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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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신 김택암베드로 신부님을 떠올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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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낙화/이병기-
언제인가 베드로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읽어주신 이병기님의 낙화라는 시가 신부님의 은퇴소식을 접하고는 불현듯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평화신문의 그 흔한 신부님의 동정란에도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신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소리 없이, 마치 꽃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떨어지듯이 그렇게 물러가신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은퇴를 염두에 두시고도 일년 간의 안식년을 택하신 것도 계획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하계동 본당 재임시 당신의 영명축일 행사도 마다하신 분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리라~~~ 하지만 꽃이, 낙화가 아름다움 것은 그 뒤에 오는 녹음과 가을의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는 가을의 열매를 보면서 낙화의 순수한 희생을 아름다움으로 기릴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이 가을의 열매를 아껴 또다시 겨울을 이겨낼 한 톨의 씨로 남길 수 있을 터이니~~
사실, 20세기 벽두 가톨릭은 우리 민족 앞에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즉 정교(政敎)분리라는 명분으로 민족 문제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와 삶은 결코 분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일을 무시하고 포교에만 힘썼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가톨릭은 민족의 거사였던 3.1운동에도 소극적이었고(민족대표 33인 중에 가톨릭인들은 한 분도 없다), 심지어는 안중근토마의 의거도 살인 행위로 간주하여 총고백의 기회도 주지 않았었다. 물론 당시 외방선교회 장상들의 판단은 최선이었을 것이다. 근 100여년의 박해 속에 어렵사리 얻은 신앙의 자유를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또한 20세기라는 시대는 뻔히 보이는 박해의 구렁 속으로 교우들을 몰아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중과 동떨어진 사상이나 종교는 결코 그 나라에 뿌리박지 못하는 만고의 진리대로 카톨릭은 한일 강제 병합이후 정체의 길을 걷게 된다. 수 많은 박해 속에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던 교우의 수가 신앙의 자유를 얻고서 정체되었다는 이 역설적 상황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00여년 늦게 포교의 길을 걸은 개신교교들은 민족의 아픔과 함께 교육 및 의료사업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독톡히 하면서 그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물론 개신교인들도 우리와 같은 주님을 모신다는 점에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 주고 주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그것이 우리 카톨릭인들의 과오를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그후 지금까지, 100여년이나 늦게 출발한 개신교인들의 수는 우리 가톨릭인들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앞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7,80년대 군부독재 시대를 지나면서 역전이 된다. 그 서릿발 같은 군부 독재 시절, 엄동설한의 추위에 방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감히 뛰쳐 나올 염두를 못하던, 아니 저항은 고사하고 독재자들을 축복하기에 급급하던 시기에 외롭게 광야에서 진리를 외치는 예언자의 직분을 다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김택암 신부님이 속한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그들은 성직자의 신분으로 감옥을 제집 지나들듯 하면서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참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화두를 던져주었던 것이다. 그들의 외침은 광야에서 주님을 준비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그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용기를 얻어 독재에 저항할 힘을, 아니 적어도 이 땅에서 독재와 부패는 없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은 민주화라는 위대한 일을 우리 민중들의 힘으로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정의구현사제단으로 대표되는 가톨릭의 활동은 가톨릭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건 한때나마 민족의 삶과 유리되었던 우리 가톨릭이 이제 완전히 민족의 삶의 중심이 되고 우리 나라와 민족을 바르게 이끄는 등불로 모두가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80년대이후 많은 이들이 예비자 교리실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성직자 수도자의 수도 많이 늘어났던 것이다. 아울러 우리 자신은 스스로가 가톨릭인이라고 떳떳이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종교 여론 조사를 살펴보면 가톨릭은 선호도에서 타종교보다 훨씬 앞서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민주화된 지가 10여년이 지나고, 그리고 민주화 주체 세력들이 무능을 드러내다 보니 그들의 공로는 점차 잊혀져 가고 만다. 그리하여 어쩌다 강론 시간에 정치적 문제를 언급하면, 그들이 마치 정치적 야심이 있는 것 마냥 그들을 비난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정치가 아닌가? 또한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종교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회개는 천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죽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나라는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결코 자기 위로 내지 자기 변명이어서는 안되지 않겠느가? 이제 김택암신부님은 말없이 지는 꽃처럼 은퇴하셨다. 뒤이어, 광야에서 우리민족과 참종교가 나아길 길을 제시하던 예언자로서의 소명에 충실했던 분들이 한분한분 현직을 떠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들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분들이 자신의 공로를 알아주기를 조금도 바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는 퇴보만이 아니 역사 속에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분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떨어진 꽃이 있었기에 지금의 달콤한 열매가 있다는 사실과 그 열매 중의 일부를 내년의 꽃을 위하여 씨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면서 글을 맺는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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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199 | 이 가을 밤에 혹시나|10| | 2006-09-11 | 권태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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