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평생을 살아오면서 성경을 가까이하며 살아왔다는데 대해서 나름대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집안에 태어난 내가, 부처님을 찾는 할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집 가까이 있는 절에 열심히 다녔던 내가, 성경을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기독교계통 학교였기에 중학교 3년 동안은 구약성경을 정규과목으로 배웠고 고등학교 때는 신약성경을 달달 외워야만 했다.
구약을 배울 때는 하와가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얘기며,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얘기며, 노아의 방주, 야곱의 돌베개, 요셉의 금의환향, 아브라함과 이삭, 다윗의 출애급, 호렙산 십계명, 삼손과 델릴라 등등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성경 과목 시간이 1주일에 한 번쯤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더구나 대부분이 O,X로 출제되는 성경시험마저도 아주 쉬워서 다른 과목에서 부족한 내 평균점수를 상향시키는 효과까지 있었으므로 성경과목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신약을 배우면서부터는 성경과목이 싫은 과목이 되어 버렸다. 성경시험의 출제방식부터 주관식으로 바뀌면서 암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7가지 죄악이 무엇인지 각각 기술하라.”
“성령의 7은은 각각 무엇인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써라”
“마가(마르코)복음 4장에 나오는 씨앗의 종류를 쓰고 하나씩 설명하라.”
공부를 제대로 안 했다가는 평균점수며 석차에 큰 손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입시를 앞둔 터라 영어 수학공부하기도 바쁜데 그걸 외워야 했으니...더구나 내가 대학을 가던 그해에는 연대와 고대가 별도의 입학시험이 없이 고등학교 성적으로만 신입생을 뽑는 무시험 전형까지 있었는데 평균점수며 석차가 성경점수 때문에 떨어진다는 것은 네게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대학교마저도 기독교 계통학교에 진학해서, 다시 또 채플시간에 참석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별도로 2학점짜리 종교과목을 이수해야만 졸업장을 받는 학교에 다녔으니 그 이야기까지 다 하려면 참말로 얽히고설킨 재미난 사연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인격형성이 되어가는 중요한 시기의 10년을 성경과 가까이 살았다는 것은 이제 생각하면 큰 축복이었다고 여겨진다.
몇 해 뒤에 외국을 갔더니 그곳의 한국인 개신교신자들이 그런 학교를 나왔는데 교회에 안 나온다면 말이 안 된다고 잡아끄는 바람에 다시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해서 5년, 귀국 후에 천주교로 개종한지도 어언 25년이 되어가니, 결국 60평생의 4분의3은 성경 옆에 붙어 산 셈이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한 번도 성경 한권을 몽땅 읽거나 써본 사실이 없다.
몇 해 전에 본당행사로 가족 성경쓰기가 있어서 아내와 함께 교대로 신약성경을 필사한 적은 있지만 그것도 나는 겨우 몇 장만을, 거의 대부분이 아내가 쓴 것이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 굿뉴스 덕택으로 성경쓰기에 도전한 것이다. 무리한 도전 같았다. 독수리 타법에 글씨마저 작아서 돋보기도 써야 하고...또 바쁘기도 하고....
그러나 도전이란 값어치 있는 일이 아닌가? 설령 뜻을 못 이룬다 하드라도....중도에서 주저앉는다 해도 이 나이에 하는 건데 뭐 하면서 7월 하순에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아직은 겨우 27% 밖에 못 썼지만 행복한 도전이었다.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서 쓰라리고, 굳은살이 박히고, 팔도 아프고 어깨쭉지도 쑤시고, 눈이 갑자기 침침해지고...., 왠 바이러스는 성경쓰기 하는데도 덤비는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참 써놓고 나면 흐뭇하기 짝이 없다.
어느새 6천등에서 올라 간 내 순위가 500등이 되고,
이제는 안 가려고 해도 남한테 떠밀려서라도 갈 판이다.
아침에 눈뜨면 30분에서 40분 쓰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1시간 정도 쓴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에 사무실에서도 쓴다. 해외에 나갔다 온 1주일만 빠졌을 뿐 하루도 빼지 않고 그렇게 해서 1일평균 160절 이상은 쓴 것 같다.
아직은 구약을 쓰다 보니 추억 속에 묻혀 사는 기분이다. 이제는 세상을 뜨셨을 중학교 때 성경과목담당 선생님 겸 교목이셨던 장 기홍 목사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르고, 언젠가 성탄절 연극 때 서로가 요셉 역을 맡으려고 다투던 생각도 나고...
치다가 보니 나 같은 독수리 타법이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컴을 빨리 치면 눈으로만 읽지만 나처럼 독수리 컴맹느림보는 입으로 읽으면서도 치니까 말이다.
2-3개월 전부터 내가 다니는 장한평 본당에서는 좌석마다 두툼한 성경책을 비치해 두고 매일 미사 10분전부터 해설자의 안내로, 신약성서를 하루에 1장씩, 전 신자들이 함께 소리를 내어서 읽는다.
뿐만 아니라 미사 때마다 제1독서 제2독서를 전 신자가 모두 성경을 펴놓고 독서자와 함께 소리를 내어서 읽는다.
아마도 이런 본당은 대한민국에 딱 하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전 신자가 미사독서를 함께 소리 내어 읽는 이런 본당은 없을 것 같다.
참말로 질긴 인연이다. 내 팔자에 성경이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 성경을 떼고 어릴 때 천자문 떼고 책씻기 떡잔치 하듯이 책씻기를 하리라 다시 다짐하면서 30% 50% 100%를 향해 나아 갈 결심이다.
어차피 붙어 살아야할 팔자라면 좀더 깊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