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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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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2006년 9월 10일 마르 7, 31-37.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들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두 귀에 당신 손가락을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동작은 그 시대 사람들이 청각 장애인을 치유할 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침, 기름, 술 같은 액체는 치유의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손가락을 환부에 대는 것은 기(氣)를 넣는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는 것은 하늘에서 기의 힘이 내려오기를 비는 동작입니다. 오늘 복음이 그 시대 치유하는 사람들이 하던 동작을 예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참으로 치유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말미에 이사야 예언서(35,5)를 인용하여 사람들이 한 말을 전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예언서가 말한 대로 고치고 살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신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초기 교회가 예수님에 대해 믿고 있던 바를 반영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의 운동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에 대한 신비스런 이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하는 야망도 아닙니다. 죽어서 갈 내세를 위한 대책도 아닙니다. 신앙은 오늘의 삶을 변하게 하는 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을 주고 제물 바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깊이 깨닫고 그 함께 계심을 당신의 삶 안에 실천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그런 실천을 배워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자기의 삶 안에 살아 계시게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 그분이 살아계실 때 그분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그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들을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과 실천 안에 해방과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그들을 더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서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실천에서 그 하느님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계시게 하는 실천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체험한 바를 기록하여 역사 안에 남겼습니다. 그 기록들이 복음서들을 포함한 신약성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자유로울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의 강요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그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십니다. 인간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자기가 원하는 상품을 골라서 사듯이, 각자 자기의 소신대로 선택하며 삽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초기 신앙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남긴 이야기들 안에서 자기가 할 실천을 선택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치셨다는 이야기 안에는 초기 신앙인들이 체험한 해방과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듣고 말하는 데에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것은 장애인 한 사람을 치유하신 이야기이지만,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이 경험한 바를 그 안에 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듣고 말하는 데에 장애를 지닐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대단히 소중히 생각하는 나머지 남의 말을 그대로 알아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아는 것이 많아서, 남의 말을 들을 필요 없이 남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은 듣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과시하는 말만 하는 사람이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기고만장하여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에게 해방과 기쁨이 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말하는 데 장애를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장애들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자는 운동을 일으킨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배려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해방과 기쁨을 주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셨습니다. 우리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이웃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일입니다. 이웃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도 못하고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말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도 단절된 장애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면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이웃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만 듣고, 우리 자신의 말만 하는 장애를 넘어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자는 삶의 운동입니다. 그것은 이웃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선하심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청각장애인 한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신앙은 우리를 새롭게 듣게 하고 또 새롭게 말하게 한다고 알립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마르 14,36)라고 기도하면서 십자가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유대교 사회의 관행을 따라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버린 죄인들과 어울리시면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해방과 기쁨이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고 모든 이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이 되라...모든 이의 종이 되라”(마르 10,43-44)고 제자들에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자기 말을 강요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듣습니다. 그는 섬겨야 하는 이에게 기쁨이 될 말을 찾아서 합니다. 세상이 이상으로 하는 것은 자기 말을 사람들이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장애의 상태를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일을 버리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오늘 복음은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은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이웃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게, 또 이웃에게 기쁨과 구원이 되는 말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예수님이고 그분의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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