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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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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2006년 9월 3일 마르 7,1-8. 14-15. 21-23. 신명 4, 1-2. 6-8. 오늘 제1독서로 들은 신명기는 율법의 기원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법이 주어진 것은 하느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설명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 있느냐?’ 율법은 이스라엘이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분의 일을 실천합니다. 율법은 그 실천을 위한 지침입니다. 인간 사회에는 각종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을 잘 지키면 그 분야에서 무사하고 잘못 지키면 화를 입습니다. 도로교통법은 교통이라는 분야에서 우리가 잘 지키면 무사히 길을 갈 수 있지만, 그것을 잘못 지키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범칙금을 물어야 합니다. 도로교통법은 길을 가는 모두가 무사히 가도록 도와주는 지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도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그분을 부르면서 살도록 도와주는 지침입니다. 율법은 인간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의 자유가 어떤 것이지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자유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기발하였던 것은 인간 삶의 한가운데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600년 가까운 세월을 강대국의 식민지로 살다가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오랜 식민지 생활에 시달린 이스라엘이 가진 숙원은 식민 지배를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국권 회복이라는 민족적 숙원의 성취를 위해 당시 유대교가 제시한 것은 율법을 충실히 지켜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독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과 율사’는 이런 주장을 하는 그 시대 유대교의 실세들입니다. 이들이 오늘 시비의 주제로 삼은 것은 ‘조상의 전통’이라는 그 시대의 위생법입니다. 팔레스티나는 서쪽에 지중해를 두고 북쪽, 남쪽, 서쪽이 모두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는 1월과 2월 사이 한 달 동안만 옵니다. 평소에는 습도가 낮고 메마른 지역입니다. 바람이 불면 주변 사막의 모래가 날려 옵니다. 해마다 몇 차례씩 일어나는 우리나라의 황사현상이 그곳에서는 언제라도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이 귀한 지방이라 사람들은 물을 아낍니다. 그런 지역적 여건을 생각하면, 오늘 복음이 말하는 ‘조상의 전통’이라는 위생법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식 먹기 전에는 손을 씻고,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씻으라는 법입니다.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등 음식을 담는 용기들도 자주 씻으라는 법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율법의 의미는 보지 못하고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주었습니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한 강박관념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오늘 제1독서가 말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것은 자기들의 삶 안에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인간 삶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여, 하느님이 인간 삶의 주인이 되시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유대교 실세들은 율법을 국권 회복이라는 인간 욕망의 성취 수단으로 삼았고, 그 율법을 문자대로 철저히 지킬 것만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욕망을 성취하고 그것을 하느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범하였던 것과 같은 오해입니다. 입학시험에 자녀가 성공하면, 또 사업이 잘 되면, 혹은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 하느님이 특별히 축복하셨다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모든 일이 하느님 안에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몇 사람을 예뻐해서 그들의 욕망을 이루어 주고, 다른 사람들은 실패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뻐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을 망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축구 선수가 예뻐서 그 상대 팀을 패배하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 빌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어 잘 되겠다는 것은 옛날부터 있는 인간 욕심의 발로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중요한 일 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습니다. 심청은 공양미 300석을 바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당연시하는 우리의 전통입니다. 중요한 일 앞에 하느님께 기대하고 기도하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받은 것을 은혜롭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나 한 사람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나 한 사람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특혜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하느님이 나에게만 특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비는 것은 인간 이기심의 전통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루가 17,21)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은혜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들 가운데 있게 합니다.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로 1944년에 처형당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본회퍼(D. Bonhoeffer)라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그분이 옥중에서 남긴 시가 있습니다. 그는 그 시에서 우리가 하는 일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비통할 때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분께 빵과 기쁨을 달라고, 도움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병에서, 죄에서, 죽음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도 믿지 않는 이도 모두가 하는 일입니다.” 신앙인이든 비 신앙인이든 모두가 실천하는 우리의 전통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는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이 비통할 때 하느님을 찾습니다./ 가난하고 천하고, 쉴 곳도 먹을 것도 없는 하느님을 봅니다./ 죄와 연약함과 죽음에 버려진 하느님을 봅니다./ 하느님이 고통당하시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곁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불행한 이웃,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이웃 안에 계시면서 비통해 하시는 하느님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을 돕는 것은 그 이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 곁에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시는 이렇게 끝맺습니다. “하느님은 비통함에 잠긴 모든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빵으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먹이십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인을 위해 또 믿지 않는 이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비통함에 잠긴 모든 이, 신앙인이든 비 신앙인이든, 모든 이와 함께 계시고 그들을 위해 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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