의 그 처녀였으니 말이다.
“지(저)는 뭐 나한테 거짓말 안했나? 미용학원 다니는 주제에 나더러 뭐라 캤는지 아나? 회사 경리사원이라 카더라. 지도 그래 거짓말을 해놓고서는 걸핏하면 나더러 '거짓말쟁이'라고 몰아 부치는데, 내 난생 처음으로 구라한번 쳤다가 일생동안 그놈의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는 마누라한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니....”
우리는 한참을 웃다가 마치 고향집 같은 그 다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