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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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제님의 숨은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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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2-01-15 ㅣ No.152292

 

한 형제님께서 쪽지를 주셨습니다. 쪽지의 내용은 사도요한으로 제가 적은 것을 세례자 요한으로 수정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저도 착오로 그만 그렇게 적고 말았습니다. 감사하다는 내용의 쪽지를 전해드렸지만 오늘도 이걸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다른 내용의 쪽지도 개인적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형제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 말입니다. 이럴 경우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댓글을 통해서 알려줄 수도 있고 혹 연락처를 안다면 문자로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놔둘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라고 적었어도 내용상보면 세례자요한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형제님이 아니라도 다른 분들이 보셔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실수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서 좀 더 다른 걸 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제가 질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형제님이 왜 쪽지를 통해서 또 알려주시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굳이 알려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댓글을 통해서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큰 실수는 아니더라도 또 실수의 차원을 떠나서 저의 사소한 그런 실수조차도 설령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상황이라도 그걸 공개적으로 그런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노출시키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쪽지를 통해서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 많은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인생을 살다보면 세상에서도 그렇지만 신앙 안에서도 제대로 잘 알고나 하면 그것도 모르겠는데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가르쳐들려고 하는 사람이 간혹 보면 있습니다. 그 사실이 그나마 정확하면 좋은 뜻으로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림은 그 말이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해줘도 끝까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차례 그런 경우가 있어서 제가 그분께 정확한 내용과 자료를 가지고 그분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씀드리면 그때서야 꼬리를 내립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쪽지를 주신 형제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으로 주셨을까요? 단순히 어떤 실수를 지적하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가 있을 겁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아닌 게 아닙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설령 남의 실수를 선의로 지적해 주려고 해도 가능한 한 그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려깊은 행동을 취한다면 참으로 좋을 일일 겁니다. 그야말로 상대방이 전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그 실수를 알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그처럼 금상첨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는 그걸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미한 사안에서는 괜찮지만 그런게 어떤 상황에서는 민감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보면 그게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그렇게까지 생각하며 행동해서야 어디 세상 살기기 너무나도 어렵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한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가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역발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런 게 평소에 자신이 조심하며 생활화한다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상황까지는 발생하기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습관이고 훈련입니다. 얼마든지 이런 것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 시간이 경과하면서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도 한번 고민해보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신앙 안에서는 이런 것도 그 가치의 크기를 떠나서 작은 배려도 하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말할 때 그 사랑은 꼭 위대한 사랑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그 배려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배려를 했느냐에 따라서 엄청 큰 사랑으로 느낄 때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인생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 우리가 남을 위해 잠시 배려하는 게 그게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또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혼화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하는 것도 사람의 기분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는 제가 다음에 한번 그 경험을 말씀드릴 기회에 전해드리겠습니다. 

 

배려도 사실 하려면 그냥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저는 쪽지를 주신 그 형제님께 감사함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자매님이 계십니다. 그분도 이와 같은 일을 어제, 그제 이틀 통안 제가 활동하는 다른 그곳에서도 오탈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복음묵상 날짜를 하루 뒷날 요일로 두 번이나 반복 실수를 했던 걸 카톡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분 자매님도 바로 이 형제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해 주셨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이런 것도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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