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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막달라 마리아의 날 |
| 글쓴이 |
관리자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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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28 |
| 날짜 |
2006-07-27 |
조회수 |
28 |
추천수 |
2 | |

7월22일은 ‘막달라 성 마리아의 날’로 되어 있다. 프로테스탄트와는 인연이 없는 날이지만,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 및 가톨릭에서는 물론, 성공회측에서도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루터파에서는 지역에 따라 지키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가까이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한 예수를 누구보다 먼저 만난 한 여인을 기념하는 날로 여기고 있다. 신약성서에는 적어도 3사람, 많게는 9사람의 ‘마리아’가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4복음서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남성 제자들을 제치고, 맨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예수가 일곱 귀신을 몰아냈다(막 16:9, 눅 8:2)는 여인이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예수와 동행했다는 여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방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았다는 ‘베다니의 마리아’(요 12:3)와 비슷한 행동을 한(눅 7:36-38) 여인을 별개의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가톨릭 측에서는 근년에 이르기까지 두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해 왔다. 그런고로 서방측의 그림들에서는 향유를 담은 석고 항아리를 들고, 금빛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의 표상으로 그려왔다. 또 ‘귀신’이나 ‘죄’가 성적 타락과 관계가 있다고 보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간주했다. 그래서 보통명사 magdalene는 ‘회개한 매춘부’ 혹은 ‘매춘부 갱신 시설’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쪽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었다. 우리 찬송가 346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만 해도 막달라 마리아와 귀신 들렸던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정교회에서는 그녀를 ‘Holy Myrrhbeare’ 즉 ‘향유를 가지고 온 성녀’로 부른다. 물론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한지 3일 째 되는 날 향유를 가지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는 기록을 따른 것이다. 정교회에서는 부활절 후 둘째 주일을 ‘향유를 가지고 온 성녀의 날’로 지킨다. 전승에 의하면, 로마황제 티베리우스(37년 사망)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하고, 붉게 물들인 계란이 부활의 상징이 된 것은 그녀가 이것을 황제에게 헌상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도 요한과 같이 에베소에 갔고 그곳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시신은 9세기에 컨스탄티노플로 옮겨진 것으로 전한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는 그녀의 유신을 성유물로 모시고 있는 교회가 적잖이 있는데, 중에서도 성 마드레느 성당은 순례지로서 그 이름을 떨친 적이 있었다. 창녀의 몸으로 회개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그녀의 생애는 오랜 세월 많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지만, 반면에, 성서의 이야기를 담은 거룩한 작품이라는 그늘에 숨어서 음탕한 그림을 그리는 속검은 화가들의 좋은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90 -1576) 는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화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에 더러는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을 들어낸 채 하늘을 우러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림 속의 그녀는 아름다운 육체로 남자들을 유혹하려는 자태이지 회개하는 모습은 아니다. 짙은 에로티시즘만이 전 화면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구석에 작은 석고 기름병을 배치해서 그녀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을 표시한다. 성화(聖畵)를 가장한 성화(性畵)를 그린 것이다. 문학작품들에서도 같은 경향들을 볼 수 있고, 최근에는 그노시스 문헌들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드는 이들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유럽의 서민층에게는 친숙한 성녀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미용사, 장갑 및 향수 제조업자, 가죽을 다루는 이들의 수호신으로 기억되고 있고, 또 회개하는 이와 명상하는 이들의 수호성녀로서도 그녀의 이름을 유지해오고 있다. 대체로 성서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은 누구의 어머니, 혹은 누구의 아내 혹은 자녀 또는 부부관계로 신분을 묘사하고 있는 터에, 마리아만은 “막달라”라는 출신지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그녀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립하고 있었던 특별한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한 자리하고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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