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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적 삶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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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juhappylife] 쪽지 캡슐

2006-09-04 ㅣ No.103995

 

순(殉)이란 죽은 자의 뒤를 이어 10일 이내에 따라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순교란 자신이 신봉하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 바치는 행위를 말한다. 전에는 이를 치명(致命)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준 믿음, 즉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2세기 중엽부터 교회는 재판소에 끌려가서 말씀의 증언을 하고도 죽지 못한 자를 증거자(證據者), 피로써 증언한 자를 증인(證人, Martyres)이라 불렀는데, 이 후자의 경우를 순교자라 한다. → 성인, 증거자


순교자는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혈세(血洗)의 은혜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요한 15, 13).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들을 위해 위령 기도를 하기보다, 오히려 찬미의 기도를 바쳐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을 사학죄인(邪學罪人, 천주학쟁이)이라 하여, 대역죄로 다스리는 바람에 2만 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그리고 6·25 때는 많은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공산군에게 끌려가 순교하였다. 그래서 결국 한국은 103위의 영광스러운 순교 성인을 모시게 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순교 성인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행적을 기리며, 그분들의 모범을 본받도록 노력하고, 전구를 빌며 하느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해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정하였다.


일찍이 한국에서는 한국의 순교 복자(福者)들을 공경하기 위해 복자 성월

 

을 정했었다. 그 후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3위

 

복자가 성인품에 오르게 됨에 따라, 순교자 성월로 명칭이 바뀌었다.

-카툭릭 굿뉴스에서-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많은 본당에서는 성지순례를 시작합니다. 이는 역

 

사적인 발자취를 따라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아 우리도

 

 하느님의 복음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살겠다는 큰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

 

니다.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뜻이란 더 강하고 깊은 뜻을 되새

 

겨 하느님의 증거자로써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먼저 앞서야겠

 

다고 생각해 봅니다.  내 믿음이 약하여 아직 미지근한 신앙생활로 언제나

 

미루고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유일한 진리의 길이기에 그 길을

 

 벗어나는 세상의 삶은 결국 自我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다고 내 눈앞에 세속적인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

 

는 것 때문에 영원한 행복의 미래를 내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생각에 두렵

 

기도 하답니다. 신자 분들 중에는 평생을 돈 모아 외국에 성지순례 한 번

 

 다녀오기도 하고 형편이 잘 안된 분들도 꼭 한 번 성지순례를 하겠다는

 

 간절한 소망 속에 애태우고 있는 많은 분들도 있습니다.  생각은 여러 가

 

지 각자 다를 수가 있겠으나 대부분 내 부족한 신앙을 순교자들의 얼을 따

 

라 채우고 오겠다는 믿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증거자, 이는 신앙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임에는 분명한 데

 

 과연 우리는 어떠게 살아가고 있는 가! 자문해 보면 너무나 나약하고 보

 

잘 것 없는 저 자신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세속생활 매순간이 순교인데 내

 

탓으로 길들어진 세속화에 얽매여 많은 세월을 허송세월로 보낸 죄스러움

 

에 움츠려들면서도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항에서 당장

 

목숨을 바쳐 순교는 못해도  남을 배려하고(易地思之), 어려울 때 도우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 무조건 고개 숙이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과 이의 실

 

천은 순교의 정신이며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 때 “평화를

 

 빕니다고” 하고 우리는 서로간 인사하지만 이 시간을 떠나면서 남남이 됨

 

을 종종 느낍니다.  평화를 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하기를 바라

 

는 마음이며 필요할 때 도우는 마음입니다.  우리 신앙공동체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일치를 이루고 하나 되는 하느님 백성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는 하나 되는 공동체인지 많은 시간 자문해 봅니다.  서로를 도우기는 커녕

 

내 보다 잘되는 형제자매가 밉기도 하고 시기하고 싶은 유혹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지?  우리 교회 공동체가 사회와 뚝 떨어진 별개가 아니고 그

 

속에서의 하나이기에 교회도 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 끼리 서로

 

를 돕고 생활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가끔 느끼

 

는 바는 교회 밖에서는 남의 말은 쉽게 믿고 교회 내에서는 믿지 못하는

 

 부분들이 매우 높은 것 같아 슬프기 까지 합니다.  우리 성당에서 매주일

 

마다 판매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믿고 구입할 수 있을 법도 한

 

데 그렇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질이 형편없다는 것인지 가격이 비

 

싸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에 도움이 되는 물건들일

 

것입니다.  내가 구입하는 것 하나라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라고 생각

 

할 수는 없을 까요?  신자들이 형편이 좋아지면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되

 

돌아옵니다. 신자가 하는 것은 나에게 불이익을 주기에 못 믿고 다른 외부

 

사람들이 오히려 많은 이익을 챙겨 주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한다고 한다

 

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래도 “신자들을 믿습니다” 라고 생각해 주고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  가끔 성당에서는 바자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

 

동체 한 마당 잔치이며 화합의 장입니다.  또한 어려운 본당 재정을 돕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하나라도 믿고 필요한 것은 구입해주는 마음이 있어

 

야 되지 않을 까요?  매년 교회 달력이 신자들에게 배부됩니다.  그곳에는

 

광고가 있습니다.  아무도 광고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신자분들이 매

 

년 광고료를 지불하겠습니까?  대바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공적인 바

 

자회를 위해서는 그곳에 출시된 제품들을 구입해 주는 것입니다.  서로 나

 

누는 마음은 우리카톨릭교회를 기쁨과 믿음이 넘치는 교회로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형제가 취급하는 물건 하나라도 구입해 주는

 

마음과 뜻은 형제와 기업을 살리고 나에게는 이로움의 기쁨이 있을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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