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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벌써 아침 저녁으로 스치는 공기가 다르네요. 가을이 가까이 다가 오긴 온가봐요.
올 여름, 무척 덥지않으셨던가요?
전 고수부지에서 밤바람 쐬며 걷기에 재미 들이며 여름을 지냈지 뭐예요.
우리동네에 고수부지가 있다는 건 너무 큰 축복이예요. 암요, 축복이고 말고요.
마치 아름다운 중남미의 해안가에 왔는 기분이예요.
쿠바의 하바나 깊은 밤, 씨거를 물고서 누구던가? 노인장들이 부르는 보칼. 억세고 터프한 목소리. 아마 콤파이 세쿤도 영감이 불렀을거예요. 그의 나이 든 친구들과 브에나 소셜 클럽에서 나오는 "Chan Chan"을 말예요.
제가 너무 비약한다고요.
검푸른 바다가 펼쳐진 하바나가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한강이 떨어진다고요?
천만에요. 색색등을 켠 유람선이 지나고난 뒤 밀려오는 파도가 고수부지 옹벽에 부딪칠 때면 철썩, 파도가 검은 포말을 일으키며 후덥지근하게 달아오른 더위를 귓쌈배기 한 대 올리며 쫓아버린다니까요.
올 여름 고수부지에 맛 들이신 분은 유명한 잠원부라더스를 아실거예요.(제가 멋대로 지은 이름인데 더 멋갈스러운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 해요)
밀리터리 룩을 하고서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는 형제를. 잠원 고수부지 농구장 바로 옆에 엠프와 기타, 색소폰, 풀륫, 멕시코 쪽 무슨 피리라던데.... 참 재주도 많은 친구예요. 한 삼십 중반이 돤 형은 늘 색바랜 모자를 눌러 쓰고 이십대 아우는 머리를 질끈 묶은 차림이 우애 있는 형제더군요. 노트북에 저장된 음악을 틀고서는 라이브로 연주를 하는데 쥑이더라구요.
제 수준에 딱 떨어지는 흘러간 팝쏭, 우리나라 애창곡을 색스폰으로 어떤 때는 기타와 육성으로 불러주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공짜로 듣기에는 미안하더군요. 신청곡도 받는데 제가 숫기가 많아서 멀찌감치 떨어져 보기만할뿐입니다. 사실 신청할 게 되게 많은데.
앤디윌리암스의 노래 든가 암스트롱의 원더풀 월드나 윌리암 홀덴과 제니퍼 존스가 나왔던 영화 모정(慕情)의 주제곡 "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 을 청해서 들으면 얼매나 좋을까요만....
홍수가 잦은 탓에 고수부지 옹벽에는 밀려온 진흙이 새로이 강안선(江岸線)을 그린 탓에 여간 운치가 있는 게 아니예요. 째그만한 섬도 생겼더라고요.
달빛 쏟아지는 밤, 은빛으로 부서지는 달빛을 받아 세레나데를 부르던 그대 집 창가는 어디로 가고 똥배가 나와서 열씸이 걷고 있는 중년의 아자씨와 아쥠마만 분주한 밤이 올시다.
좋은 시절 다 가고 캔 하나 따서 한 모금 마시고 반달 한 번 쳐다보며 흘러간 옛 시절을 생각하면 혼자 눈물 나옵니다.
왠 사설이 그리 많냐구요.
그럼 넉두리가 안 나오게 되었나요. 며칠 사이에 강에 나가보면 확연히 달라진 걸 알겠더라고요. 스치는 바람이 벌써 가을 바람이예요. 아주 딱이 예요. 굿자만사 하기에는 더없이 좋겠더라고요. 쥐포에다 캔 맥주 몇 개 챙기면 안성맞춤이지요.
이 가을, 밤바람 맞으면서 부르는 노래는 어떤 게 좋을까요.
전 정훈희의 "강 건너 등불" 을 추천 하고 싶은데....
"그렇게도 다정하던 그때 그 사람,/ 언제라도 눈감으면 보이는 얼굴./ 밤하늘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아아아 당신만을 잊지 못할까./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빡이는 강 건너 등불./....................... 강물처럼 오랜 세월 흐르고 흘렀건만/ 아~~ 당신만은 잊지 못할까./ 나도 몰래 발길 따라 강변에 서면/ 눈물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
내 마음하고 달리 왜 이리 글이 춤을 추는가요.
한번 한강으로 나와보세요. 파리의 센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툭 트인 넓은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시면 우선 세속에 쪼들린 마음이 뻥뚤리는 기분을 느낄 거예요.
여름 고수부지에는 나이든 어른이나 젊은이,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까지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더러는 뛰고 씽씽 인라인을 타는 젊은이까지 저마다 활기를 띄고 여름밤을 즐기고 있네요.
반포대교에서 한남대교까지가 잠원고수부지라 하고 유람선을 붇뜨러 맨 선상레스토랑이 두 개나 있어 운치가 넘치는 곳은 압구정 고수부지라 하나요. 동호대교까지 가서 돌아오는 길은 묵주기도 20단을 바쳐야 끝나지요.
밤바람이 아직은 차지는 않아도 며칠 전까지 후덥지근하던 거에 비해서는 천국입니다 그려. 이제 저 반달이 이즈러지고 풍성한 온달로 바뀌면 밤공기도 서늘해서 몸을 움추려야 겠지요. 아마 그때즈음이면 숨어 있던 코스모스도 예쁜 단장을 마치고 가녀린 손을 흔들며 반겨주겠지요. 철탑 아래는 무수히 많은 갈대가 무리를 이루어 떠나는 계절을, 안타까운 세월을 향해 련민의 행커치프를 흔들거구요.
무더운 여름이 좀처럼 물러서지 않을 듯 기승을 부리더니 세월이 오고가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네요. 우리네 인생도 그러한가요?
친구녀석이 자취하던 한남동 고개 위에서 소리없이 흘러가던 한강을 건너다 보면서 왠지 내 청춘이 허망해서 불러보던 그노래.
"...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던 강 건너 등불.."
이렇게 세월이 흘러흘러 똥배가 나온 중년의 신사가 강변에 서서 아득하게 지나간 추억을 불러모읍니다.
사무치게 그립던 그녀의 이름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사뭇 전설처럼 점점이 반짝이던 강건너 마을 등불은 이제는 내 보금자리 아파트가 되었으니 삼전이 벽해되었다 해야겠지요.
낮에는 갈매기가 꾸륵 꾸륵 소리를 내며 은빛 날개를 펄럭이며 넘나드는 이 아름다운 한강으로 그대를 초대합니다.
쥐치포에다 쐬주가 어떨른지요. 안주가 시원찮다면 그대 도야지 갈매기살이라도 마련해 오시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