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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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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자 대축일 2006년 9월 20일 루가 9, 23-26, 로마 8, 31-3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는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과 같이 소중한 일은, 비록 자기 목숨에 지장이 있어도, 과감히 추구하여 우리의 삶이 의미를 지니게 해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세에 따라 흘러서 무사히 또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돈과 명예를 좇아 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그분의 삶을 사는 데에 목숨을 잃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북경에서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84년이고, 그 이듬해인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조선 조정이 미국과 수호 조약을 맺기까지 약 백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순교한 분들의 수가 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분들은 온갖 잔인한 형벌을 다 받았고 비참하게 죽어 가셨습니다. 그 가족들도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국의 그리스도 신앙은 외국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유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영입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뿌리도 채 내리기 전에 박해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연구하고 그것을 어렵게 국내에 도입 보급한 사실과, 초기부터 시작된 혹독한 박해에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랍게 보입니다.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이승훈이 세례를 받기 약 150년 전의 일입니다.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비롯한 한문으로 된 몇 권의 천주교 서적이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서학(西學)이라 불렀습니다. 그 시대 이 문서들을 영입하여 연구한 사람들은 실학파라 불리는 유교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교 국가를 표방하는 조선이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있을 무렵, 합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학문과 사회 제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은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무렵 실학파가 연구한 천주교는 신앙이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고 사회관이었습니다. 그 무렵의 조선 시대상을 어떤 저자(이이화, 「허균」 한길사 1997, 45-47)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무고로 죄 없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하는 일이 많아서 백성은 불안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휩쓸었다.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쳤다. 과거(科擧)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 등 부정이 행해지고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무리한 토목공사들을 벌려 놓고 관리들은 공사 자재를 횡령하고, 민생고에 허덕이는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서 매우 사치스럽게 살았다. 결국 임금으로부터 지방 수령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분을 보호하기 바빴고, 그것을 위해서는 금력이 필요했다. 임금은 신하들로부터, 신하들은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는 길밖에 없었다.” 절망적인 그 시대의 모습입니다. 이런 여건에서 서학을 공부한 실학파 학자들에게나 후에 신앙을 영접한 초기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은 대단히 신선하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군주(君主)가 절대적이 아니라 천주(天主)님이 계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법이란 왕이 자의로 만들어서 백성에게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느님이 질서 지어준 자연과 마음의 법, 곧 양심 법을 가르쳤습니다. 노예와 같이 법을 지키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 이치를 따라 행동하고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었습니다. 왕의 법은 무자비하고 그 시대 횡행하는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착취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들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이 자비롭고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무자비한 법과 제도에 한 마디 항의도 못하고 짓눌려 살다가 죽어 가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정의와 자비와 사랑의 질서가 있고 그것은 우리의 죽음을 넘어서도 지속된다는 말은 현재의 모든 부조리를 한 순간에 걷어내는 기적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조상제사를 거부한 것은 그들을 박해하는 권력자들에게 큰 명분을 제공하였습니다. 조상제사는 그 시대 유교 가르침의 핵심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은 유교 국가 체제의 근본 질서를 거부한 것입니다. 왕과 권력 구조의 절대성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축첩(蓄妾)을 거부하여 유교가 가르친, 남녀 차별의 철칙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사대부(士大夫) 중심의 계급의식도 거부하였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의식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순교자들 중에는 백정 출신 황일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천당이 둘이다. 하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고 또 하나는 양반과 쌍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존중되는 이 세상의 천당이다.” 백정 출신으로 멸시 당하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계급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같은 형제자매로 통하는 세상은 그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이런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실망시키고 불행하게 만드는 왕과 벼슬아치들을 거부하고, 하느님으로 열리는 새로운 질서를 열망하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을 거슬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뒤를 따른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들은 바울로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로마 8,39)는 사실을 믿고 형벌당하고 죽어 가신 분들이었습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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